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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라면 Oct 03. 2018

어떻게 살 것인가?

퇴사 후 1년 6개월, 아직도 모르겠다.

 회사다닐 때, 공항철도 에스컬레이터에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한 발자국 턱- 내딛으면 자동으로 지하 7층까지 내려가버리는 서울역 공항철도 에스컬레이터처럼 내 인생도 그냥 타고 있으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곳에 툭-하고 도착해있을 것 같았다. 그 때는 회사도 싫고- 서울도 싫고, 날 이렇게 밖에 살 수 없게 만든 한국사회도 너무 너무 싫었다. 매일을 그렇게 남 탓만, 구조 탓만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러다가는 진짜 안 될 것 같은거다. 평생 탓만 하다가 허송세월 보내버리면 어떻하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10년 뒤에도 공항철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빌어먹을 세상아! 빌어먹을 광고주야!" 하며 소주를 마시러 가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아찔했다. 그 마음이 발단이 되어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난 오늘이 되었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있었지만)

3년전, 출근길의 공항철도에서도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5유로 짜리 숙소에서 하루 있다가 도저히 안되겠어서 좋은 숙소로 옮겼다. 역시 돈이 좋다. 뽀송한 침대에 누워 꿀잠을 잤다.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먹고는 동네마실 후 더워지기 전에 다시 숙소로 들어왔다. 할 게 없어서 오랜만에 e-book 뒤적거리다 예전에 받아놓은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열었다. 책이라고 생긴 건 죽으라고 안 읽는 나지만, 유시민 작가님의 책은 유독 잘 읽혀서 아주 가끔 심심할 때 열어 읽곤 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을 하고 있어서 역시 유시민 쌤, 역시 내 이상형이셔- 이딴 생각과 함께 끄덕끄덕 하다가 갑자기 이 문구를 읽고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유시민 작가님의 '어떻게 살 것인가?'


 본인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닥치는 대로 살아왔다'고 말했고,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삶의 존엄과 인생의 품격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했다. '뭐지?' 하며 몇 번을 반복해서 저 문장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나의 삶을 닥치는 대로 살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닥치는대로 살아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전적으로 남탓이야, 구조탓이야 라고 주장하던 사람이었다. 불과 며칠 전에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면서 순간 소름이 돋았다. 몇 해 전, 공항철도 에스컬레이터 위의 내가 여기 다시 있었다.

 참 건방졌다. 나는 그 날 내가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려서 내 두 다리로 저벅저벅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는 줄 알았다. 나는 내 스스로가 능동적인 사람이라고, 나만큼 능동적인 인간은 없다 자부하며 살았지만- 여전히 내가 불리한 상황에선 우디르급 태세전환으로 '내가 이렇게 된 건 망할 세상 탓이야-' 를 외치고 있었다. '나는 능동적으로 탈출도 했고 만족하며 살고 있는 중이야!' 하면서도 여전히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불행해질거야, 그러니 한국엔 돌아가지 않을래.' 하고 있었다.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맞고 틀리고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인생이라 그런지 고민이 되는 건 사실이다. 그냥 이렇게 지금처럼 살아내면 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재밌게 살아보고싶다는 마음이 스물스물 올라오기도 한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진짜 진짜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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