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리틀’이었다면

[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11

by 임재훈 N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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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때 재미있게 본 영화 ⟨닥터 두리틀⟩. 동물들과 언어 소통이 가능한 내과 의사 존 두리틀의 요절복통 모험담이다. 주인공 두리틀 역을 맡은 에디 머피가 워낙 능청스러운 코미디 연기에 능한 배우라, 온갖 짐승들과 진지하게 대화하는 모습이 정말 웃겼다. 우리나라 더빙판에서는 개그맨 김국진 씨가 에디 머피의 목소리를 담당했었다. 20세기 초 영국 소설을 각색한 작품인데, 선천적으로 동물들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던 영화 속 두리틀과 달리 원작의 두리틀은 자기 반려조인 앵무새한테서 동물들의 각종 언어를 익혔다고 한다.

주인공 존의 성, 즉 ‘dolittle’은 게으름쟁이를 뜻하는 영단어다. ‘do’와 ‘little’을 떨어뜨려 놓으면 ‘거의 안 하다’, 이 상태에서 둘 사이에 ‘a’를 넣으면 ‘조금 더 하다’가 된다. 단어 자체가 영화 속 에디 머피처럼 익살맞다. 소설은 안 읽어 봐서 모르겠지만, ⟨닥터 두리틀⟩ 초반의 두리틀은 환자를 성심성의껏 진찰하기보다는 돈을 더 밝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공동 명의의 개인 병원을 의료계 거물에게 넘겨 한몫 챙기려다가, 유기견 한 마리를 만나 점차 도덕적으로 각성하면서 성실한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 개가 ‘do’와 ‘little’ 사이의 ‘a’ 역할을 하는 셈이랄까.

동네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개와 고양이 들에게 말을 걸어 볼 수 있다면. 가만히 앉아서 뭐 해? 배 안 고파? 뭐 좀 사다 줄까? 우리 집 놀러갈래? 맘에 들면 계속 살아도 좋고⋯⋯. 이렇게 물은 다음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싶다. 동물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장담하건대 내 일상에 공허감이라든지 심심함은 완벽히 사라질 것 같다. 그렇게만 된다면 ‘닥터 두어리틀’로서 지금보다 조금은 더 부지런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또 인간은 뜬구름이나 잡고, 그 야옹이와 그 멍멍이는 그러거나 말거나, 언제나처럼 평정심.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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