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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힐 Dec 04. 2023

징후

3화

2년 전 여름, 언제였는지 명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어느 주말 오전.


설핏 의식은 들었는데 피로가 덜 가신 탓으로 눈꺼풀은 자꾸만 내려앉았다. 잘 떠지지 않는 눈에 힘을 주며 잠을 쫓으려는 사이, 침대 오른편으로 그가 느껴졌다.


여전히 많이 낯설고, 이제는 조금 익숙한 무게감.


연인은 아니었다. 몇 차례 만난 사이. 다만 마음이 깊어지지 않았다.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댄 채 그는 책을 보고 있었다. 나의 기척에 내게로 시선을 주었다.


그: “깼어?”

나: “응(아니). 언제 일어났어?”


그는 언제 일어났냐는 물음에는 답하지 않았다. 함께 밤을 보낸 뒤 아침에 깨어보면 그는 늘 먼저 깨어 있었다.


‘얼마나 일찍 일어난 것일까. 혹시 이상한 잠버릇을 보인 것은 아닐까.’


처음에는 신경이 쓰이기도 했는데 몇 차례 함께 밤을 보낸 뒤로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 관계가 그리 오래 이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짐작이 있었다.


그: “악몽 꿨어?”

나: “응? 왜? 글쎄, 기억 안 나는데‥”

그: “소리를 지르기에.”

나: “소리 질렀다고? 내가?”


‘피곤해서 그랬나.......’ 하고 웃으며 넘기려는데, 다소 굳어진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
 

그: “그동안 이야기 안 했는데, 너 매번 그랬어. 소리만 지르는 게 아니라… 욕도 해.”

나: “.......”

그: “다 기억이 안 나?”


어안이 막히었다. 커튼 사이로 잘은 햇빛이 들어 흰 침대를 비추었다. 어여쁜 장면이었다. 조금 전 들은 이야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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