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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hai park Apr 18. 2022

<나의 집은 어디인가>

경이로운 고백에 경의를 표하며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의 이름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아마도 전쟁의 참혹한 상황들이 눈에 선할 것이다. 하늘에서 미사일이 떨어지는 CNN 뉴스 화면,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들, 무너진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는 탱크, 아직은 앳되 보이는 총을 메고 있는 깊고 큰 눈의 병사들.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이라크, 이란, 등등 중동 지방의 어떤 이미지들은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수년간 확대 재생산되어 왔다. 이제 '중동' 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경기도 부천의 어느 동네보다는 전쟁과 모래바람의 머나먼 이국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지역의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들은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졌다. 선 굵은 전쟁 영화부터, 사실적인 기록의 다큐멘터리, 눈물을 훔치게 만드는 감동적인 드라마, 손에 땀이 나게 하는 첩보 스릴러까지 다양한 변주가 이어졌다.


그토록 다양한 변주들 사이에서도 특히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그 결이 매우 독특하다. 올해 있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 장편 영화상&장편 애니메이션상&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오른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이 영화는 카메라를 직접적으로 들이미는 대신, 애니메이션과 뉴스 영상이나 각종 자료화면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큼 독특한 표현방식이 이 영화의 큰 장점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애니메이션&다큐멘터리는 이야기의 울림이 상당한 작품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실화 당사자의 담담한 고백으로 시작된다.



영화는 영화의 주인공인 '아민'을 인터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아민은 실제 아프가니스탄 난민 출신으로 현재는 덴마크에서 살며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아민이 덴마크에서 만난 친구다. 영화의 진행은 비교적 단순하다. 아민의 친구가 질문을 하면 아민이 대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는 진행된다.


아민은 어렸을 때 고향을 떠나 러시아를 거쳐 덴마크에 오기까지 그 지난한 세월들을 토하듯 그러나 차분하게 털어놓는다. 영화는 그 과거의 시간들을 아민의 내레이션과 함께 애니메이션으로 엮었다. 이런 방법은 신의 한 수처럼 생각이 되기도 한다. 그 고통의 시간들을 일일이 재현하고 실사화 했다면 영화는 지나치게 감정적이 되고, 자칫하면 개인의 고통이 자극적으로 소비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실사화가 영화의 집중도를 흐뜨러트릴수도 있는 일이었다. 개인의 서사를 애니메이션과 내레이션 그리고 훌륭한 사운드로 구성해 이야기를 명료하고도 탁월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 개인이, 한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슬픈 역사가 스크린 너머 관객들에게도 현현히 다가오는 것은 이러한 영화의 작법 때문이다.


또한 개인이 왜 그런 고난을 겪어야 했는지, 그러니까 그 당시에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이 대체 어떠했는지에 대한 부분은 그 당시의 뉴스 영상이나 자료화면들을 통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는 영화의 배경과 상황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개인의 고난을 더 크게 느끼게 해주는 역할도 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필름이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과 탄식을 더하게 만들고 있다. '정말 저런 일이 있었다고?'에서 '정말 저런 일이 있었구나'로 바뀌는 순간 눈물샘은 자극되고, 코끝은 더 따갑다.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주인공 아민의 실제 이야기다. 그는 전쟁 난민으로서 겪었던 고난의 세월들을 담담하게 회고하며 이야기하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과거의 일을 떠올리는 것조차 힘든 일일 텐데, 아민은 아주 큰 용기를 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는 남자를 좋아하는 성소수자로서의 고민도 영화 속에서 털어놓고 있다. 난민과 성소수자, 환영받지 못하는 이름표를 가지고 여기까지 오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 영화의 독특한 형식도 형식이지만, 자신의 아픈 역사를 들추어 고백한 그 용기가 경이로울 지경이다.



우리는 흔히 장난스럽게 '이게 실화냐?'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러나 정 반대의 의미로 '이게 실화일까'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제발 실화가 아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일 것이다.


영화 <나의 집은 어디인가>는 전쟁의 현장에 직접적으로 들어가지도, 피 흘리는 아이들의 얼굴을 낱낱이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저 한 사람의 자기 고백으로 그 아픈 역사들을 오롯이 전하고 있다. 아주 독특하고 신선하고 꽤나 적절하고 유효한 방법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아민의 경이로운 고백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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