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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탱글통글 Mar 28. 2020

억울한 기억은 억지로 지워지지도 않아..

그래서 두배로 억울해..

20대를 병원에서 보내며 어쩌다 보니 '병원에서 울었다'라는 문장이 익숙한 인간이 되어버렸지만, 가장 부끄러웠던 기억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눈물이었다.

한창 뇌염모기가 유행할 때였고, 동생과 둘이서 집 건너편에 있는 동네병원으로 예방접종을 맞으러 갔었다. 집을 떠날 때부터 입이 잔뜩 튀어나와 울먹였던 난, 병원 직전의 육교 위에서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내가 아픔을 예방하기 위해 아파야 하는가?'라는 어떤 근원적이고 철학적인(이라고 믿는) 억울함 때문이었다.


아플까 봐 우는 게 아니ㄹr.. 억울해서 우는 거야...☆


육교에서 대성통곡을 하던 나를 어르고 달래던 사람이 나보다 두 살 아래인 동생이었다. 대충 "오빠 괜찮아 그렇게 아프지 않을 거야.."라고 위로하면서 내 손을 잡고 병원으로 끌고 갔다. 접종을 마치고 집으로 가서 "뭐 별로 아프지 않네!"라며 허세를 떨었지만, 동생의 생생한 증언에 자존심이 무너졌던 추억이 있다.

왜 이 눈물 오랜 시간이 지나도 기억이 나는 걸까?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아마 '아파서'가 아닌 '억울해서' 울게 된 첫 기억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억울함에 흘리는 눈물은 기억이 낙인처럼 찍힌다.


최근에 치과 치료를 받고 있다. 양 송곳니가 부러질 정도로 썩어서 신경치료 후, 기둥을 세우고 이를 만들어 씌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썩은 치아는 원활하게 제거하고 있지만, 찍히는 카드값을 볼 때마다 얼굴이 썩어가는 중이라 손해인 기분이다.

그날은 신경치료를 하는 날이었다. 치료 전, 잇몸에 마취 주사를 맞고 로비로 나와 마취가 돌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차분한 바이올린 연주가 흐르고 로비엔 나 혼자 뿐이었다. 음소거된 벽면의 티브이에서는 n번방 조주빈의 얼굴을 공개해야 할지 말지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 만행들과 가입자 수, 하고 다닌 짓거리와 대화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느다. 제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선 저런 사람이 없기를 기도했다.


불쾌한 마음으로 뉴스의 자막을 읽다 보니 자연스레 중간 광고 이어졌다. 잘 기억나지 않는 상품 광고 몇 가지 지난 뒤, 후원금을 모집하는 광고가 나다. 염증으로 얼굴이 부풀어 흘러내리는 어린 여자아이와 간암에 걸린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아직도 그 광고를 보며 내가 왜 울었는지 확한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결단코 그 정도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아닌데, 훌쩍거린 정도가 아니라 거의 오열을 했다. 데스크의 안내원 분과 수다 중이던 간호사분이 달려 나와 "많이 아프세요? 그렇게 아프셨나요? 마취 바늘이 너무 깊게 들어갔나요?"라고 물어보길래 얼른 정신을 차리고 "아이에여. 마히는 할 해호 이흐이아(아니에요. 마취는 잘 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고 화장실로 도망쳤다. 감정을 수습하고 신경치료를 마치고 안내원의 눈빛을 애써 외면하며 결제를 하고(이때도 약간 쓰라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도대체 왜 울었는지, 그리고 중간에 치과를 교체해도 치료가 가능한지 고민했다.

왜 그렇게 갑자기 오열했을까? 만 명의 쓰레기들을 보며 기분 나쁜 오싹함이 척추를 타고 올라오다 곧바로 이어지는 부녀의 모습에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갈팡질팡한 마음에 뇌가 오작동을 일으킨 건가. 어떤 미친놈들은 그딴 영상을 보겠다고 150만 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금하는데 그렇게 어린 딸과 아픈 아버지는 돈이 없어 자신들의 아프고 초라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세상이 억울해서 터진 것 같기도 하다. 억울해서 흘린 눈물은 오래가는 편인데... 이 더러운 기억도 오래 가려나... 짜증 나고 더럽고 억울하고 슬프고.. 참 가지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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