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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Mar 08. 2022

<피그>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의 역사

*스포일러 있습니다*


외딴 숲 속에서 한 마리의 돼지와 함께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를 생각나게 하는 그의 몰골 때문에 더욱 이 남자의 과거가 궁금해진다. 돼지의 존재 이유는 트러플 버섯을 찾는 것이었고, 그것은 곧 이 남자의 생계를 책임지는 일이었다. 동시에 돼지는 이 남자에게 친구이자 반려자 같은 존재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괴한들로부터 습격을 당하고 돼지를 빼앗긴 후, 이 남자는 잃어버린 돼지를 찾기 위해 숲 속을 떠나오게 된다.



돼지를 찾기 위한 과정이 주를 이루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매우 단순하다. 영화는 돼지의 주인 랍(니콜라스 케이지)과 랍의 숙소를 주기적으로 방문하는 아미르(알렉스 울프)가 돼지를 찾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과정에서 점차 랍의 과거가 밝혀지게 된다. 그는 원래 지역에서 이름만 대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셰프였던 것이다. 그랬던 그가 모종의 이유로 숲 속에 칩거하며 은둔자 생활을 하고 있던 것이다. 은둔의 이유가 영화 속에서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아내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대략적으로 유추해볼 수는 있다. 그런 그에게 현재의 유일한 벗이자 언덕은 돼지뿐이었던 것이다.


사실 돼지를 잃어버린 일은 비단 물리적인 손실만 얘기하는 것은 아니다. '소중한 어떤 것의 상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랍이 숲 속에 들어오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돼지를 잃어버리게 되자 그는 다시 사람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의 발걸음은 마치 다시는 같은 이유로 후회하지 않으리라는 다짐 같다. 끝내 돼지는 못 찾았지만 지난한 여정을 마치고 돌아온 랍은 이제 상처를 마주 볼 수 있는 용기를 얻은 것처럼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은 그런 회복과 치유를 암시하고 있다.



영화 <피그>는 한 마리의 돼지를 통해 상실과 회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단순한 스토리와 명료한 메시지 때문에 영화는 자못 심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주연배우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가 시종일관 압도적이라 영화는 제법 인상적이다. 온몸으로 펼치는 그의 연기가 온 맘에 와닿는다. 이 영화는 실로 니콜라스 케이지의 영화라 부를 만하다. 영화의 제작에까지 참여하였으니 상당 부분 맞는 말이겠다.


또한 영화의 주인공 랍의 역사와 실제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의 역사를 비교해서 보면 그의 연기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화려했던 과거와 그렇지 않은 현재, 니콜라스 케이지가 실제로 은둔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두 인물이 주무대에서 멀어진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이 묘하게 겹쳐 보인다. 화려했던 명성을 뒤로하고 은둔생활을 하는 요리사, 세계적인 슈퍼스타에서 왕년의 스타로 전락한 배우. 이 두 인물의 공통분모가 영화의 감상을 더 배가시키는 요소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2008년작 <더 레슬러>의 미키 루크의 경우처럼, <피그> 역시 니콜라스 케이지의 역사를 생각하고 본다면 영화가 더 깊게 다가온다.



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존 윅>을, 누군가는 <옥자>를 떠올릴 것이다. 영화의 외피만 보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돼지를 찾는 게 영화 속 이벤트의 전부인 평범한 이야기도 영화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만하다. 그러나 단순한 서사가 품고 있는 메시지는 명료하지만 진중하고, 메신저가 되는 배우의 연기는 굵직하면서도 선명하다. 그리고 니콜라스 케이지라는 배우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이 영화가 마냥 평범하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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