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지시 대명사로 ‘그것’과 ‘그곳’이 혼용되어 있던데요.”
지방 모 대학의 경영학과에 다녔었고요, 수능 점수 맞춰서 간 거라 해당 학교도 학과도 전혀 흥미가 없었는데요, 딱히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서 아무 대학의 아무 과나 가서 차차 진로를 정할 계획이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현재 우리 과 학과장님의 소설 특강을 듣게 된 거죠, 그때는 우리 학교 학과장님이신 줄도 몰랐어요, 그렇게 글이라는 묘목이 제 심장에 날아와 뿌리를 내렸던 것 같고요,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사뮈엘 베케트랑 정영문, 시인 중에서는 김기택이고⋯⋯
라고 첫 소설 합평 때 낯뜨겁게 자기소개를 했었다. 경영학과 일 년 다니다 자퇴하고 수능 다시 쳐서 문예창작학과 새내기로 들어온 나의 글쓰기 진정성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었던 듯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딱히 그렇게까지 열의를 보일 필요는 없었던 것 같은데. 강의실의 모든 학생들이 내가 쓴 엽편소설의 프린트물을 책상 위에 올려 둔 채 앉아 있었고, 나는 가슴께까지 가려주는 교탁 뒤에 숙연히 서서 일 학년생들의 평론을 기다렸다.
‘나의 결핍’을 주제로 한 엽편소설 쓰기 과제. 지난 강의 때 학생 전원이 제출했고, 곧바로 이튿날 학교 종합정보시스템 교과목 메뉴에 담당 강사의 합평 공지가 올라왔다. ‘현 게시물에 파일로 첨부한 세 작품을 수강생 전원 일독 후 다음 강의 시간에 인쇄해 올 것.’ 엠에스워드 양식의 첨부 파일 세 개 중 하나가 내 과제물, 나의 첫 소설이었다. 지독히도 형편없이 쓴 애들 셋을 골랐나 보다, 그러니 나도 뽑혔지, 라고 짐작했지만 애들끼리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그 반대인 모양이었다. 선배들이 그러더라, 학기 중에 ‘소설창작의 기초’ 담당 강사한테 한 번이라도 지명 받으면 학점 ‘삐쁠’은 보장 받는다, 아무리 지각·결석해도 최소 ‘씨쁠’이라고 하더라.
수능 다시 쳐서 문창과 들어오기를 잘 했다, 역시 내 길은 글이 맞았나 보다, 하고 뿌듯해하면서도 살벌한 악평 난타에 평정심을 잃게 되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교탁 뒤에 서 있었다.
역시나 먼저 손 들고 말하는 애들은 없었다. 합평의 첫 순서여서인지 동기생들의 ‘비평가 모드’ 예열이 미처 완료되지 않은 것 같았다. 나로서는 다행이었다. 그 상태로 계속 시간을 소진해 두 번째, 세 번째 합평으로 빨리 넘어가기를 바랐다. 내 속내를 읽기라도 한 양 강의실 창턱에 걸터앉아 관망 중이던 강사가 학생 한 명을 지목해 발언권을 주었다. 하필 과대표였다. 녀석은 지목되기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즉각 비평가로 돌변했다.
“색이 사라진 세계에 푸른 달이란 없다. 나의 달은, 언제나 잿빛으로 이울고 차 오른다. 나의 밤은 유골함 같은 회색 달의 시간이다.”
과대표는 내 소설이 인쇄된 용지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볼펜을 든 채 첫 문단을 소리 내어 읽었다. 중저음, 정확한 발성, 구두점과 다음 문장 사이에서 이 초쯤 머무르는 호흡. 과내 희곡 학회 멤버임을 과시하듯 한껏 멋을 부린 강송이었다. 녀석의 방백 같은낭독은 첫 문단 아래, 한 줄의 여백으로 행갈이 된 부분을 넘어가지 않고 짧은 한숨 소리와 함께 멈췄다.
“화자가 색맹이라는 설정이 너무 급하게, 뭐랄까, 좀 일차원적으로 제시된 것 같아요. 색이 사라진 세계? 이 표현도 좀 진부하고. 결핍의 주제를 이렇게 초장부터 대놓고 선언해 버리면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을까요? 더 읽고 싶은 마음이 안 들 것 같은데요. 아, 자잘한 것 하나만 더요. 달의 지시 대명사로 ‘그것’과 ‘그곳’이 혼용되어 있던데요.(이 대목에서 녀석은 인쇄 용지의 해당 낱말들에 볼펜으로 동그라미를 치는 듯했다.) 화자에게 달은 그것의 물성과 그곳의 장소성을 동시에 상징한다는 의미인가 싶었는데 그냥 단순 오기(誤記)처럼도 읽히더군요. 추후 퇴고하실 때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합평 시간에는 학우들끼리 경어체를 쓴다. 평상시의 은어와 속어가 합쇼체와 해요체라는 언어의 거름망으로 정제된다. 합평 때 애들은 보다 어른스러워진다. 평론가를 연기하는 문청들이라고 해야 할까. 과대표의 의견을 잠자코 들으며 나는 안경을 벗어 교탁 위에 올려 놓았다. 불편한 상황에서 나오는 내 버릇이다. 눈앞의 현실에서 의도적으로 색을 빼 버리는 행위. 중학생 시절부터 적록색맹 보정 안경을 착용해 온 내 나름의 처신술이다. 현실성이 탈색됨으로써, 나는 이 순간의 당사자에서 관조자로 한 발 물러서게 되는 착시 효과를 얻는다. 그러면 다소간 의연해진다.
초등학교 삼 학년 때 하굣길 횡단보도에서 오토바이에 치였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깨어나 보니 온통 흑백이었다. 시신경 훼손에 의한 일시적 색각 이상이었다. 이른바 후천적 전색맹이었는데, 다행히 서서히 색각이 돌아와 사 학년 올라갈 무렵에는 상당한 차도를 보였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빨간색과 초록색을 구분 못하는 적록색맹에서 더이상 나아지지 않았다. 흑백의 세상을 일 년 남짓 경험한 터라 적록이 퇴화한 세상이어도 충분했다. 학창 시절 내내 선글라스 같은 보정 안경을 쓰느라 자주 놀림을 당하기는 했어도, 스무 살이 되어 성인들의 세계를 접하고 나니 딱히 큰 불편이 없었다. 선글라스 착용했다고 놀리는 일은 성인들 사이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과대표의 카키색 스웨트 셔츠가 채도 낮은 머스터드 빛깔로 변해 있었다. 그는 연극 투의 목소리 톤으로 합평을 마저 이었다.
“그리고, 이게 좀 민감한 부분인데 말입니다, 물론 학우께서 의도하셨을 리는 만무하겠지만, 밤하늘의 달을 유골함에 비유한 것은 표절 의혹을 살 수 있어요. 메타포 쓰실 때 더 면밀해지셔야 할 것 같아요.”
표절이라고? 곧바로 반박을 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과대표가 운운한 표절 의혹의 근거를 일단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구십육 년도에 나온 어느 시의 첫 행이 ‘밤하늘에 둥근 유골단지가 떠 있다’예요. 달 이퀄 유골단지. 이미 이십여 년 전에 기성 시인이 써먹은 메타포라는 말입니다.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 궁금하시면 수업 끝나고 제가 시집 제목이랑 시인 이름을 알려드리죠.”
나는 내려놓았던 안경을 다시 끼고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발언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관조자로 물러서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시 카키색으로 돌아온 그는 더 말을 잇지 않고 내 눈을 응시했다. 과대표는 지금, 상대 패널의 반론권을 충분히 배려하는 성숙한 토론자의 모습을 연기하는 중이라고 나는 격하해 받아들였다.
“우선, 미흡한 제 첫 소설을 그리 깊이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까만 밤하늘에 뜬 허연 보름달을 유골함에 비유하기는 했지만, 사실 쓰면서도 ‘너무 고리타분한 이미지 매칭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역시나 그 점을 짚어 주셨네요. 말씀하신 시집은 읽어 보지 못했지만, 뭐, 시간 되면 한번 참고는 해 보겠습니다. 시인 성함은 알고 있으니 알려주실 필요는 없고요. 밤하늘에 둥근 유골단지가 떠 있다, 라니. 음, 딱히 훔치고 싶은 표현은 아닌데요? 저처럼 하찮은 문창과 일 학년생의 습작에도 등장할 정도면 뭐 말 다 한 것 아닌가요? 기성 시인이라고 해서 늘 명문만 쓸 수는 없겠죠.”
과대표와 나의 공방을 지켜보던 애들이 일제히 “오⋯.” 하는 낮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고는 과대표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과연 어떻게 받아칠 것인가. 하지만 대거리는 이어지지 않았다. 과대표는 그저 내 눈만 쳐다볼 뿐이었다. 끓는점 도달에 실패한 구십구 도짜리 벌게진 얼굴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다시 안경을 벗어 내려놓았다. 담당 강사는 과대표와 나의 말 모두 고민해 볼 여지가 있다며 양시론적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구태여 사족을 덧붙였다.
“우리 과대는 창작보다는 평론 쪽인가?”
동기들 몇몇이 낮은 소리로 쿡쿡댔다. 물론 나도 웃는 낯으로 서 있었다. 담당 강사의 그 말이 저주로 작동한 것인지, 과대표는 그날도 그렇고 이후 단 한 번도 합평 시간에 불려나온 적이 없었다. 비단 소설 창작 수업뿐 아니라 시, 희곡, 아동문학, 심지어 비평 과목에서도 녀석의 습작은 합평 작품으로 간택 받지 못했다.
좌우간 일 학년 첫 소설 합평이 모든 것의 기원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과대표는 합평 때마다 내 작품을 신랄하게 까내렸고, 개강총회·종강총회·문학기행·문창해오름제 같은 과내 행사에서 술만 마시면 내 글을 물고 늘어졌다. “응? 갑자기?”라는 말이 나올만큼 뜬금없이 합평 때 못다 한 강평을 늘어 놓고는 했다. 내 입장에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격이었고, 제삼자인 동기 애들 역시 술자리를 합평회 연장전으로 변질시켜 버리는 과대표의 상습을 거북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과대표가 연임 의사를 밝혔을 때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과대표라는 보직은 학과장을 비롯한 교수 및 강사진에게 수시로 호출되는 성가신 보직이어서 동기들 모두 녀석의 자원을 반겼다. 저런 귀찮은 걸 왜 일 년이나 또 한다고 그럴까, 딱히 특혜도 없잖아, 아무튼 본인이 하고 싶다니 우리는 잘됐지 뭐, 그러게 고맙기는 하다, 술이나 마시자, 안 돼 나 과제 밀렸어, 나도 공모전 마감 내일까지라 안 돼, ⋯⋯. 다들 이렇게 뒷공론을 하며 이 학년이 되었다.
— 단편소설 「푸른달길에 누워」 #3으로 이어집니다
— 사진: 경상남도 함양 창원마을 인근 둘레길, 2012년 8월 7일, 직접 촬영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