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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oijak Nov 02. 2023

원료 공급: 도서관을 가다.

내가 사는 곳은 인구 10만이 조금 넘는 시골도시이다. 

이곳에 시립도서관이 처음 문을 연 것은 1997년이었다. 도서관이라는 존재 자체가 낯설었던 시골 도시의 사람들에게 야심차게 들어선  시립도서관은 초기 몇년 동안 철저한 무관심의 대상이었다. 도서관이라고 하면 그저 '애들 시험공부' 나 하는곳으로 알던 시골도시의 사람들이 눈이 오면 스키를 타도 될만큼 가파른 언덕길을 10여분 동안 끙끙 거리고 올라가야 하는곳에 자리잡은 그것에 관심이 있을리가 없었다. 게다가 앞은 염소농장과 딸기밭, 뒤는 야산이었으니 그럴만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2000년대 초반에도 나는 도서관 앞 길가에 돗자리 깔아놓고 친구들과 맥주를 마셨다. 막다른 길이라 차량 통행이 없어 조용한데다 화장실(도서관.....)이 가까웠다. 정말 드물게 길을 잃은 차가 올라왔지만 통하는 길이 없으니 돌아서 나가야 했다. 자발적인 길 안내는 덤이었다. 


'아저씨, 이쪽으로 길 없어요. 차 돌리셔야 돼요.'

     



이제 도서관 앞 딸기밭은 인라인 트랙과 풋살장을 갖춘 체육공원이 되었고 그보다 훨씬 전에 야산이 없어지고 길이 뚫렸다. 길이 뚫리자 학교가 생겼고 족족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사이 도서관은 몇 차례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치며 이 시골도시의 ‘문화로움’을 담당하게 된다.      


작업실을 구하기 전까지 나는 늘 도서관 지박령이었다. 글을 쓰기에 그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하루 종일 있어도 누구 하나 뭐라 하지 않았고, 정수기의 물은 공짜에 자판기의 음료는 저렴했으며 화장실은 청결했다. 여름엔 에어컨이 겨울엔 히터가 빵빵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2019년의 끝 무렵부터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로 인해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갈 곳이 없어진 무명 작가는 노트북을 들고 카페를 떠돌다가 결국 작업실을 꾸리게 된 것이다. 내 작업실이 생긴 이상, 이 시골도시의 무명작가 최작은 더 이상 도서관을 찾지 않았다.     

요 몇 달 사이, 도서관은 또 한 번의 내부 리모델링을 한 모양이다. 그리고 어제, 2023년 11월 1일 부로 리모델링을 마친 도서관이 재개관을 했다. 마침 필요한 책이 있어서 오랜만에 도서관을 갔었는데 이런! 예쁘다.       


뼛속 깊이 외모지상주의가 지배하는 나라는 인간은 사물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길에서 마주친 예쁜 차에 목이 훽 돌아가며, 예쁜 주전자를 보면서도  <아고고 예쁜것!> 소리가 절로 나오는 인간이다. 그러니 새단장을 마친 예쁜 도서관이 나의 마음을 홀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생각했다. ‘내일부터 여기로 놀러와야지.’     



작업실에서 도서관까지는 느릿느릿 걸어도 채 5분이 걸리지 않는다. 그만큼 나의 작업실은 글과 책의 영향권에 놓여있는 <글공장>으로는 최적의 입지 조건이다. 집에서 작업실로 걸어올 때도, 도서관이 보이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도서관이 보인다.           


텀블러에 캡슐커피 한 개를 내려서 담고 달랑달랑 손에 들었다. 가방에는 독서용 안경과 필기도구를 챙겼다. 그리고 문 밖을 나와 자박자박 걸었다. 몇 걸음 걷지 않았는데 머리 위로 무엇인가가 후두둑 떨어진다. 새똥인줄 알고 화들짝 놀라 새처럼 퍼드덕 거렸다. 후두둑 후두둑 은행잎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가을이 지나간다.      

(맥락과 상관없는 얘기지만, 비오는 날 무언가 이마에 떨어지기에 빗물인줄 알았더니 그것이 새똥이었다. 때는 까마득한 대학 시절, 옆 단과대 남학생들과 미팅(?)을 하러 가던 길이었고, 맘씨 좋은 친구가 새똥묻었다면서 휴지를 건네준 덕에 참사는 면했다.)          



공장을 돌리려면 <원료> 가 있어야 했다. 

당장 원료가 떨어졌는데 아무리 쥐어 짜낸들 제품이 나올 리가 없지 않나.

글 공장의 원료는 ‘세상의 이야기’이다. 

문밖의 풍경, 바람, 냄새, 사람, 소리, 생각이다.     


도서관까지 가는 길에 수십년 째 폐허로 방치되어 있던 건물 한쪽이 헐리고 길이 생긴 것을 보았다. 길 끝에 반짝이는 건물 하나가 들어섰고, 막 타설된 콘크리트 위에 은행잎이 소복했다. 저 은행잎이 다다다다다! 콘크리트에 박히면 어떻게 되는 거지? 아니, 길고양이가 콕콕 밟아놓고 가면? 잠깐 그런 실없는 생각을 했다. 현장 관계자의 걸쭉한 욕설이 들리는 것 같다.      


‘이 개누무 고양이!’    

  

파밭에서 막 수확한 것 같은 파를 손수레게 가득 싣고 가는 노인이 보였다. 진한 파 냄새가 코를 찔렀고, 노인의 굽은 허리를 보자 괜히 내 허리가 지근하게 아팠다. 아유,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저도 만만치가 않아요. 혼자 생각하면서.      


도서관 뒤편 작은 마당은 그대로였다. 괜히 낙엽을 밟으니 바삭바삭 소리가 난다. 시험기간이었던 어느 여름날에 풋풋한 학생 둘이 얼른 주변을 살피고 달달한 키스를 나누던 그곳이다. 2층에서 바로 보이는 것을 몰랐던 모양이다. 귀여운 것들. 부러운 것들.      


도서관 앞, 뒤 마당. 올라오는 길 언저리. 그리고 내 발.




안으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리모델링 전의 도서관은 ‘독서실’ 같았다면 지금은 북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숨소리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던 공간에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여유가 들어앉았다. 칸막이 책상이 빽빽하게 들어찼던 ‘열람실’도 칸막이 좌석을 많이 없앤 대신 개개인의 공간을 배려한 느낌이었다. 도서관 전체의 공간구성에 통일성을 준 모양새였다.  

수험생 입장에서는 불만이 나올 것도 같지만, 시립도서관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 이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

    

예뻐.


창가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는다. 살인범도 만나고, 미니멀리스트도 만나고, 글을 쓰는 기술을 알려주는 사람도 만나도, 섹시한 여자도, 매력적인 남자도 만난다. 글의 바탕은 경험이라고 하지만, 내가 세상의 모든 경험을 다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를테면 팜므파탈을 주인공으로 글을 쓸 수는 있어도, 내가 팜므파탈이 되기에는 여러가지 곤란한 사정이 있다.      


그동안 책을 읽는 것이 많이 어려웠다. 고요하게 앉아 책장을 넘기는 순간  ‘옳다구나’ 잡념이 끼어들고 머리와 마음을 휘저어놓는다. 차라리 때려치우고 유튜브를 보거나 넷플릭스를 보는 일이 편하겠다 싶다. 그만큼 나의 글공장은 경영 위기, 폐업직전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 단순히 물리적 행위만 놓고 본다면 그 행위 자체는 시원하고 거침없다. 기계식 키보드를 우다다다다다!!!!! 두드리는 쾌락은 극락이다. 다만 '세상에 내놓는' 글은 그렇게 물리적인 행위로만 만들어 낼 수 없는 일이었다.  낯선 세상을 창조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실재하는 그것과 많이 다르지 않음에도 실재하는 그것을 뛰어넘는 힘이 있어야 사람들에게 울림을 줄 것인데 그 교묘한 줄타기가 쉽지는 않다. 창작은 결국 자기만족, 그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내보이고 싶은 근질거림의 결과물이 아닌가.  


그러니 책을 읽어야 했고, 참고 자료를 챙겨보아야 하고, 대략적인 구성을 놓고 차분히 손글씨로 더하고 빼고를 그려보아야 했다. 이런 순간에, 적절한 소음과 낯선 이들이 공유하는 공간은 나 혼자 끙끙 거리는 작업실보다 훨씬 효율적이다. 더불어 공공장소인 만큼 최소한 얼굴에 뭐라도 찍어 바르고, 옷차림도 조금은 신경써야 한다. 기분 좋은 긴장감이다.      


그래서 예뻐진 도서관에 매일 찾아오기로 했다.    



공장장, 제법 괜찮은 원료공급처를 찾았다. 




*별것 아닌 기록이지만, 글공장 공장장의 작업일지를 가끔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글을 쓰면서 만나는 단상, 이야기를 만드는 일부의 과정 등을 씁니다. 

관종이기도 하겠지만, 자꾸 정체성 잊고 싶은 오락가락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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