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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May 10. 2017

어른이 된다는 것은...

영화 "프랜시스 하"의 프랜시스에게

프랜시스, 


당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붙인 영화 "프랜시스 하 Francis Ha"를 본 것이 벌써 3 년 전이군요.  오랜만에 좋은 영화를 발견했다는 생각에 극장을 나서며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던 그 여름밤이 떠오릅니다. 


모든 것이 임시적인 삶
 20 대 후반의 뉴요커인 당신은 현대 무용을 하는 댄서입니다. 무용단의 임시 연습생에서 정식 단원이 되는 것이 당신의 꿈이지요. 하지만 당신에게 "임시"인 상황은 그저 무용단에서 뿐이 아닙니다. 월세를 나눠 내면서 함께 살던 베스트 프렌드가 떠나면서, 당신도 그 집에서 나와 새로운 "임시"거처들을 전전하게 되었으니까요.  문제는 뉴욕의 비싼 월세와 생활비 때문에 이 "임시"적인 상황들을 버텨내기가 점점 버거워진다는 것인데, 설상가상으로 당신은 무용단의 연습생 자격마저 잃게 됩니다. 크리스마스 공연의 멤버로 포함되면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을 수 있다고 단기적으로는 그 희망만 부여잡고 내내 버텼는데 불가능해졌고, 장기적으로는 그토록 열망하던 정식 단원의 꿈에서도 멀어지게 됩니다. 유일한 위로였던 친구 소피는 설상가상으로 부유한 남자 친구와 약혼을 하고 일본으로 떠나죠. 

조금 엉뚱하긴 하지만 따뜻하고, 그 누구와도 금방 마음속 이야기를 하며 친해질 만큼 밝고 긍정적인, 반짝이던 당신은 조금씩 빛을 잃고 방황합니다. 


잊고 지내던 당신을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올해 파리의 봄은 여름 날씨와 겨울 날씨를 오가며 엄청난 일교차를 보였습니다. 덕분에 얼마 전엔 감기에 걸려 며칠을 독하게 앓았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이렇게 정신없이 오랜 시간 잠들었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만큼 자도 자도 졸렸던 며칠이었어요. 자면서도 너무 아프다는 말을 중얼거렸고, 무엇보다 그 쯤되니 그 어떤 의욕도 사라지더군요.  몸을 씻고 밥을 먹는 일 조차도 다 귀찮아지니, 그동안 어떻게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했는지, 어떤 호기심으로 책은 읽고 어떤 의지로 글을 썼는지, 스스로가 낯설어지기 까지 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반쯤 멍 한 상태로 웹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열린 누군가의 sns에서  "저는 포토그래퍼입니다"라고 적힌 자기소개글을 보게 됐어요. 

바로 그 문장 때문이었습니다. 이 모든 상념의 시작은... 

  아무 특별할 것 없는 누군가의 자기소개 한마디에, 갑자기 마음이 쿵 내려앉았습니다. 문득 "나는 뭐 하는 사람이지?" 하는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말입니다.  정신없이 달리고 있기는 한데, 그러고 보니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과 자괴감으로 며칠을 보내면서 당신을 생각했습니다.   


저도 여전히  제 자리를 찾고 있어요

프랜시스, 저는 당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만, 하고 있는 고민은 당신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전히 저도 당신과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아니, 당신과 같은 나이 때의 저에게 돌아가 5 년이 넘은 후에도 너는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을 거라고 말해준다면, 그때의 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실망한 표정으로 "아니 어쩌다가..." 하면서 탄식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에서 5 년 전의 일기를 들춰보니, 당시 겨울 휴가를 이용해  혼자서 뉴욕을 여행했던 여행기가 있더군요. 그 여행의 마지막에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래, 우선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글을 쓰고 싶다면 글을 쓰자. 영화를 만들 수는 없으니 우선 글을 쓰자. 그게 결국 책이 되든 안되든 계산하지 말고, 우선 해보자. 그러고 나면 또 다른 길이 보이겠지. 최소한 무언가를 배우기는 하겠지." 

파리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창 밖으로 쌓인 눈을 바라보며 공항 대합실에서 이 일기를 쓰던 그 밤이, 한편으로 이상하게 벅차오르던 마음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그런 결심을 하고 무작정 쓰기 시작한 원고는 그로부터 3 년 후 책으로 출판되었고,  저는 때때로 "작가님", 혹은 "선생님"이라는 새로운 명칭으로 불리게 됐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같은 직장을 다니며 똑같이 이직을 고민하고, 아이는 낳을 것인지를 똑같이 망설이고 있습니다.  그 5 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근본적으로 변한 것은 없더군요. 고민하던 일들에 대해서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되려 한 가지 고민이 더 늘었죠. 매일 아침, 글쓰기에 몰두하다가 출근시간이 되어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  글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들 때문입니다. 글을 계속 쓸 것인가... 에 대한 고민도 진지하게 하고 있고요. 

 이러니, 적어도 20대에는 무엇을 하고 싶은지는 명확했는데, 이젠 그것도 잘 모르겠다고 하면 당신은 놀라실까요.  



무용단의 단장은 당신에게 "임시적으로" 무용단의 사무직을 맡아 일하는 것은 어떠냐고, 그렇게 하면 당장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고, 무용실 스튜디오에도 접근 가능하며, 업계 안에서 계속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겠냐고 제안합니다. 이미 정식 단원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에 상심했던 당신은 단칼에 거절하지요. 나는 무용수니까 다른 곳에서라도 무용을 하겠다고 말하는 당신의 표정에는 좌절된 꿈에 대한 상처와 벼랑 끝의 절박함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감기 몸살과 자기반성으로 끙끙 앓던 그 며칠의 끝에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어른이 되는 일은,  
해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혼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대답을 알기 때문에 어른인 것이 아니라,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것이 어른인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이런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20대 때 열망했던 것처럼 꼭 무엇이 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나는 뭐하는 사람인지에 대한 질문에 어쩌면 평생 답을 갖지 못할 수도 있다고요. 우리는 어쩌면 단 한 가지로 뭐하는 사람이라는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 힘든 세대인지도,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러니,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스스로가 정의 내리기 나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부족했던 것은 현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프랜시스,

 당신은 결국 단장이 제안했던 사무직을 맡습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을 돌고 돌아, 영화 시작 때 되고 싶어 했던 댄서의 열망을 버리고 극 연출가가 되고, 드디어 자신만의 생활공간도 마련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은 의미심장하게도 당신이 새 집의 우편함에 자기 이름을 적어 넣는 장면으로 마무리됩니다. 다만, 그 이름표의 공간이 너무 작아 당신의 이름은 다 담기지 못하죠. 그렇게 우편함에는 이름의 일부인, 프랜시스 하 까지만 담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불안해 보이지 않습니다. 언젠가는 그 이름이 온전히 다 들어가는 더 큰 자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일까요?  

아니요, 당신이 보여주는 마음의 여유는 성공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자존감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마음의 열망을 따라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그 여정이 이제는 그리 고통스럽지 않으리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공고하게 생겼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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