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여서 행복해요

카를라 부르니 이야기

by 곽미성

여느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파리에도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부촌이 있다. 파리 서남부 센강의 오른쪽에 위치한 16구가 가장 대표적으로, 이곳은 전통적으로도 프랑스인들 사이에서 ‘부르주아들의 게토’라고 불릴 만큼, 부자들이 각자 자기만의 부지에서 경비를 강화하고 스스로를 철저히 격리한 채 모여 사는 동네였다. 그중에서도 16구 여인들이라 하면, 샤넬 정장을 단정히 입고 올림머리에 화장까지 완벽히 한 부잣집 할머니들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평생 가사일이나 생계 걱정 따위는 해 볼 기회도 없었을 것 같은, 그야말로 여유가 철철 넘쳐흐르는 할머니들이 종종거리는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고 있을 것같은 그런 동네.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인물로 16구파리지엔이라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단연 이 분이다. 어쩌면 현재 살아있는 프랑스 여자 중에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일 수도 있는 분, 카를라 브루니 사르코지(Carla Bruni-Sarkozy)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녀가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몇 해 전, 두 번째 음반을 내고 가졌던 한 패션 지와의 인터뷰 때문이다. 이 인터뷰는 브루니의 집에서 이루어졌다는데, 그 집을 방문한 기자가 얼마나 깊은 인상을 받았는지, 기사의 첫머리는 온통 16구의 한 거리에 위치했다는 저택의 규모와 값나가는 가구들에 대한 묘사로 채워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카를라 브루니의 첫 마디,


«나는 부르주아에요, 그리고 그럴 수 있어서 좋아요 ».


별 생각 없이 읽기 시작한 기사에서 이 문장을 보고, 내가 잘못 본 것인지, 혹은 오해한 것인지 생각하며 몇 번을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부르주아'라니, 아무리 호화로운 집에 사는 부자지만 때 아닌 계급 발언이 난데없다 싶기도 했고, 창문 너머로 정원이 넓게 펼쳐진 드넓은 거실에서 안락한 소파에 몸을 파묻으며 던졌을 것 같은 그 한마디가 그때까지 그녀의 음악을 들으며 떠올렸던 이미지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긴 생머리에 통기타와 청바지, 70년대 히피문화를 상기시키던 소박한 그녀의 음악에 너무 이입 했었던걸까? 그녀가 '나는 부르주아에요' 하는 순간, 왠지 그녀와 나의 세계에 균열이 생기는 기분이었고,그 후로 그녀를 볼 때마다 «부르주아 »라는 단어가 주는 풍족하고 화려한 세계의 이질감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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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처음 그녀를 TV에서 보았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음악만 들었을 때도 착착 감기는 저음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잘 쓰여진 가사에 귀가 매료되는 느낌이었는데, 그 노래를 부르는 여가수는 수수한 청바지 차림에 통기타 하나 뿐인데도 어찌나 청순하고 아름다운지, 게다가 말은 또 어찌나 센스 있게 잘하는지, 작사, 작곡까지 본인이 다 했다는데, 세상에 저렇게 완벽한 여자가 있을수 있구나 하며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기억이다.

이제 내 삶이 다 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너무 늙어서 나조차도 내가 싫어지게 될 때, 내 삶의 거죽이 아픔과 웃음과 의심의 길들로 깊이 패어지게 될 때, 나는 일분만 더 달라고 요청하겠네.

더 이상 나를 동요시키는 것도 상처 주는 것도 없을 때, 하지만 마음의 고통들에 부드러움이 감돌 때, 내 침대 발 밑에서 죽음을 보게 될 때, 죽음이 내 작은 삶을 향해 웃고 있는 것을 보게될 때, 나는 그 죽음에게"딱 일분만 더 주세요"라고말하리라.

치장을 하거나 담배를 한대 피울 수 있게. 딱 일분만. 마지막 전율 혹은 마지막 몸짓을 위해 딱 일분만. 긴 겨울이 오기 전에 추억을 정리할 수 있도록딱 일분만.

내 삶은 공허하지 않고, 나는그것을 통째로 원하니까. 그 전부를, 모든 혼란 속에서. 내 삶은 공허하지 않으니 다시 요청해야지, 더 늘여주면 좋겠다고, 딱 60초만, 내 마지막 시간을 위해.

2002년 그녀가 처음 낸 앨범에서 가장 좋아했던 "마지막 일분" 이라는 곡의 가사다. 곡의 길이도 딱 일분에 머무르는 아주 작은 노래지만, 언제 들어도 마음 한 켠을 짠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시간과 죽음 앞에서 느끼는 무력함과 쓸쓸함, 모두가 공감할 인생의 비정함을 이토록 발랄하고 담담한 곡으로 가볍게 담아낸 감각에 들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데, 그에 더해 이것이 이토록 젊고 아름다운 여가수의 고백이라는 것, 본인의 이 모든 화려함도 언젠가 다끝날 것인데 그것이 아쉽고 두렵다는 고백이라는 것이 마음을 움직인다. 이렇게 영민하고 사려 깊으며 감각적이고 다재다능한 여자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게다가 사실 그녀는 그 이전에 육체적인 매력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톱 모델이었다. 그리고 아주 일찍부터 수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는데, 다름아닌 남성편력 때문이었다. 믹 재거, 에릭 크랩튼 같은 세계적인 팝 스타부터 프랑스 국민가수 장 자크 골드만, 영화배우 뱅상 페레즈 게다가 몇 명의 저명한 국회의원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내로라하는 유명인들과 염문설이 생겼고, 그녀는 그때마다 쿨하게 인정하며 뼛속까지 자유연애자인 파리지엔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하지만 타인의 연애는 사생활로 여겨 큰 관심 두지 않는 프랑스인들도 깜짝 놀라게 한 연애사가 그녀의 가수 데뷔 몇 년 전 공개되었는데, 사연을 간략히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프랑스의 유명 출판인이자 기자인 장폴 앙토벤(Jean-Paul Enthoven)과 사귀고 있던 그녀는 어느 날 남자친구의 절친한 친구인 유명 철학자 베르나르 앙리-레비(Bernard-HenriLévy)의 별장에서 열린 연말파티에 초대받아 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남자친구의 아들인 철학자 라파엘 앙토벤(RaphëlEnthoven)을 만나게 된다. 라파엘 앙토벤은 뛰어난 실력과 잘생긴 외모, 젊은 나이로 당시의 떠오르는 스타 철학자였고, 그 둘은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라파엘 앙토벤은 남자친구의 아들일 뿐 아니라 또한 파티의 초대자 베르나르 앙리-레비의 사위이기도 했던 것이 문제였다. 그들 모두는 방송출연도 잦고 이름만대면 다 아는 유명 지식인들이었으니 이 자극적이고 재미난 소식은 파리 전역에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소문의 진실성을 증명하듯 얼마 후, 라파엘 앙토벤은 이혼을 했고 카를라 부르니는 그의 아들을 낳았다. 카를라 부르니는 이후에도 라파엘 앙토벤과 사귀기 시작한 것은 그의 이혼 이후라고 주장했는데, 이 가십들이 진지하게 공식화된 것은 2004년, 실연의상처에서 괴로워했던 라파엘 앙토벤의 전 부인인, 작가 쥐스틴 레비가 본인의 소설 "심각한것은 없어 (Rien de grave)"에 자세한 사연을 공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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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사귀다가 그 아들과 사귀게되고 아이까지 낳는다는 사연은, 아무리 개방적인 프랑스라도 일반인들은 혀를 찰 사연이고, 우리나라였다면 포털 사이트 게시판을 마비시킬만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폭넓은 공감과 사랑을 받았던 것은, 무엇보다 그녀의 음악적 재능과 그 안에서 느껴졌던 지적인 영민함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2002년의1집 앨범에 당당히 발표한 "라파엘" 이라는 제목의 사랑 고백 노래는 이 라파엘이 어느 라파엘인지 설명해주는 저 모든 (막장)스토리의 부담을 안고도 커다란 인기를 누렸다. 그녀의 음악에 이미 매료되어 있었던 나 역시, 세상 눈치 볼 것 없이 당당하고 자유로운 파리지엔답다며 대단하다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여자인 나도 이렇게 반할 정도인데 남자들은 더 그렇겠지, 마음만 먹으면 다 가질 수 있는 그런 여자라니! 하며 이 비하인드 스토리와는 무관하게 다른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이 마구 솟아났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적어도 2007년 까지는 그랬다. 아니,정확히 말하면 그 해 12월 17일까지는.

그날 저녁 카를라 부르니는 모든 뉴스의 속보를 장식하며 말 그대로 온 나라를 뒤흔들어 놓았다. 두 달 전에 이혼하고 실연의 아픔을 대국민에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던 당시의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그녀와 그녀 아들의 손을 잡고 함께 디즈니랜드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전에 조율이 되어있었을 몇몇 매체의 기자들이 화목하고 다정하게 연출된 사진을 찍어 함께 공개했음은 물론이다. 당시 돈과 사치품에 대한 애착으로 블링블링 대통령이라불리던 사르코지였기 때문일까? 그 일이 있기 불과 네 달전 까지도 영부인 자리 필요 없다며 떠났던 전 부인을 잊지 못하는 모습을 전국민 앞에서 보여주었기 때문일까. 이 새로운 커플이 공식적으로 표명한 '두 달 전에 만나 첫눈에 반했다' 는 공식 입장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내게는 전혀 매치가 안 되는 저 두사람이 도대체 왜 서로를 선택했을까, 그들 각자의 사연이 무척 궁금해졌다. 재혼 상대로 카를라 부르니를 선택한 대통령의 속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 동안 스스로를 진보좌파라 이야기 해왔던 아티스트가 당시 파리 예술인들의 미움을 한몸에 받던, 돈은 있으나 교양 없기로는 역대 대통령 중 최고라악명 높은 니콜라 사르코지와 운명을 함께 하기로 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었고, 사르코지 대통령의 전 부인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만났기 때문인지 이 둘의 계약 결혼설은 무성했다. 소식을 들었던 초반에는 나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어차피 둘만이 아는 문제 아닌가. 그보다 나는 점점 이 커플이 서로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은 서로를 처음부터 알아봤을 수 있겠다는 상상도 하게 됐다. 불법정치자금 조성 등의 문제로 지금까지도 다양한 수사망에 복잡하게 올라 있는것 만으로도 알수 있듯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엄청난 집착은 사르코지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었고, 또 이런 점은 역설적이지만 많은 이들에게 그를 지지하는 중요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라면 앞의 몇 가지 예 만으로도 우리의 불타는 자유연애주의자 브루니도 둘째 가라면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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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둘이 닮은 것은 비단 그 수단과방법을 가리지 않는 에너지뿐 아니라 그 욕망의 내용 때문이기도 하다. 우선 끊임없는 새로운 사랑에 대한 열정이다. 남자친구의 아들과 사랑에 빠져 아이까지 낳은 카를라 브루니는 말할 것도 없고, 사르코지 대통령 또한 이 부분에서 아주 상징적인 사연이 있다. 그가 전 부인, 세실리아 사르코지를 만났던 것은 다름아닌 그녀의 결혼식장에서 식을 집행하는 시장으로서였다고 한다. 결혼식을 진행하면서 그는 신부였던 그녀에게 그 자리에서 반해 열렬한 구애를 했고 결국 각자 이혼하고 결혼했다고 하는데, 이 정도면 이 두 남녀 모두 사랑을 쟁취하고자 하는 열정 면에서는 지구상 누구에게 견주어도 둘째가라면 서럽지 않겠는가.

이 둘에게 공통적으로 보이는 또 하나의 욕망의 실체는 인기와 권력을 향한 갈망이다. 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영부인의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본인도 그렇게 밝혔고, 밖에서 보기에도 그녀는 그 역할을 아주 즐기고 있는것처럼 보였다. 그 전까지 늘 좌파에 투표했다고 밝혔던 본인의 정치성향도 자연스럽게, '사실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사실 투표는 이탈리아에서만 했다'에서 '자세히보니, 나는 더 이상 좌파가 아니더라' 까지로 자연스레 옮겨갔다. 사랑에 빠졌어도 늘 독립적이고 자아가 튼튼한 여성이었던 이미지도 점점 '남편이가는 길에 나는 무조건 찬성이에요, 난 그를 믿으니까요' 식의 조용히 내조하는 여성의 이미지로 변화시켰다. 이 두 이미지는 너무나 상반된 것이어서 가끔은 마치 ‘자의식 강하고 모던한 페미니스트 여가수'에서 '내조와 육아에만 힘쓰겠다는 현모양처 영부인'으로 옷만 바꿔 입고 새로운 역할극을 하고 있을뿐이라는 느낌마저 들었다. 이 극과 극의 역할 사이 어디쯤에 진정한 그녀가 위치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게 다 그녀일 수도, 어디에도 그녀는 없을 수도 있다. 이런 역할 놀이를 충실히 즐기는 그녀를 진정한 댄디라고 평가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녀가 선택한 역할들을 보면 인기와 권력을 향한 갈망, 사랑 받고 중심에 서고 싶은 욕망이 보인다. '일부일처제는 정말 죽을 만큼 지루해요'라는 발언을 공공연히 했었을 정도로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그녀였지만, 이렇게 보는 그 욕망의 실체는 참으로 고전적이지 않은가?


물론 그런 세속적 욕망에서 자유로운자 몇이나 되랴. 하지만 우리 모두 역시 그 욕망의 노예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 해도, 이 두 부부가 욕망하는 지점이 결국 똑같은 것이라 해도, 사르코지의 현재는 어쨌거나 본인이 노력해서 성취한 것이다. 하지만 브루니가 욕망하여 이룬 것은 사실 그 방법에서 본인의 정당한 노력으로 성취했다고 할 수 없다.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는, 라파엘 앙토벤과 결별할 당시 본인의 커리어 등 모든 부분에서 이제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앞이 보이지 않았었는데, 그런 시기에 다행히 사르코지를 만났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당시를 돌이켜보면, 첫 앨범의 눈부신 성공 이후, 그녀가 당시에 낸 두 번째 앨범은 그에 비해 매우 실망스러운 수준으로 평가되어 묻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오래되지 않은 일이지만, 여성의 사회활동이 불가능하던 시절에 여성의 유일한 권력확장의 통로는 권력을 가진 자를 유혹하는 것이었다. 그녀가 아무리 성찰적인 가사를 쓰고 솔직하고 도발적인 발언을 했었다해도, 그녀의 사고방식은 그리 근대적이지 않은 것 같다. 본인이 이룬 부가 아닌 ‘물려받은 부’, ‘물려받은 계급’ 에 만족하면서 딱 그 정도 높이에서만 세상을 바라보고, 일반 대중의 관심과 사랑 또한 늘 자신을 향해 있기를 바라는 욕심. 이것이 그녀를 고전적인 부르주아 동네 16구 에 딱 맞는 여인이랄 수 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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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년, 독일의 한 한 신문은 사르코지 대통령 부부의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묘사하며 이 둘을 태양 왕 루이15세와 그의 애첩 퐁파두르 부인에 비유했다. 루이 15세와 같은 사르코지 대통령의 절대권력에 대한 향수와 사치스러움, 그리고 퐁파두르 부인과 같은 브루니의 높은 교양수준을 비교하면 이는 꽤 그럴듯한 비유로 보인다. 문제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단두대에 피 바람이 몰아치던 프랑스 혁명 직전의 일이라는 것이다. 퐁파두르 부인이 그랬듯, 카를라 브루니도 늘 욕망하는 인생의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고 매력적인 인물임에는 틀림 없으나, 외신에서마저 그녀를 몇 세기 이전의 프랑스 역사 속 인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매력의 성격이 아주 고루하다는 생각을 나만 하고 있는 건 아닌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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