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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Nov 04. 2024

황지호 단편소설 「귀가」 리뷰

집의 죽음을 쓰다,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을 되살리다


집의 죽음을 쓰다,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을 되살리다

— 황지호 단편소설 「귀가」(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리뷰


“일꾼들이 기단에 올라 안방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무덤이 있었다. (⋯) 누군가가 집이 상여였던 셈이라고 말했다. (⋯) 배 목수가 고유제를 지내며 성주신을 시작으로 가신들의 이름을 호명했고 배웅했다. 따로 상을 차려 무덤 주인을 위한 제를 지냈다. (⋯) 배 목수가 집을 짓는 역순대로 하부 벽을 해체하고 수장재부터 분리하자고 했다.”

 (황지호, 「귀가(歸家)」, 공저작 『2021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사단법인 한국소설가협회, 2021, 462~463쪽)


건축가 정기용은 저서 『사람·건축·도시』(현실문화, 2008)에서 우리나라의 ‘아파트 주거 문화’를 이렇게 꼬집었다. “살기 위해 아파트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팔기 위해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늘 이사 갈 준비를 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이웃과 더불어 살’ 시간과 공간을 포기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는 사는 것이 아니라 대기하는 것이다. 거주하는 집을 ‘대합실’처럼 활용하는 것이다.”(22쪽) 태어나 줄곧 여러 아파트를 옮겨 다니며 살아온 독자로서 듣기 썩 유쾌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뾰족이 반박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아파트 비판의 골자는 “적어도 우리가 ‘사람으로서 살아감’이 누적된 시간 속에 배어나온 공간이야말로 ‘집’이라 부를 수 있을 것”(19쪽)이라는 정기용의 오랜 철학이다. 그는 “잠시 산업화 이전의 우리의 삶과 집을 되돌아보자.”(17쪽)라고 제안한다.


“부엌에는 정화수 떠놓고 빌던 조왕신이 있었고, 대들보나 뒤꼍에는 신줏단지가 있었으며, 마을 어귀에는 서낭당이, 뒷산에는 산신령이 있었다. 우리가 살던 집의 울타리 안에는 여러 신령과 신이 있었다. 아니 우리 조상들 마음속에 있던 ‘신성한 것’들이야말로 집의 깊은 의미였다. 그것은 다만 미신이라든가, 애니미즘이라고 말하는 민속학적 의미의 수준이 아니라 가장 일상적인 삶의 중심에 가장 신성한 것을 공존시키던 옛사람들의 지혜로움이었다.”(17쪽)


2021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귀가」는, 십여 년 전 한 건축가가 갈망했던 ‘집-인간-삶의 합일화’에 대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문학적 호응이다. 소설의 첫 문단과 두 번째 문단이 각각 “집이 죽어가고 있었다.”와 “드레싱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여기서 드레싱이란 피부암 수술 후 수반되는 치료 과정의 하나다. 도입부가 밝히고 있듯 이 작품은 고택의 철거 과정과, 그곳에서 평생을 살았던 병든 노인의 임종을 병치하여 전지적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서사 구조는 단순한 편이다. 집의 허물어짐에 관한 문단 a가 나온 다음, 죽어 가는 인간의 문단 b가 이어진다. a1+b1, a2+b2 식이다. 이 흐름이 계속 반복된다. a는 ‘배 목수’의 집 해체 수순을, b는 피부암을 앓는 노모 ‘그녀’와 목공일을 하는 아들 ‘그’의 과거·현재를 그린다. 주요 등장인물 두 사람이 목수다. 그래서 소설 안에는 목공 관련 전문 용어들과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각종 부분별 명칭들이 가득하다. 일반 독자들이 빠른 호흡으로 읽어 나가기 쉽지 않다. 낯선 낱말과 마주할 때마다 국어사전을 찾아야 한다. 서사 구조마저 복잡했다면 제대로 완독하기가 더 어려웠을 듯하다. 작가가 채택한 병렬식 전개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집과 집주인의 죽음이 겹쳐지고, 바스라지고 떨어져 나간 자재들의 면면과 노인의 건강했던 생애가 교차 편집됨으로써 「귀가」는 서서히 ‘귀천(歸天)’으로 떠오른다. 그렇게 집이라는 대상은 일찍이 건축가가 정의한 “‘사람으로서 살아감’이 누적된 시간 속에 배어나온 공간”으로 형상화된다. 특히 집 안에 무덤이 존재한다는 극적 설정은 ‘집이 곧 인간-삶 자체’라는 소설의 주제를 선연히 나타낸다. 소설집 462~463쪽 인용문의 “집이 상여였던 셈”이라는 표현은 서늘하면서도 절절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목수들의 “무덤 주인을 위한 제”는 이 소설의 백미다. 현대 주거 문화에서 자취를 감춘 ‘집-인간-삶’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경의가 함축된 장면이기 때문이다.


소설 「귀가」는 집의 삶과 죽음에 대하여 썼고, 그로써 현대인들의 ‘움직여 옮길 수 없는 재산’을 잠깐이나마 ‘집’으로 소생시켰다. 이 작품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자주 읽는 이유다.


황지호 단편소설 「귀가」 읽기

— 『2021 신춘문예 당선 소설집』 도서 정보: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

전북일보 홈페이지


리뷰 임재훈(작가, 디자인 기고가)

portfolio | @nowing_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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