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온통 푸르지? 형은 맨눈으로 못 보겠지만.”
올여름 연합 엠티 장소가 청월마을로 정해진 이유는 아마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과대표가 적극적으로 추진했을 테고 학과 행사 집행부 동기생들은 굳이 이견을 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중견 소설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학과장을 비롯해 예하 정교수들이 동행하지 않는 이상, 엠티 장소 섭외 과정에 ‘과연 문예창작학과의 행사는 뭔가 문학적이군’ 하고 감탄할 만한 요소는 고려되지 않았다. 그런 행사라 할 만한 것은 교수 은퇴식, 선배들의 등단 축하연, 희곡 학회의 창작극 공연 정도였다. 시·소설 합평회 때 남의 습작을 문단·문장·어절·구두점 단위로 가혹하게 조리돌릴 때 으레 지적하는, 이른바 장소성 내지 공간성에의 섬세한 고민은 엠티 장소 및 공간 선정에서는 부재했다.
학우들은 엠티를 어디로 가든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엠티 자체에 무신경하다는 쪽이 더 맞을 것이다. 가서 하는 일이라고 해 봐야 새벽까지 술 마시고, 인스타그램에 사진 올리고, 함께 간 선후배·동기 무리와 좀더 친밀해지는 정도다. 귀중한 주말을 그런 한철 추억에 낭비하고 싶지는 않으리라. 요즘 문창과 재학생들은 시나 소설, 희곡, 평론보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더 열렬히 쓴다는 풍문의 진상을 나는 입학 첫해에 파악했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잘 다니던 학교 관두고 뭐 하러 이런 학과 들어온다고 입시를 또 쳤을까. 여름 연합 엠티는 또 왜 온다고 했을까.’
듣도 보도 못한 청월마을이라는 곳에 거의 당도해 갈 때 나는 후회스러웠다. 경상남도 함양군의 무슨 면 무슨 리에 소재한, ‘푸른달길’이라는 지리산 둘레길 코스와 인접한 산자락의 작은 마을. 길을 따라 똑바로 세 시간쯤 걸으면 지리산 등정로 초입에 이른다고 한다. 서울의 학교 운동장에서 문창과 학생 열다섯 명을 싣고 여섯 시간 넘게 달려온 구인승 사륜구동 승합차 두 대는 마지막 노정인 푸른달길을 오르고 있었다.
푸른달길은 도보객들이 즐겨 걷는 길은 아닌 듯했다. 코스 진입로의 사립문—선두 차량의 기사님이 하차해 직접 문을 열어야 했다.—에 ‘여기서부터 淸月路입니다’라고 적힌 이정표 말고는 아무런 경로 안내판도 보지 못했다. 게다가 사립문의 이정표는 다른 둘레길 코스들의 표지판들과 디자인도 서체도 달랐다. 푸른달길이라는 공식 한글 명칭을 청월로, 그것도 한자로 표기한 점도 통일성과 어긋났다. 오는 동안 지나친 몇몇 코스들에는 트레킹 폴 같은 등산 용품이나 마실 거리를 파는 노점상들이 다문다문 보였다. 초가 지붕이 얹어진 카페도 하나 있었다. 차량 운행 및 보행 겸용 코스여서 자연히 상권이 형성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리산 둘레길의 아이덴티티 리뉴얼 또는 사인 시스템 정비 과정에서 모종의 사유로 푸른달길만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추측을 자연스레 하게 될 만큼 푸른달길은 외따로워 보였다.
보행 전용로라 애초에 자동차가 들어오면 안 되는 길이나, 지리산 둘레길 코스별 지킴터도 산악순찰대도 부재한 덩그만 숲길이었기에 승합차 두 대는 무탈히 비탈길을 올랐다. 길 좌우로 온통 나무들이었던 배좁고 어둑한 숲의 구역을 통과하니 이계의 차원이 열리듯 별안간 개활지가 펼쳐졌다. 통행로의 폭도 넓어졌다. 자동차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일차선 도로였으나, 도보객 대여섯 명쯤이 나란히 걸을 수 있을 만큼 넉넉했다. 키 큰 수풀 대신 만만한 초목이 차창 밖으로 내려다보였다. 전방 좌우 어디를 보든 시야가 탁 트였다.
나는 무릎 위에 올려 놓은 배낭 안에서 안경집을 꺼내 뚜껑을 열고, 남들이 선글라스라 오해하는 교정 안경을 착용했다. 그제야 하늘도 초목도 온통 자연한 제 빛깔로, 선명한 초록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푸른달길과 청월마을이라는 이름도 내 인지 체계 안에서 얼마간 또렷해진 느낌이었다. ‘청월마을(500M ↑)’. 산봉우리를 닮은 커다란 바위 표면에 음각된 이정표. 그 앞에 대학생 열다섯 명을 재잘재잘 붓고 차량들은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돌아갔다. 마을까지 남은 오백 미터의 비탈길 구간은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
비흡연자인 나를 제외한 열네 명은 마치 공동의 의식을 거행하듯 둥글게 모여 담배를 피웠다. 일 학년 여자애들 셋이 두 팔을 크게 뻗으며 기지개를 켰다. 과대표를 비롯한 이 학년 남자 녀석들의 시선이 여자 후배들의 들어올려진 반소매 안 겨드랑으로 일제히 이동했다. 슬리브리스 크롭탑에 긴팔 셔츠를 걸치고 온 이 학년 홍일점도 똑같은 자세를 취했다. 이번에는 새내기 남자애들의 눈이 유일한 여자 선배에게로 모아졌다.
‘쟤네들 중에서도 언젠가 등단 작가가 나오겠지. 누가 될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원 바깥에 외따로 서서 미지근해진 생수병(함양 톨게이트 진입 전 마지막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샀다.) 마개를 열었다. 물을 마시다가 과대표와 눈이 마주쳤다. 입에 삐뚜름 장초가 물린 놈의 얼굴은 이렇다 할 표정도 없이 물끄러미 원외(圓外)의 존재를 응시하더니 이내 원 안으로 돌려졌다.
‘어때, 온통 푸르지? 형은 맨눈으로 못 보겠지만.’
땀 때문에 코허리까지 내려앉은 안경을 추어올리며 나는 놈의 음성을 상상했다. 흡연자들의 둥근 원 너머로 지리산 봉우리들이 아득했다. 기다마한 담배 연기 가닥들이 먼 산의 위용 앞에 하찮아 보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학과 활동에 열심이었던 삼사 학년 형·누나들, 오리엔테이션 때 처음 본 대학원생 고학번 선배들은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다행한 일이었다. 취업, 석박사 논문, 그 밖에 이러저러한 자기 계발로 다들 분주한 모양이었다. 본래 다니던 학교에서 경영학과를 작파하지 않았다면 나도 지금 그들처럼 바쁘게 살았을까. 한 학번 위 동갑내기 선배들을 볼 때마다 나는 자격지심 비슷한 묘한 감정을 갖고는 했다. 정신 연령이 무려 일 년이나 퇴보한 기분이랄까. 내가 뭘 하든 저들보다 일 년은 늦겠구나, 하는 열패감. 그래서 삼 학년 선배들과는 어울리기가 힘들었고, 전 학번이 모두 참여 가능한 연합 엠티는 오고 싶지 않았다.
청월, 푸른 달이라는 이름만 아니었다면 이번 엠티에도 불참했을 것이다. 과대표는 나 한 사람을 겨냥해 굳이 이 청월마을이라는 낯선 곳을 엠티 장소로 선정한 것이 분명하다.
‘색이 사라진 세계에 푸른 달이란 없다, 라고 형이 썼잖아. 그런데 여기 좀 봐. 이렇게 청월이 있는데?’
과대표는 이렇게 말하고도 남을 인간이다.
— 단편소설 「푸른달길에 누워」 #2로 이어집니다
— 사진: 경상남도 함양 창원마을 초입, 2012년 8월 7일, 직접 촬영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