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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미성 Jun 12. 2017

고비 씨의 바게트 먹는 방법

 

   

프랑스 사람을 그림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구 상 그 어느 나라 사람을 그리기보다 쉬울 것 같다. 머리에 베레모를 씌우고, 한 손에 바게트를 쥐어주면 될 테니. 누구라도 그 두 가지 소품을 보면 단번에 프랑스를 떠올리지 않을까? 아니, 바게트 빵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대부분 프랑스인을 유추하게 된다. 


바게트라니, 왠지 캐캐 묵은 클리셰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지만, 바게트 빵이 프랑스의 일상 식문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어떤 허름한 식당에서도, 심지어 카페에서 오믈렛 한 접시를 주문해도 프랑스 식당이라면 기본적으로 큼직하게 자른 바게트 빵 한 바구니가 함께 제공된다. 물가 비싼 파리에서 유일하게 인심 좋은 것 또한 바게트 빵 일 것이다. 파리시가 제공하는 수돗물과 함께 그 어느 식당에서도 무한 리필이 가능하니까. 



나의 동거인, 프랑스 남자 고비 씨는 프랑스인들 중에서도 유달리 빵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꼽힐 것이다. “빵”이라고 하지만, 그가 사랑하는 것은 식사와 곁들이는 달지 않은 빵에 한한다. 달콤한 디저트 빵, 케이크나 파이는 전혀 그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가 좋아하는 빵은 바게트, 빵 드 깡파뉴 같은 식사 빵과 크루아상 정도로 그 종류는 얼마 되지 않지만, 거의 매일 저녁마다 먹으며 엄청난 소비를 하고 있다.   

  

그가 먹는 법을  지켜보면, 바게트가 프랑스의 식문화에서 중요한 근간이 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우선, 대부분의 음식에서 소스가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는 프랑스 요리의 특성 때문이다. 주요 요리를 다 먹고 난 후에도 접시에 남아있는 소스를 끝까지 먹기 위해서는 이 바게트 빵이 필수다. 바게트를 한 입 거리로 뜯어서 말랑한 빵 부분에 남은 소스를 적시거나 묻혀서 먹는데, 이렇게 야무지게 소스까지 다 비우고 난 후의 남편의 접시는 거의 설거지가 필요 없다 할 정도로 깨끗하다.      


결혼 초, 집에서 불고기를 해 먹었을 때의 일이다. 다 먹고 난 후, 불고기의 소스가 접시에 가득 남아있는 것을 본 남편이 말했다. 

“빵이 있어야 하는데, 빵이 없네!” 

국물을 다 먹고 싶으면 밥을 비벼먹으라고 말하니 남편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여기서 더 먹자고? 밥을 어떻게 더 먹어?” 

화들짝 놀라는 게 웃겨서, “아니, 빵이나 밥이나. 빵도 엄청 배불러!” 대꾸하니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아니지. 빵은 이 소스를 다 먹기 위한 도구 같은 거지. 숟가락처럼.  단지 맛있는 숟가락일 뿐. 밥은 정말 본격적으로 또 먹어보자는 거잖아”     

이들에게 식사와 함께하는 빵의 의미가 무엇인지 잘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식사에 두 사람이 바게트 하나를 다 먹기는 쉽지 않다. 함께 식사하는 나도 빵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그렇다. 두 사람이 식사 한 끼를 먹고 나면 보통 절반의 바게트가 남는데, 이렇게 남은 절반의 바게트는 다음날 아침에 훌륭한 식사가 될 수 있다. 

우리 집의 경우, 전날 밤 먹고 남은 절반의 바게트는 다음날 아침 반으로 갈라 토스트기에 구워서 먹는다. 이 바삭하고 따끈한 빵 위에 버터를 바르고 과일 잼을 발라 먹는 것, 혹은 다른 재료를 얹어 먹는 것을 타르틴이라고 하는데, 프랑스의 전형적인 아침식사 중 하나다.      


겨울에는, 이렇게 남은 바게트를 모았다가 양파 수프를 만들기도 한다.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버터에 잘 볶은 양파 위에 밀가루를 넣고 진한 소고기 국물 육수를 부어 끓인다. 거기에 구운 바게트 빵을 먹기 좋게 잘라 넣은 뒤  에망탈 치즈를 가득 올려 오븐에 그라탱으로 요리한다. 소고기 육수의 기름진 맛을 달콤한 양파가 보완해 감칠맛을 내고, 구운 빵이 바삭한 식감과 무게감을 더하며 그 위에 찐득한 에망탈 치즈 덩어리가 고소한 맛을 낸다.    

먹고 나면 곰탕 한 그릇을 먹은 것처럼 든든하고 땀이 날 만큼 몸이 더워지는 이 음식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겨울철 서민 요리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겨울나기의 필수 음식이기도 하다. 유학시절부터 감기가 떨어지지 않거나 몸살이 나서 몸이 허하다는 느낌이 들 때면 카페에 가 이 양파수프를 시켜 먹었다.   



빵을 곁들인 식사, 치즈와 햄, 소스를 빵과 함께 먹는 것은 비단 프랑스뿐 아니라 서양 많은 나라의 식문화이기도 하다. 다만, 빵이라고 다 같은 것이 아니고, 프랑스 요리와 곁들이기에는 프랑스식 빵이 가장 훌륭하다고 프랑스인들은 생각한다. 빵의 질감과 고유의 향이 프랑스 요리에 가장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기에 바게트라고 다 같은 것은 아니며, 그중에도 훌륭한 바게트가 있다. 남편이 생각하는 맛있는 바게트란 이렇다.      


바게트는 당연히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워야지. 가장 중요한 건 겉껍질의 식감과 고소함이라고 생각해. 눌러보았을 때 그저 말랑하고 푹신하면 안 돼. 껍질은 두꺼워야 하고 잘랐을 때  바삭거림이 느껴져야지. 그 겉껍질에서 나오는 살짝 시큼하면서도 고소한 맛, 그 풍미가 진정한 바게트의 맛이라고 할 수 있어   

 

빵집마다 제빵사는 가장 자신 있는 종류의 바게트를 주력상품으로 내놓는다. 

우리 동네의 빵집  중 하나는 (내 기준으로) 다른 모든 빵은 그다지 맛이 없지만 바게트 하나는 그 어느 빵집에 뒤지지 않을 만큼으로 만든다. 여기에는 그 빵집만의 비법이 있었고, 이 바게트 빵은 자기만의 이름으로 불렸다. 바로 빵집이 위치한 거리인 “트라베르씨에”라는 이름이다. 매일매일의 저녁시간과 주말 아침 빵집 앞에는 언제나 길게 줄이 늘어서있고, 동네 사람들은 거기에서 “트라베르씨에”를 샀다. 그 집의 트라베르씨에는 늘 황금색으로 빛났고, 완벽한 두께로 바삭거리는 껍질과 가볍고 부드러운 빵은 담백하고 고소한 진짜 옛날 빵의 맛이 났다.      

얼마 전 빵집의 유리창에 제빵사가 동네 사람들에게 전하는 장문의 편지가 붙었다.  아이들이 모두 결혼하고 자리 잡고 살게 됨에 따라 본인도 퇴직을 하고 빵집을 다른 제빵사에게 넘기겠다는 알림이었다. 그 편지를 읽으며  우리는  그동안 수고하셨고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한편으로 밀려오는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는 없었다.  트라베르씨에가 주는 일요일 아침의 행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을 비롯,  매일 빵집 앞에 줄을 서던 동네 사람들은 동요했다. 새로운 제빵사가 들어와 내부 공사를 하던 그 얼마 동안 사람들은 트라베르씨에의 대안을 찾아 저마다 다른 빵집으로 흩어졌다. 


  다행히 그 방황은 얼마 가지 않았다. 퇴직한 제빵사는 가게를 인수하며 트라베르씨에의 비밀도 함께 넘겼고, 그 특유의 맛은 다음 제빵사에 의해 제대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트라베르씨에를 먹을 때마다 문득문득 생각한다. 동네 빵집과 동네 사람들의 의리와 배려에 대해, 아주 하찮을 수 있지만 사람들 일상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사람이 갖는 책임감과 사명감에 대해. 그런 직업인들이 많아질수록 즐거워지는 삶에 대해서.         



바게트 빵이 가장 맛있는 순간이 언제일까 하는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당연히 방금 오븐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순간, 코끝에 스치는 향긋한 빵 냄새를 못 이겨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입 베어 무는 그 순간이라고 대답했다. 그보다 더 강렬한 순간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간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순간을 이야기했다.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릴 때 식탁 위의 겨자를 빵에 조금 발라서 한입 먹으면, 상쾌하면서도 톡 쏘는 맛, 거기에 고소한 맛이 같이 어울리면서 입맛이 확 돌거든. 그때 식탁 위의 빵이 신선하고 디종 산 겨자가 있다면 금상첨화지. 나에겐 그게 최고의 순간인 것 같아.       

가장 서민적이고, 흔하디 흔한 바게트 빵 하나가 이토록 다양한 맛으로 기쁨을 줄 수 있다니, 미식은 그야말로 먼 곳에 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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