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12
“난 선생이 아냐. 난 전투기 파일럿이고 해군 조종사야. 단순히 직업이 아니라 내 전부야. 그걸 어떻게 가르쳐?”
2022년 개봉한 영화 ⟨탑건: 매버릭⟩에서 주인공 피트 미첼 대령(톰 크루즈)이 전우 톰 카잔스키 제독(발 킬머)에게 울먹이며 말했던 대사다. 둘은 동기다. 1986년작 ⟨탑건⟩에서 피트와 톰은 모두 대위였다. 피트는 한국 군대 문화식으로 말하면 일명 ‘장포대’, 즉 ‘장군 되길 포기한 대위⋅대령’이다. 휘하 병력을 통솔하는 지휘관이나 남을 가르치는 교관이 되길 스스로 거부했다. 전투기 파일럿(해군 조종사)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고집하는 탓이다. 톰이 장관급 사령관직에 올라 지휘봉을 잡게 되는 세월 동안 피트는 조종간만 움켜쥐고 있었다. 군생활 약 30년에 겨우 위관급에서 영관급으로 진급했다. 그럼에도 본인은 대단히 즐겁고 자존감도 높은데, 전투기 파일럿이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서열보다 희열, 출세보다 자세, 앞날의 성공보다 이 순간의 창공이 더 소중한 군인이므로. 하지만 그도 나이를 먹는다. 이제는 다 내려놓고 교관의 임무에 집중할 때라는 톰의 지극히 상식적인 조언. 이 말에 피트는 “내려놓는 방법을 모르겠어.”라며 흐느끼고. 전우의 진심 어린 충고를 차마 내칠 수 없어 교관직을 수행하긴 하나, 주변 장교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끝내 조종석으로 돌아가 또 한 번 실전에 몸을 던진다.
직장 생활로 치면 피트 미첼은 ‘만년 실무자’형이다. 팀장, 파트장, 센터장 등 관리자급 직무에는 잘 맞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유형을 상관으로 둔 휘하 직원들은 개고생할 확률이 높다. 그러니까 피트 미첼 같은 직원은, 어느 정도 연차가 쌓이고 나면 자기 커리어에 대하여 결단을 내려야 한다. 실무를 하는 순간의 (오직 본인만 느낄 수 있는) 기쁨을 ‘다 내려놓고’ 훌륭한 관리자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인지, 아니면 계속 그 기쁨을 부여잡고 갈 것인지. 단, 후자를 선택할 거라면 조직 생활의 진급 시스템과 결별할 각오가 요구될 수도 있다. 그러고 난 뒤에는⋯ 승진해 높은 자리에 오른 동료들, 그들의 순탄한 가정 생활, 그들과 일면식도 없는 제삼자들(가족도 포함)이 때때로 일삼는 그들의 삶과 나의 삶에 대한 뜬금없는 비교, 어느 날 어느 때 별안간 엄습하는 ‘내가 제대로 살고 있기는 한 건가’ 따위의 청승, 그리고 뒤따르는 헛헛증 등등을 모조리 사랑해 버리는 태도를 연습해야 한다. 마음의 외피는 확장하고, 내질은 깊이 파내 앙금은 골라낸 다음, 옻칠하듯 관용과 지구력을 골고루 펴 바른다.
제 새끼들을 잘도 이끌고 아장아장 씩씩히 나아가는 오리 가족을 보며 생각한다. ‘사람도 힘든 일을, 참 장하게도 해낸다.’ 나도 회사원이었던, 무려 팀장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오리들도 잘 하는 그 일, 나를 따르는 누군가를 인솔하고 아우르는 그 일이 몹시 버거웠다. 회사에서도 나는 혼자 글쓸 때가 제일 행복했다. 피트 미첼이 울 때마다 나도 늘 따라 운다.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