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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재훈 NOWer Mar 04. 2024

신간 리뷰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직업이기 전, ‘태도’로서의 작가 연습



※ 인플루엔셜 출판사의 도서 증정 및 리뷰 제안에 응하여 작성한 글임을 밝힙니다.



글쓰기가 대중의 꿈이 된 시대다. 많은 사람들이 글을 쓰려 하고, 글쓰기로써 자아 실현을 도모하며, 작가를 전업 혹은 부업으로 삼고자 노력하고 있다. 글쓰기 플랫폼 ‘브런치스토리’가 2023년 개최한 〈제11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의 경쟁률은 880 대 1, 응모작 규모는 무려 8,800여 편이었다.(출처) 브런치스토리에서 작가로 등록된 회원은 6만 6,000여 명, 해당 플랫폼을 기반으로 출간된 저작물은 7,100여 권이다.(출처) 이 수치는 취미나 부업, 혹은 전업으로 글을 쓰며 출간 작가 데뷔를 희망하는 대중의 수요를 방증한다. 작문 능력 함양을 돕는 이른바 ‘글쓰기 책’이 여러 출판사를 통해 활발히 출간되는 배경이다. 이러한 출판 시장의 상황을 고려할 때, 글쓰기는 이제 글을 쓴다는 행위 이상의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듯하다. 자기 표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을 넘어, 대중성(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 주기를 바란다.) 내지는 상업성(출간 계약을 맺고 출판 시장에서 판매되기를 원한다.)을 전제로 한 일종의 직능적 과업으로 자리매김한 느낌이랄까.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과거의 ‘작가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관념을 압도했다. 이 현상은 프로 작가 못잖은 필력의 소유자들, 즉 일상 속 글 쓰는 생활인들을 시장 또는 시장의 진입로 앞으로 집합시켰다. 작가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믿었던 시대에 작가로 데뷔한 문필업 종사자들은 이제 동료 작가들뿐 아니라 잠재적 예비 작가들과도 글을 겨뤄야 한다. 이것은 마치, 팀플레이라 해 봐야 학급이나 동네 친구들끼리의 2~4인 대진만 구현했던 게임이 온라인 대전 서비스 플랫폼의 등장과 함께 글로벌 각축장으로 확장된 사건과도 유사하다. 시뮬레이션 속 차량을 몰던 레이싱 게이머가 실제 레이서로 데뷔하고 우승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 세상이다.



이런 와중에 또 한 권의 글쓰기 책이 나왔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다나카 히로노부, 인플루엔셜, 2024. 2.)라는 제목이다. ‘아마존 재팬 종합 베스트 1위’, ‘이제껏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글쓰기 강의’ 같은 휘황한 홍보 문구가 겉표지를 채우고 있다. 수사가 하도 요란하고 부셔서 눈을 돌려 버리고 말았으나, 다시 눈길이 잡아당겨진 까닭은 제목 때문이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라니. 순수히 혼자만의 시공간 안에서 나 좋자고 행하는 글쓰기를 추억(?)하는 말맛이었다. 출판사에 투고하거나 조회수 대박을 터뜨리거나 ‘글 너무 공감돼요!’ 하는 댓글을 갈급하는 등 일체의 부수적 제반사를 걷어 낸, 글을 쓰고 있는 자 일인의 존재를 사유하는 제목으로 읽혔다. 정독 후의 감상 또한 제목에서 받은 첫인상과 동일했다. 테크니컬한 작문 기술을 세세히 짚는 작법 안내서라기보다는 ‘글 쓰는 인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수없이 반복 강조하는 지침서에 가까웠다. 서문에서부터 저자 스스로 “이 책은 세간에 많이 나와 있는 ‘글쓰기 테크닉 책’이 아니다.”라고 선언해 놓았다. 이 기조가 마지막 장까지 쭉 이어진다.


01. 이 책에 글쓰기 기술은 나오지 않는다

02. 삶의 방식을 바꾸게 만든 글쓰기의 힘

03. 거절할 수 없는 메일 쓰기에 대하여

04. 글쓰기가 가진 본래의 즐거움을 놓치지 마라

05. 진정한 의미의 ‘글’이란 무엇인가

06. “내가 쓰고 있는 게 에세이라고요?”

07.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말할 수 있는가

08. 글을 쓰다 길을 잃고 헤매고 싶지 않다면

09. 알고 있던 단어의 의미도 의심하라

10. 타깃 따위는 없어도 된다

11.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은 쓰지 마라

12. “저는 제 글이 재미있는데요?”

13. 내가 쓴 글로 좋은 반응을 얻고 싶다면

14. 어떠한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

15. 끝까지 읽히는 글을 쓰고 싶다면

16. 글로 나를 표현한다는 위험한 착각

17. 매력적인 글은 어떻게 쓰는가

18. 글쓰기에 대한 실질적인 해법

19. 거인의 어깨 위에서 글 쓰는 법

20. 고수는 맛없는 음식에 대해서도 쓸 말이 있다

21. 결론에 무게를 더하는 법

22. 짧은 SNS 글에서도 반드시 기승전결을 고민하라

23. 언젠가 누군가는 당신의 글을 읽는다

24. 가치 있는 언어를 손에 넣는 법

25. 당신의 글을 돈이 되는 이야기로 만들어라

26. 한 줄을 썼을 때 벌어진 마법 같은 일

27. 쓰기 위해 살고, 살아가기 위해 쓴다


이렇듯 총 스물일곱 가지 장으로 구성된 책이다. 작문 테크닉을 아예 가르쳐 주지 않는 것은 아니나(심지어 ‘당신의 글이 돈이 되는 이야기로 만들어라’ 같은 장도 존재한다.) 본문을 관통하는 주된 기조는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라는 표제의 주장을 벗어나지 않는다. 작가 한 명에 독자 한 사람, 작가와 첫 독자가 일치되는 최초의 순간, 즉 글 쓰는 자 일인의 시공간을 유일의 세계관으로 삼는다. 작가와 독자를 시종일관 한 개체로 배치했다는 점이 글쓰기 책으로서 갖는 이 단행본의 미덕이다. 붙임표(-)를 사용하면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의 구도가 좀더 선명히 와 닿는다. 작가-독자, 쓰기-읽기. 두 존재와 행위를 별개로 가르지 않고 합일된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를테면 배우들의 리허설과 유사한 것으로 글쓰기 행위를 조명한 셈이다. 리허설 때 배우들의 관객은 그들 자신이다. 자기들끼리 대사와 몸짓을 주고받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연기를 조정하고 조율한다. 물론 연출자의 디렉팅이 가해지기는 하나, 따지고 보면 연출자 자신도 관객의 시선이 아닌 제 판단에 의거해 배우들을 지휘한다. 출연진과 감독 모두 ‘자신 안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는 점은 동일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배우들은 자신이 아닌 배역을 연기하고 연출자는 자신이 아닌 등장인물을 타인(배우)의 신체에 실어 현시하는 과업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 바깥의 대상을 자신 안에서 자신만의 무엇으로 만들어 내보이는 일이다. 글쓰기도 이와 비슷한 구석이 있는데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도 아래와 같이 언급했다.


“에세이에서 사상은 늘 자신의 외부에 있다. 자신 바깥에 있는 ‘외부의 존재’를 존중하지 않으면 나도 나의 외부로부터 존중받을 수 없다.”

(169~170쪽)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의 요체를 표한 문장을 딱 하나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위 인용문을 고르고 싶다.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작가 혼자 하는 ‘싱글 플레이’다. 물리적 환경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온전히 혼자는 아닌 이유가 위 인용문이다. “늘 자신의 외부에 있”는 대상을 써 나가는 일이 글쓰기이므로. 나 자신에 대하여 쓸 때조차도 그 ‘나’라는 대상은 나의 바깥에 두어야 한다. 한 편의 글은 영화나 음악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콘텐츠다. 콘텐츠 안에 나 자신을 등장시키려면 마땅히 ‘바깥에서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더해져야 캐릭터의 입체성을 보증 받는다. 위 인용문이 말하는 “자신 바깥에 있는 ‘외부의 존재’”가 때로는 작가 자신이어야 하는 순간도 부지기수다. 얼마간의 자기 분열적 유연함이야말로 글 쓰는 자가 필히 취해야 할 필술의 술법 아닐까 싶다.


요컨대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는 직업으로서의 작가를 꿈꾸기(욕망하기) 전, 태도로서의 작가를 정립하는 데 실효적인 글쓰기 책이다. 글의 목적성보다는 글 쓰는 자와 글쓰기 행위 자체의 현전성을 위시한 자기 계발서다. 그리고 곰곰 곱씹을수록 서늘한 언명을 제목으로 앞세운 책이기도 하다. 내가 읽고 싶은 것이 내 글쓰기의 내용과 품질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면, 결국 쓰기의 관건은 작가의 읽기 취향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불교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전생을 알고자 하면 현생을 보면 될 일이고, 미래가 궁금하면 현재를 잘 살펴라.’ 윤회 사상에 입각한 얘기다. 지금의 삶이 편안하면 전생에 복을 지었다는 뜻이고, 오늘을 살아가며 쌓는 덕이 차곡차곡 미래를 짓는다는 교훈이다. 작가의 글쓰기도 이와 비슷하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읽고 싶어하는가’라는 질문이 과거에 쓴 글을 돌아보고 앞으로 쓸 글을 기획하도록 만든다. 읽기 취향 또는 읽기 안목을 부단히 벼려야 하는 까닭이다. 심미안은 근육과 같아서 힘써 키울수록 들어올릴 수 있는 글의 무게도 조금씩 더해지게 마련이다. 동화책에 열중하던 어린이가 점차 세계문학전집, 철학 이론서 등등을 힘껏 읽어 나가게 되는 것도 다름 아닌 ‘근력 운동’의 결과가 아닐까.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는 말은 달리 말해 ‘내가 들 수 있는 걸 들면 된다’는 소리다. 그리고 ‘내가 달릴 수 있는 거리를 달리면 된다’이자, ‘내가 오를 수 있는 높이를 오르면 된다’이기도 하면서, ‘내가 참을 수 있는 깊이를 잠수하면 된다’는 제언이다.


“평상시에 그냥 떠들며 지내는 시간은 빈둥거리며 길을 걷는 것과 같다. 거기에서 조금이라도 풍경을 바꾸기 위해, 이곳이 아닌 어딘가로 가기 위해, 나는 괴로워도 산을 오르듯 글을 쓴다. 등산은 길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223쪽)


책 말미에 나오는 저자의 글쓰기 지론이다. 자연스럽게 시인 이성복의 시론서 『극지의 시』가 떠올랐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그 책 속지에 시인의 친필처럼 인쇄된 짧은 잠언이 기억났다. ‘항상 자기를 겨냥해야 해요.’ 글 쓰는 자라면 무릇 매섭게 자기를 조준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를 실현하려면 ‘내가 쓰고 싶은 걸 읽으면 된다’를 선행해야 할 것인데, 읽고 싶은 걸 쓰는 일이나 쓰고 싶은 걸 읽는 일이나 다 나 자신을 과녁으로 세운다. 오늘의 나를 쏘아 맞추고, 달라진 나를 새 과녁으로 세우고, 그걸 또 쓰러뜨리고, 다음 과녁을 새로 세우고, ⋯⋯. 글쓰기란 이런 나날의 반복임을 일찍이 강조했던 시인의 목소리와,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라는 신간의 포즈가 한 사람의 것인 양 선연하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도서 정보

바로 가기 ➲ 교보문고 / 알라딘 / 예스24


함께 읽어 볼 만한 책: ‘태도로서의 작가’를 말하는 글쓰기 책들

— 『소설가』, 박상우, 해냄, 2018. 10.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인 소설가 박상우의 ‘소설가론’. 소설을 쓰는 일과 소설가라는 직업을 갖는 일의 현실적 차이를 분명하게 그어 설명한다. 비단 소설이 아니어도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자 하는 독자들이 정독하면 태도 정립에 큰 도움을 받을 것이다.


— 『광기, 예술, 글쓰기』, 김남시, 자음과모음, 2017. 12.

독일에서 공부한 미학자 김남시의 글쓰기 지론. 글쓰기 행위를 일종의 ‘광인 상태’로 바라보는 독특한 책이다. 광기에 버금가는 창의성, 한 분야에 미쳐 버리는 광적인 태도를 열망한다면 반드시 일독해야 할 책이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현대문학, 2016. 4.

제목과는 달리 ‘태도로서의 소설가’를 말하는 책.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니라 직업인으로 규정하는 세계적 작가의 직무적 일상과 사고방식, 그러한 삶을 선택하고 체현하기 위해 필요한 태도를 배울 수 있다.






글쓴이. 임재훈

윤디자인그룹이 운영하는 온라인 디자인 매체 『타이포그래피 서울』의 에디터로 근무했다.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지 『더 티(the T)』 9·10·11호의 편집진 일원으로 일했다. 경기도시공사, 한국언론진흥재단, 효성그룹 등 국내 기업 및 기관의 홍보 콘텐츠 제작에 참여했다. 저서로 『실무자를 위한 기업 홍보 콘텐츠 작법』과 『잘나가는 스토리의 디테일』, 공저로 『나답게 사는 건 가능합니까』와 『소셜 피플』(총 8부작)이 있다. 2023년 단편소설 「공동(空洞)」으로 스토리코스모스 신인 소설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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