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년째 주기적으로 노란 숲의 꿈을 꾼다.”
식기 전에 떠먹여야 한다, 라고 편집장은 엄중히 말했다. 식은 건 대중이 거들떠보지 않아, 그런 건 그런 걸 가져온 녀석에게나 의미 있겠지, 전자레인지에 데우는 동안 누군가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새 이슈를 차려 오겠지, 다 데운 걸 ‘맛있기만 하네 뭘’ 하고 자위하며 먹는 동안 또 누군가가 새로운 이슈를 끓여 올 거고.
편집장은 다리를 꼬고 앉아 이슈 파이팅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고든 램지가 ‘키친 나이트메어’ 수습생들을 “너·희·는·집·에·갈·자·격·이·없·어”라는 언어의 식칼로 깍둑썰어 버리듯, 편집장은 신입 기자인 나를 상대로 삼십 분 넘게 일장 연설을 했다. 여성지 요리 전문 에디터 출신이라는 편집장은 이슈를 음식에 비유하고는 했다. 오징어 숙회처럼 온기를 잃어도 그럭저럭 괜찮은 이슈, 갓 구운 페스트리나 피자처럼 식는 즉시 볼품없이 굳어 버리는 이슈, 어느 달 어느 지역에서 먹어도 웬만큼의 건담(健啖)을 보장하지만 제철 쾌식의 희열만큼은 오직 근면한 미식가들에게만 허락한다는 섬진강 벚굴 같은 이슈.
비유를 즐기는 편집장의 화법은 도통 적응하기 어려웠지만(나는 직설 화법을 선호한다), 요리 전문 에디터에서 문화 예술 월간지 치프로 점프한 경력 관리만큼은 존중했다. 편집장이 내 롤모델이었다. 본래 나는 시사 주간지 기자가 되고 싶었다. 내가 지원한 숱한 매체들 중 하필 유일하게 합격한 곳이 여기여서, 우선은 문화 예술 기자로 커리어를 시작했을 뿐이다. 언젠가 편집장처럼 현재 몸담은 분야를 뛰어넘어 시사 쪽으로 이직할 계획이다.
최근 불거진 서양화가 초요(Cho-Yo)를 둘러싼 논란은 ‘벚굴’에 해당했다. 지난해 개인전을 통해 발표한 〈노란 숲〉이라는 작품(하드보드에 유채, 40.5×22cm)이 문제였다. 정확히 기술하면 초요가 직접 쓴 팔백여 자 분량의 긴—길어도 너무 긴 작가 노트가 논란거리였다.
나는 몇 년째 주기적으로 노란 숲의 꿈을 꾼다. 사후적으로 되짚어 보니 한 달에 한 번꼴이다. 나는 이 꿈을, 이 노란 숲을 일종의 생리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성의 멘스와도 같이, 월마다 나는 자궁으로 쏟는 실체적 피 대신 몽중의 황림(黃林)으로써 나의 남성성을 확인한다.
그렇다. 그 숲속에서 나는 수음을 한다. 숲에서 깬 내가 하는 일은 매번 같다. 누렇게 젖은 팬티를 씻는 일. 꿈속에서 흘린 새하얀 정액을 꿈 바깥에서 누런 얼룩으로 확인하는 일이란 기묘하다. 저 세계의 하양이 이 세계에선 노랑이듯, 어쩌면 내 꿈에 우거진 노란 숲은 현실에서 백림일지 모른다. 한겨울 자작나무 숲 같은.
어릴 때 나는 왜소한 아이였고, 점차 자라 어른이 되어 가면서는 내 본연의 형질이 증(症)으로 규정되었다. 이른바 왜소증. 작게 태어나 평생 작게 존재해 온 나는, 어딘가에 ‘큰 나’의 세상이 펼쳐져 있으리라 상상했다. 내 뼈와 살에 미처 닿지 못한, 그 비옥한 골격과 살점의 가능성이 나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영어 사전에서 왜소증을 찾아 본 적이 있다. 드워피즘(dwarfism). ‘증’과 마찬가지로 ‘-ism’ 또한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개념이었다. 나는 작게 존재하려는 ‘주의’를 지향한 적이 없었으므로. 오히려 커지려는 ‘주의’라면 용인할 수 있다. 나는 늘 커지고 싶은 소년이었으니.
서른 후반부터 매달 꾸는 노란 숲의 꿈. 이것이 어쩌면 내가 오래전 유실한 ‘성장’일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이렇게 믿고 있다. 언제든 그 노란 숲으로 기꺼이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백설 같은 순백의 정액을 언제까지고 부을 것이다.
신작 〈노란 숲〉에 대한 세간(이라고 해 봐야 국내 문화 예술계에 한정되지만)의 관심과 더불어 해당 텍스트도 이목을 끌었다. 제목과 달리 온통 암회색으로 채색된 화풍이 사람들에게 ‘노랑’과 ‘숲’의 의미를 탐구하도록 자극했고, 그래서 작가 노트도 널리 읽혔다.
문제 제기를 한 주인공은 어느 소설가였다. 삼십 대 초반에 큰 문학상 세 개를 수상한 스타였다. 그를 등단시킨 대형 출판사는 ‘소속 작가’(라는 표현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의 저작을 홍보하고자 ‘트리플 크라운 소설가’라는 수식어를 만들어 냈고, 몇몇 일간지의 문학 기자들과 일명 ‘북튜버’들이 받아 썼다. 심지어 외모까지 준수한 그 젊은 소설가는 이런저런 교양 프로와 예능 프로에도 곧잘 섭외되면서 점차 대중적 인지도를 얻었다.
그런 ‘인싸’가 서양화가 초요를 저격했다. 그는 ‘소속 출판사’(라는 표현도 역시 부적절할까)의 공식 유튜브 콘텐츠에 출연해 〈노란 숲〉 작가 노트의 ‘노란 숲’과 ‘숲속에서 수음하는 남성’ 이미지가 자신의 등단작 속 설정과 유사하다고 주장했다. 꿈을 깨고 난 뒤 ‘누렇게 젖은 팬티를 씻는다’는 대목도 본인의 단편소설 내용과 똑같다고 강조했다.
이 영상이 게재된 시점은 공교롭게도 한 장애인 단체의 서울시내 전동열차 점거 시위 개시일과 겹쳤다. 대중교통 시설의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던 단체는 출퇴근길 지하철 이용객들의 불편을 초래했다. 주류 언론은 시위의 의도와 메시지보다는 공공질서 혼란을 힘주어 지적했다. 집권당은 논평을 내고 장애인 단체를 사회 불안 조장 세력으로 규정했다. 같은 당 소속인 서울시장도 정례 브리핑을 통해 즉각적인 시위대 해산이 선행되지 않는 한 시정(市政) 차원의 협상은 없을 것임을 시사했다.
이런 와중에 화가 초요의 표절 논란이 불거진 것이었다. 사실 초요는 미술계에서 그리 중요한 인물로 언급되는 작가가 아니었다. 초요의 작품 세계는 비평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호평도 없고 악평도 없다. 선플과 악플보다 서러운 무플의 실례가 바로 초요였다. 그는 조용히 그림을 그리며 이따금 개인전을 열거나, 장애 예술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동료 또는 후배 작가들과 단체전에 참여했다. 미술치료사 자격증을 가진 초요는 대안 학교, 미술치료협회 주관 교육 프로그램 등에 출강하며 경제 활동을 이어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단편소설 「노란 숲의 초요」 #2로 이어집니다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