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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 Nov 17. 2022

그에 대하여

He is My Fine.

새벽녘, 늘 일곱 시면 신랑이 출근을 하는데, 그날은 웬일인지 조금 더 일찍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하더라. 시계를 보니 6시를 조금 넘긴 시간. 늘 그렇듯 침대맡에 와 출근인사를 하고 나간다. 현관도어를 열고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하는 그의 노랫소리를 듣고 있자니, 침대 속에서 나까지 행복해진다.


겨우 겨우 일어나 출근하는 나로서는, 이른 아침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할 수 있는 그의 근면함과 긍정의 태도가 놀랍기만 하다. 콧노래라니. 비단 아침에만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종종 콧노래를 부르며 청소를 하고 밥을 짓고 운전을 한다. 나도 그리 어두운 편은 아니지만 그와 있으면 내 속에 있는 작은 어둠마저도 환해지는 기분이다. 대책과 근거 없이 우리 미래에 대해 밝게만 생각하는 그가 가끔은 못마땅하기도 하지만, 그의 낙천적이고 자족하는 태도가 어쩌면 정말 우리가 별 탈 없이 이 세계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안도감을 준다.


나를 만나기 이전의 그를 내가 어찌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냐만은. 그는 속이는 법이 없는 사람이라 고시에 실패한 것이며 그가 해온 연애라는 것이 짝사랑 아니면 너무 일방적으로 맞춰주기만 했던 노동 같은 사랑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가 했을 맘고생을 생각하면 속이 상하지만, 다 자기 때가 있는 것이니까, 그런 세월을 딛고 우리가 만나게 되어,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하면 감사하기만 하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불안함이 없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원하는 것을 다 손에 넣어서는 단연코 아니다. 다만 그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다. 이익에 따라 의를 저버리지 않으려는 노력과 선택을 하는 사람이라는 기본 신뢰. 그게 그를 자존감 높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다. 겉모습보다는 속 모습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단단함 같은 것이 그에게 있다. 아마도 그의 신앙이 그를 그렇게 꼭 붙잡고 있는 것일지 모르겠다. 아니 그럴 것임이 틀림없다.


그는 늘 자족한다. 어머님은 그에게 욕심과 야망을 가져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끊임없이 들었음에도 그는 그다지 간절히 원하는 게 없다. 덕분에 우리 삶이 큰 성공이나 부귀영화와는 거리가 멀지만, 지금의 우리 일상, 우리의 작은 집, 철 따라 사 먹는 제철과일과 음식들, 가끔 즐기는 문화생활과 여행, 인색하지 않게 주변을 살필 수 있는 조금의 여유만으로도, 그는 우리가 이미 충분하게 많은 것을 가지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반면, 비영리 활동가로 살아왔던 나는 결혼을 하고 나서 오히려 욕망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뒤늦게 눈 뜬 좋은 물건들에 대한 욕심과 근사하고 멋집 집과 차를 가지고 싶어 지고, 남들이 누리는 것을 나도 누리고 싶어진 것이다. 이런 나의 욕망은 그의 자족하는 태도 앞에서는 마음이 풍요롭지 못한 하잘것없는 것에 지나지 않게 된다. 최근 여둘톡의 <부자로 사는 법> 에피소드를 들으면서도, 내 욕망으로부터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우리는 충분히 부자인데, 그 순간을 더 누려며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

 

아등바등하다가도, 지금 그가 뿜어내는 행복이, 그 자족이 나까지도 만족하게 만든다. 아, 우리는 행복하구나 하고 문득문득 고백하게 만든다. 행복한 사람 곁에서는 같이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이 이리도 전염성이 높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지.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하는 것,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사는 것, 부족한 부분은 필요에 맞게 주가 다 채워주실 거라는 믿음, 다 잘 될 거라는 낙관과 낙천의 태도, 쉬지 않고 던지는 농담과 장난의 말들, 제법 노래를 잘 부르는 점, 막상 게으름을  피우긴 하지만 배우는 것을 쉬지 않는 것, 문득문득 던지는 나에 대한 진심 어린 칭찬의 말들이 나로 하여금 그를 더 사랑하게 만든다. 그의 곁에 있으면 실제의 나보다 내가 더 좋은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의 칭찬에 더 걸맞은 사람이 돼야지 속으로 다짐한다.


스스로 행복하다는 생각에 이르자, 다른 가족들의 행복도 궁금해졌다. 엄마는 요새 행복할까. 퇴근길 엄마와 통화하면서, "엄마는 요새 행복해?" "하루 중에 언제 행복함을 느껴?" 하고 물어보았다. 엄마는 그런 질문을 받아본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엄마에게 그런 질문을 던져주어서, 엄마의 행복에 관심을 가져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매일 하는 앞산 산책이 요즘의 행복이 아닐까?라는 답변도 더했다. 우리의 일상에 행복한 순간들을 늘려나가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전화를 끊었다.


그가 늘 언제나 사랑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좋은 점을 좋다고 말하기, 그냥 오늘은 여둘톡 이팩트를 신랑에게 적용해 보고 싶어 져서 신랑의 좋은 점을 늘어놓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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