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앉았다 가겠습니다

[평일의 의식의 흐름. 여름] #18

by 임재훈 NOWer


#summer #18 A7C03453.jpg


해가 쨍하면 자외선 직격타에 지치고, 흐린 날엔 습도 때문에 진이 빠진다. 그래서 외출할 때 두툼한 손수건과 암막 처리가 된 우양산을 꼭 챙긴다. 여기에 미러리스 카메라까지 들면 몸가짐이 상당히 번거로워진다. 한여름에 옷차림은 짧고 가벼워지지만 짐은 오히려 는다. 복주머니 모양의 미니 크로스백(240그램짜리 스마트폰 휴대용)만 딱 메고 빈손으로 털레털레 걸어다니던 봄가을 산책이 그립다. 카메라 무게가 더해져도 가분가분 손길 발길이 내내 산뜻했던 계절. 어쨌거나 지금은 여름이고, 나는 우양산을 펼친 채 나머지 손으론 수건질을 했다가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가 법석을 떨어 대고 있다. 그러고 걷던 길에 발견한 웬 화단과 의자. 꽃밭을 가꾸는 이가 잠깐씩 앉아 있으려고 내놓은 것일까. 반가운 마음에 주인에게 허락도 안 받고 냅다 앉아 버린다. 염치 불구하고 잠깐 쉬어 갈 작정이다. ‘당신 누구요?’ 하는 불호령이 떨어질까 봐서 조마조마하지만, 그래도 우양산이고 카메라고 뭐고 바닥에 다 부려 놓고 땀을 닦아 내자니 체력이 금세 회복되는 기분이다. 다행히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다시 일어나 주섬주섬 짐을 들어올리고 나니 좀 멋쩍다. 텅 빈 거리에서 방귀를 뀌고선 혹시 누가 들었을까 봐 주위를 두리번거리듯, 나도 괜히 사주 경계를 하게 된다. 역시나 보이는 거라곤 풀과 꽃, 그리고 의자뿐이다. 내친김에 사진을 찍어 본다. 내가 몰래 앉았던 자리. 땀투성이 낯선 행인을 호쾌히 들여 준 곳. 화단과 의자는 나와 공범이다. 발뺌하지 말고, 어디 도망가지도 말고 계속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찰칵.






사진수필 『평일의 의식의 흐름』(2025)

- 글과 사진. 임재훈

- 저자 소개. 포트폴리오 / 인스타그램


※ 『평일의 의식의 흐름』 브런치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편으로 분재됩니다. 각 계절당 25편의 글과 그보다 많은 사진들을 실을 계획입니다. 혹시 모를 무단 전재 및 배포 행위를 예방하고자 브런치북에는 원본 사진이 아닌 해상도(용량)를 줄이고 텍스타일 효과를 입힌 사본을 게재합니다. 추후 출간 작업이 진행되면 출판사와 원본 사진들을 공유할 계획입니다.

이전 17화풀멍, 나무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