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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Nov 28. 2021

<지옥>

미리 보는 'K-디스토피아'

지난 11월 19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지옥>은 <오징어 게임> 이후 또다시 'K-콘텐츠'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드라마 <지옥>은 2019년에 네이버를 통해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영상화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 웹툰은 연상호 감독이 2004년에 만들었던 <지옥:두 개의 삶>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에서 갈라져 나왔다.


<부산행>의 성공으로 흥행감독이 되었지만 그간 연상호 감독의 작품세계는 다소 마이너한 취향에 위치를 했었다. <지옥>은 그중에서도 특히나 더 어둡고 더 무겁다. 그리고 불편하다.


6부작으로 진행되는 <지옥>은 앉은자리에서 바로 정주행이 가능할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하다. 배우들의 호연은 물론이거니와 마치 축구의 전반전(1~3화)과 후반전(4~6)처럼 구분되는 드라마의 구조가 집중도를 더욱 향상한다. 사소한 단점들은 있지만 <지옥>의 퀄리티는 비교적 높은 수준이며, 이제까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한국 드라마 중에서도 상위권에 놓을만하다.


작품의 퀄리티와는 별개로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것은 바로 이 드라마가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모습이다. 마치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는 듯하고, 또 어쩌면 앞으로 올지도 모를 우리 사회의 모습 같은 불안함 때문이다.


이 작품의 기본 뼈대는 이렇다. 천사가 갑자기 나타나 죽을 날과 시간을 알려주고(고지), 그때가 되면 지옥의 사자들이 와서 지옥으로 데려간다는(시연) 마치 구약성서에나 나올법한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하지만 이러한 설정은 그저 이야기의 '배경'일 뿐 메인이벤트는 따로 있다. '고지'와 '시연'을 둘러싼 여러 인간들의 반응과 행동이 더해지면서 이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힘이 붙는다.


#새진리회


이야기의 중심엔 새진리회 하는 특정 종교단체가 있다. 새진리회는 고지와 시연을 창으로 삼고, 공포와 죄책감을 칼로 삼아 군중들을 통제한다. 심지어 공권력도 좌지우지하는 이 단체는 그럴듯한 교리도 없으면서 그저 '겁주기'와 '정죄'로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비이성적이고,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이 종교가 성장한 원동력은 사람들의 불안감이다. 극 중에서 나오는 정진수 의장(유아인 배우)은 그 불안한 심리를 파고들어 스스로를 신격화한 인물이다. 새진리회 회원들은 그의 말이라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믿으며,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물리적인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몇몇 종교단체들을 보자. 허약한 교리 위에 세워진 모래성은 교주 1인에 의한 공포정치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어떤 종교는 교주가 죽으니 납득하기 힘든 논리로 새로운 교주를 세우기도 했다. 신도들은 교주의 말만이 진리라 믿으며, 다른 어떤 것도 모두 거부한다. 이런 그릇된 믿음은 여러 가지 형태로 우리가 속한 사회의 상처를 남긴다. 새진리회를 보면서 여러 명의 교주 이름과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특정 종교를 언급하진 않겠으나, 사이비 종교라 불리는 대다수가 새진리회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화살촉


새진리회의 정진수 의장이 내세우는 논리는 이런 것이다. '인간의 법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니 신이 직접 개입을 하는 것'이라고 그는 얘기한다. 하지만 신의 개입뿐만 아니라 인간이 직접 개입하고 심판을 하니, 그들이 바로 화살촉이라는 조직이다. 이 화살촉의 존재와 행동들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불편했는데, 내가 느낀 불편함은 '사적 제재의 위험성' 때문이다. 정의라는 이름으로 죄인들을 직접 처벌하는 그들의 행동은 그 무엇보다 소름이 끼친다.


화살촉 이야기가 더 피부로 와닿는 것은 매일 보는 인터넷 뉴스 때문이기도 하다. 범죄 사건을 다루는 뉴스를 보다 보면 분노에 가득 찬 사람들의 댓글이 가득하다. "내가 저 사람 가족이었으면 벌써 어떻게 어떻게 했다.."라는 식의 또 다른 범죄행위를 자기 입으로 스스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또한 '참을 수 없는 형량의 가벼움' 때문에 사법체계에 분노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물론 고작 인터넷 댓글 가지고 너무 민감하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만큼 이 시대가 얼마나 분노와 혐오로 물들어 있는지를, 화살촉의 존재를 통해 무섭게 경고하는 것만 같다.



불행 중 다행인 걸까. 드라마는 시종일관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도 끝내는 희망을 얘기하며 마무리된다. 시즌2에 대한 기대감은 덤이다.


연상호 감독의 이 드라마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곁들이며 한국사회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과장되고 억지스러운 연출이 존재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허구의 이야기다. 그리고, 고지와 시연을 제외한 그 모든 일들이 허구가 아니라면 어디 온전한 정신으로 볼 수 있겠는가. <지옥>의 이야기는 반드시 허구여야만 한다. 앞으로도 쭉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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