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영 / 창비 / 2019년 4월
※ 주의 : 이 리뷰에는 <페인트>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인 이희영의 <페인트>를 읽었다.
국가에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해 NC 센터를 설립하고 키워주는 사회.
1월에 센터에 들어와 '제누'라는 이름을 얻은 '제누 301'은
계속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 즉 '페인트'를 진행하고 있다.
아이를 입양하면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혜택 때문에 부모로 지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제누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열세 살 때부터 지금까지 4년 동안 페인트를 진행했지만,
계속 실망하기만 제누.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면 홀로 센터를 떠나야 하는 처지에 놓인 제누.
이제 남은 시간은 별로 없다. 제누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P.22
"태어날 때 만나야만 부모니?
NC의 아이들은 모두 열세살 때 부터 부모를 가질 수 있어.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우린 버려졌다는 뜻이죠."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최의 눈에서 서늘한 빛이 스쳤다.
"너희는 바깥세상 아이들과 달리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이야."
"........."
"부모가 될 사람의 면접을 볼 수 있고.
물론, 15점짜리를 부모를 선택하기는 싫겠지."
P.44~45
사람들은 꽤나 근본을 중시했다.
원산지를 따져 가며 농수산물을 사 먹듯
인간도 누구에게서 생산되었는지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내가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큰 문제일까?
나는 그냥 나다.
물론 나를 태어나게 한 생물학적 부모는 존재할 테지만,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해서,
그들에게 키워지지 않았다 해서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나는 누구보다 나 자신을 잘 알고 있으니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부모가 누구인지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 아닐까?
왜 사람들은 NC 출신을 달갑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까?
생물학적 부모가 누구인지 알고,
그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사실이
특권 의식을 느낄 만큼 그리 대단한 일일까?
p. 160
독립이란 성인이 된 자녀가 부모를 떠나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의 말처럼,
어쩌면 부모 역시 자녀로부터
독립할 필요가 있는 건지도 몰랐다.
자녀가 오롯이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걸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닌
기쁨으로 여기는 것, 자녀로부터의 진정한 부모 독립 말이다.
p.163
하나가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한 가족이 된 것을 기뻐할 때도 있을 테고, 후회할 때도 있을 거야.
너도 마찬가지겠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달라질 거야.
얼굴, 표정, 목소리만으로 서로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 알 정도로
가까워지겠지. 그렇게 되기까지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할 거야.
내가 친구들과 그랬듯이. 해오름과 부부가 되었을 때도 또 그랬듯이"
"두분 모두 저를 원하세요?
하나는 망설임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났다.
"아니라면 지금 여기에 있지 않겠지? 제누, 넌 어때?
이 면접이 끝나면 우리와 합숙 생활을 해보고 싶니?"
3차 페인트를 거쳐 합숙까지 마치면,
나는 정말로 센터를 벗어나 하나와 해오름이 사는 집으로 가게 된다.
물론 내 ID 카드에서 NC 출신 기록은 삭제 될 것이다.
그러나...
P.165
"센터를 졸업하게 되면, 정말로 찾아가도 돼요?"
"그럼. 우리는 진짜 친구가 되는 거야."
하나가 개구쟁이처럼 활짝 웃으며 덧붙였다.
"부모보다 훨씬 가까운!"
p.166
"안녕히 가세요."
최의 인사에도 하나는 그대로 선 채 나를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오래 기억해두겠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최가 큼큼 목을 가다듬자 정신을 차리고는 그제야 나에게 물었다.
"음..... 한번, 안아 봐도 되겠니?"
나는 손에 쥔 액자를 내려놓았다.
하나가 나를 꽉 안아주었다.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전해졌다.
P.198
몇몇 아이들이 소곤거리며 무빙워크로 향했다.
페인트를 위한 발걸음일 것이다.
아이들은 또다시 반가움을 과하게 표현하는
프리 포스터들의 홀로그램을 마주할 것이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지도 모른다.
나쁘지 않네요.
페인트, 하겠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저와 맞지 않는 분들 같아요. 죄송합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쩌면 이곳은 아주 거대한 미래인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색깔로 칠하는 미래.
엄마와 아빠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곳.
설령 면접이 성사되지 않아도 상관없다.
페인트를 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미래에 갔다 오는 거니까.
지금까지 자녀들은 선택받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아이들이 등장한다.
어릴적 한번쯤 해본 말들.
"내가 원해서 여기서 태어난게 아니잖아!"
아마, <페인트>의 작가도
이런 말들 속에서 주고 받는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부모로서의 역할과 책임,
가족의 의미에 대해
소설을 착안하지 않았을까?
제누는 서로 마음을 나눈
최와 하나를 부모로 선택하는 대신
홀로 센터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최와 하나와 제누는
부모와 자녀가 되는 대신
친구가 되기로 한다.
지금까지
주말마다 어린이 / 청소년이 주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읽으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어린이/청소년이 사회의 미래다,
라는 말을 하면서
성인들이 아이들을 자신들의 노후로 위한
보험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들.
나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아이가 있는 친구들에게
혹은 나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나 또한 이런 관점의 말들을 했을지도 모른다.
<페인트>는 그런 시선에 대해
따끔한 질문을 던진다.
만약 선택의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면.
당신들은 과연, 선택받을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