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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Dec 01. 2017

소소한 일기(11월)

슬픈 날 뒤에는 좋은 날이 온다.

1. 일기란 것을 쓰면서부터 '11월의 일기'는 대부분 우울하고, 오글거리며 약간은 자조적이었다. 매번 찬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나는 아팠고, 실패했고, 버림받았고 이래저래 고생만 잔뜩 이었으니까. 어쩐지 약간은 트라우마처럼 남아버렸다. 일 년은 열두 달뿐인데 한 달을 통째로 날려버리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들지만, 마음의 상처는 쉽게 옅어지지 않는다. 누군가의 가슴에 '11월의 일기'를 만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되뇐다.




2. 나의 희망은 대부분 작은 것들이다. 튀김 우동에 유부 튀김이 여러 개 들어가 있기를 혹은 마트에 사러 가는 품목이 할인행사 중이거나, 봉지 속 감자칩이 산산조각 나 있지 않았으면... 하는 정도이다. 어느 순간부터 딱 그 정도의 희망만 바라게 되었다.




3. 하지만 이런 나라도 오천 원이 당첨된 로또는 현금으로 바꾸지 않는다. 또 다른 오천 원어치의 로또를 산다. 그러니까 오천 원 당첨금을 현금화하지 않는 것은 내 희망의 마지노선이기도 하다. 마지노선은 필요하다.





4. SNS에서 지인들의 사진을 볼 때 롯데타워가 보이는 것이 너무 싫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지 상상할 기회를 단번에 박탈해버린다. 그저 '롯데타워가 보이는 곳에 있구나...' 가 되어버린다.




5. "내 얼굴은 개상이야, 고양이상이야?"라고 묻는 친구에게 "음... 간바레 오또상."이라고 대답한 게 그렇게 삐질 일인지 아직도 이해할 수가 없다. 뭐.. 일단 사과는 했지만..



일본 사케



6. 얼마 전 동생과 술을 마셨다. 따져보니 술은 7년 만이다. '나이가 들수록 술을 마시면 운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약간의 낌새가 보이면 바로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술 먹고 우는 것만큼은 용납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웬걸.. 너무나 즐거웠다. 너무 즐거워서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동생을 붙들고 새벽까지 마셔버렸다. 아직 울지 않아서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취하면 웃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니깐..




7. 위로도 가진 사람이 더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여유자산으로 100억을 가진 사람이 100만 원을 잃어버리면 수많은 사람이 호들갑을 떨며 몰려들어 위로의 말을 건네고 다독여주지만, 전재산이 100만 원인 사람이 10만 원을 잃어버린다면 대부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정작 위로가 필요한 사람은 혼자 있는데..




8. 미국의 길거리 테러로 사망한 사람들의 뉴스를 보면서 나는 문득 이 세상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위험한 공간인지, 그리고 나란 존재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떠올렸다. 마치 바닷가를 떠다니는 잔뜩 젖은 종이가 되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9.  슬프거나 기쁜 소식들에 이따금 달리는 터무니없는 악플을 볼 때마다 나는 데이비드 흄이 부르짖었던 '공감'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그러고선 '대머리에게 참빗을 선물하는' 타인의 상황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자신을 반성하곤 한다.




10.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할 때는 행복한 일이 일어나기보다 슬픈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음... 그리고 이 사람은 내가 이따금 떠올리는 상처를 나로 인해 느끼지 않았으면... 아픈 건 역시 아프니까.

 



11.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보자 동생은 "아무거나... 좀 아름다운 메뉴로 골라 봐.."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움이란 뭘까 골똘히 생각했고, 그런 나를 보면서 동생은 웃었다. 세상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하다. 나는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색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까? 몇 가지의 물감으로 내 삶을 그릴 수 있을까? 상상해보니 조금은 즐거웠다.






P.S 겨울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 입술이 마치 껍질을 까 놓은 뒤 30분 정도 방치한 귤처럼 건조하니까요. 살짝만 눌러도 톡톡 터질 것 같습니다. 이 글은 대부분 금요일에 보시겠네요.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즐거운 금요일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추위 조심하시고 슬픈 일 없이 한 해를 마무리할 수 있기를...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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