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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Jan 23. 2022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이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한가

'웨스트 사이드(West Side)'. 맨해튼 서부 외곽 지역의 한 슬럼가. 그곳에는 매일같이 두 개의 세력이 서로 으르렁대고 있다. 폴란드계 백인 집단 '제트파'와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 집단 '샤크파'는 이 지역의 소문난 앙숙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두 무리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이루어져서도 안 되는 사랑이 꽃피운다. 두 조직의 중재를 위해 마련된 무도회에서 샤크파의 리더인 베르나르도(데이비드 알바레즈)의 여동생 '마리아(레이철 지글러)'와 제트파의 이전 리더 '토니(안셀 엘고트)'가 서로 첫눈에 반한 것이다.


앙숙인 두 가문과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랑이야기, 이 이야기의 기원은 우리가 잘 아는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이탈리아 베로나는 뉴욕 맨해튼으로, 몬태규 가문(로미오)과 캐퓰릿 가문(줄리엣)은 제트파와 샤크파로 대체했다. 이 영화의 오리지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로미와 줄리엣을 각색해 만든 것이다. 195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 후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었고, 1961년에 영화로까지 만들어졌다. 영화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결과는 더욱 성공적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개 부문 수상과 함께 당시 4000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20세기 미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결코 빠질 수 없는 영화라고 여러 매체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레전드 중에 레전드인 이 작품의 리메이크는 역시 레전드 중에 레전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맡았다. 60년이 지난 이 시점에 리메이크를 하면서 스필버그 감독은 이 오래된 이야기에 거의 변화를 주지 않았다. 아마도 이 영화 21세기 버전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그 이야기의 유효기간, 다시 말해 이 '스토리'가 현재의 관객들에게 얼마나 먹힐지가 결국 주요 관건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의 큰 틀을 훼손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연출자의 정확한 의도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영화에 대한 미국 현지와 국내의 온도가 현저하게 차이 난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21세기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는 미국 현지에서 평단과 대중들에게 모두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2%, 관객 점수 94%를 기록 중이다. 비슷한 평론 사이트인 메타크리틱 점수도 높은 편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뮤지컬-코미디 부문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다가올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 후보에는 일단 올라갈 확률이 높아 보인다.


반면에 국내의 반응은 판이하게 다른데, 일반 관객들은 물론 평론가들조차도 몇몇을 제외하면 이 영화에 대한 평가가 거의 소금과 같다. 물론 뮤지컬 장르가 국내 관객들에게 미치는 소구력은 그 어떤 장르보다도 약하다는 것이 주지의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흥행에 성공한 뮤지컬 영화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니 그런 것은 전혀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스레 '이야기의 유효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이 이야기는 수백 년 전의 이야기를 1950년대의 미국에 상황에 맞게 잘 각색을 했다. 나름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였다. 60년이 지나 이제 이 영화를 다시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이야기는 바꾸지 않았다. 2020년에도 똑같이 1950년대의 미국을 이야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할까?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큰 줄기는 마리아와 토니의 사랑 이야기이지만, 못지않게 샤크파와 제트파의 갈등도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다. 얼핏 주객이 전도된 느낌도 드는데, 사실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보다 두 조직의 갈등과 싸움이 더 흥미진진하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로서의 존재감도 더 두드러진다. 이 영화가 판화라고 한다면 두 조직의 싸움 이야기가 더 튀어나오게끔 조각이 된 모양새다.


이야기의 유효성을 바로 그 부분에서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서로 다른 피부색과 서로 다른 민족들과 서로 다른 언어, 문화 간의 갈등. 이러한 갈등은 현재 미국에서 아직도 여전히 '존재' 하는 일이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확실히 '유효'한 이야기일 수 있다. 어쩌면 주객이 전도된 느낌의 서사는 스필버그 감독의 필승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또는 그래서, 한국에서는 싸늘한 반응이 나오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결국 이 영화의 메인 스토리는 두 남녀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가 이수일과 심순애 저리 가라 할 만큼 고리타분하고 낡은 느낌이다. 오래된 사랑 이야기는 과거에 머물러 현재의 (국내) 관객들에게 전혀 먹히지 않고 있으며, 두 조직 간의 갈등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어필이 되지 못한다.


 


2010년대 이후로 할리우드에서는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을 메인 테마로 하는 영화들이 대거 양산되었다. 꼭 메인 테마로 내걸지는 않더라도 영화 속에서 유색인종이나 성소수자에 대한 코드를 발견하는 일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중 특히나 유색인종에 대해 얘기하는 영화들은 한국과 미국에서의 반응이 많이 달랐었던 기억이 있다. 조던 필의 <겟 아웃>은 한국에서는 그냥 볼만한 장르영화일 뿐이었고, <블랙 팬서>가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가 됐을 때는 국내의 영화팬(심지어 마블 팬들조차도) 대부분이 아연실색했다. 어떤 영화가 유색인종에 대해서 유의미하게 다뤘다고 평가가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완성도가 높은 영화가 인종문제까지 유의미하게 다룰 경우에는 국내 관객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그 반대는 결코 없었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정치적 올바름을 전면에 내거는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도 넓은 의미에서는 그 흐름에 살짝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오래된 이야기를 바꾸거나 수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이 이야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적어도 미국에서만큼은) 그런 믿음이 다소 심심한 결과물이 만들어진 이유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 이 영화는 뮤지컬 영화로서 장르적 완성도가 대단한 작품이다. 춤과 노래와 음악 등 장르적 특성을 내비치는 요소들은 아주 뛰어난 기술자의 솜씨다. 그것만으로도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채색옷을 입은 배우들의 몸짓, 그 화려한 군무 만으로도 이 영화는 충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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