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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규 May 29. 2020

투표는 어떻게 하나요?

코로나-19 병동의 거소투표 이야기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00430/100872615/1


2020년 5월 29일, 이태원-뷔페식당-물류센터로 이어지는 환자들,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확진자들로, 재난 안전 문자가 쉴 새 없이 울리고 있는 오늘, 시계를 잠깐 4월 초로 돌려보고자 한다.


4월 15일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재외선거, 사전투표, 거소투표, 자가격리자 투표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당시 많은 곳의 재외선거가 무산되었고, 해외 귀국자들은 2주간의 자가격리로 투표가 어렵다고 했었다. 하지만 자가격리자들을 위한 투표 방법이 발표되었고, 1만명이 넘는 자가격리자들이 오후 5시 20분부터 투표를 마쳤다. 총선 관련 확진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코로나-19로 입원한 많은 환자들이 투표에 대해서 문의를 했다. 잠깐 나가서 투표만 하고 오면 안되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계셨지만, 당연히 안 될 말이다. 현실적으로 유일한 방법은 '거소투표'를 하는 것이었다.


'거소투표'는 3월 24일~28일까지 신고한 사람만 가능했다. 총선때까지는 퇴원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퇴원이 늦어져서 투표를 못 한 분들도 많았다. 추가 신청을 받을 줄 알고 기대했던 환자분들의 실망도 컸었다. 


4월 10일 금요일 오후에 20개의 봉투가 병원에 도착했다. 봉투는 두꺼웠다. 각 후보와 정당의 공보물(비례정당이 35개였다), 그리고 거소투표용지와 회송용 봉투가 들어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 (수신인 본인이 아니면 열면 안되는 봉투다)


https://namu.wiki/w/%EA%B1%B0%EC%86%8C%ED%88%AC%ED%91%9C


솔직히, 거소투표에 대해서 준비를 하지 못했다. 코로나-19 병동은 감염구역으로, 원칙적으로 그 곳에 들어갔던 모든 물품은 폐기하거나, 소독을 해야 한다. 그래서 매일 엄청난 폐기물이 쏟아진다. 특히 종이 종류는 소독할 수 없으니 폐기하는 것이 원칙이다. 교과서, 문제집, 일반적인 책 모두 예외가 없다. 퇴원할 때 컴퓨터같은 고가품은 열심히 닦고, 지퍼백과 같은 비닐에 포장한 다음 하루 있다가 꺼내라고 안내한다. 신체 밖의 코로나바이러스는 24시간이면 사멸해서 전염성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투표용지는? 회송용 봉투는? 이거 마음대로 폐기하면 선거법 위반이다. 이게 그대로 나갔을 때 선거사무원이 감염될 가능성은 없을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전화했더니 질병관리본부에 문의하라고 한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선관위에서 안내가 나갈 거라고 한다. 비밀투표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누가 대신해 줄 수도 없다. 봉투 속에 넣는 투표용지를 잘 닦으라고 안내할 수는 있지만, 환자 본인이 정말로 잘 닦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밀봉된 봉투는 우편으로 보내야 하는데, 우체국은 과연 안전할까?


한 시간 정도의 혼란이 지나간 후에 대한병원협회 명의로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안내문이 도착했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종이 표면에서도 24시간 이상 생존할 수 없다는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내린 결과다. 일반적인 방역 원칙에는 어긋나지만, 직접선거는 양보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닌가.


이미 시계 바늘은 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우리는 좀 더 세밀한 지침을 즉석에서 만들고 투표용지가 들어있는 봉투를 환자들에게 나눠드렸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니 전 병동의 투표는 순식간에 끝나 있었다. 모두들 기다리고, 준비하고 계셨던 게다.


아쉽지만, 거소투표 신고를 하지 못해서 투표하지 못한 환자가 훨씬 더 많았다. 입원환자는 100명을 훨씬 넘겼는데, 배송된 투표용지는 20개 뿐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또 한 고비를 넘겼다.


당시에 선거와 관련해서 많은 염려가 있었지만 우리는 잘 막아내었다. 그 때 만들었던 지침이 적절했는지, 부족하지만 운이 좋았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아쉽게도 5월 첫주의 황금연휴는 잘 막아내지 못했다. 5월말, 지금, 이태원-뷔페식당-물류센터로 이어지는 새로운 파도가 오고 있다. 어렵고 힘들지만, 4월의 어느날처럼 이번에도 잘 이겨낼 수 있기를 바란다.




환경소독 티슈는 소독제가 흥건한 물티슈이다. 다음의 거소투표 지침은 한 시간만에 만든 우리병원의 지침이다. 이대로라면 감염보다는 투표용지가 무사할 지 걱정이 될 정도이다. 


우리병원에서는 이걸 주로 사용한다


병동용 지침서 (간호사는 level D 및 N95 마스크 착용)

1) 환자는 손위생을 하고,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침상의 상두대(밥상이다)를 환경소독 티슈로 닦는다

2) 간호사가 거소투표 봉투를 전달한다

3) 환자는 손위생 후 투표용지에 볼펜으로 표시를 하고 환경소독 티슈로 투표용지를 닦는다

4) 환자는 투표용지를 봉투 안에 넣고 밀봉한 후 봉투를 환경소독 티슈로 닦는다

5) 간호사는 전달받은 봉투를 환경소독 티슈로 한 번 더 닦고 비닐 백에 밀봉한다

6) 비닐 백은 간호사실에 24시간동안 그대로 둔다

7) 비닐백 겉면을 환경소독 티슈로 닦은 후 전용 엘리베이터 앞에 있는 전용 플라스틱 용기에 넣는다


수거담당자 지침서 (5종 보호복-모자, N95 마스크, 고글, 장갑, 앞치마)

1) 7층(터미널 스테이션)의 전용엘이베이터 안에 있는 플라스틱 용기를 꺼내어 환경소독 티슈로 닦는다

2)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 옥외 지정된 장소로 이동한다 (사람이 없고 환기가 잘 되는 곳이었다)

3) 손위생 후 통 안에 있는 비닐백을 개봉하고, 손위생을 다시 하고 각 봉투를 환경소독 티슈로 닦는다

4) 탈의 후 장갑만 착용하고 우편발송함에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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