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에 다녀왔습니다. 1박 2일의 짧은 일정입니다.
바깥은 아직 뜨거웠지만, 이미 시들해진 바다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찍어보니 2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고 하는군요.
갈만합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조금 남달랐습니다.
저의 작은 경차는 고속도로에 올라가면 영 바보가 되지요.
조금만 경사가 져도 영 힘을 못 쓰는 고난 앞에 나약한 아이입니다.
그러나 그쯤이야 에어컨을 잠시 꺼주거나 뒷 차의 답답함을 잠시 쌩까면 됩니다. 뜻하지 않은 잠깐의 몰염치는 세상사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니까요.
이번 여정은 그정도 선의 고난이 아닙니다.
네, 제 작은 차에 휠체어를 구겨 넣었습니다.
경차 트렁크가 얼마나 좁은 지를 생각하면 저것은 굉장한 미라클입니다.
어쩜 저렇게 딱 맞는지! 휠체어가 1센티만 컸어도 들어가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경차에 휠체어를 싣고, 여행을 가기로 했습니다.
즉, 제 동생을 데리고 가는 것이죠. 그 친구는 심한 장애를 갖고 있고 제 발로 서지도 걷지도 못합니다.
혼자 힘으로 차에 탈 수도, 내릴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힘을 써서 도와야 합니다.
그걸 누가 하나?제가요.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충동이었고, 일단 저지른 다음에 통보했습니다.
허락은 필요 없고 설득이 필요한 일입니다. 사실 동생이야 설득하고 말고 할 것도 없으며 싫을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엄마였습니다. 노인은 말이 많아요. 걱정도 많고, 불안도 많아요. 게다가 불만도 많죠. 그러나 이미 저질렀습니다. 어르신들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이 <쌩돈 날리는 것> 이므로, 이미 예약해 버린 숙소를 무기로 밀어붙였습니다.
그리하여 늙은 엄마와, 늙어가는 큰 딸과, 제 힘으로 걷지도 서지도 못하는 둘째 딸이 길을 나섰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청승일지도, 누군가에게는 제멋대로 비련일지도, 누군가에게는 눈요기 거리가 될 지도 모를일입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갈 길 갑니다. 삶이 그렇잖아요.
제 동생의 별명은 <뚱땡이>입니다.
제가 그렇게 부릅니다. 뚱뚱해서 뚱땡이 맞습니다. 바람 불면 날아갈 것처럼 여리여리하던 아이가 지금은 뚱땡이가 되었습니다. 활동량이 없으니까요.
이 <뚱땡이>를 제 힘으로 휠체어에 태우고 내리는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엄마가 돕는답시고 달려들었다가는 제 일이 커지므로, 얼씬도 못하게 합니다.
그런 사정으로 이 친구가 집 밖으로 나온 게 대략 5년쯤 된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아직은 후끈한 바깥공기와 도로의 소음까지도 마냥 즐겁습니다.
말도 잘 듣습니다. 평소에 얘는 제말 안 듣습니다. 장애가 있는 동생이라고 하면 고분고분 하리라 지레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남들이 들을 때는 외계어 같은 말로 저한테 대듭니다. 제가 <뚱땡이> 라고 부르면 얘는 <대...지> 라도 응합니다. <돼지> 발음이 안되어도 명백한 <돼지>입니다.
그러니까 보편의 삶을 벗어난 사람들도, 그 나름의 질서와 균형으로 서로 놀리고 장난치며 삽니다.
그렇게 여행은 시작되었으나 시련도 금방입니다.
휴게소에 들르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저만 내려서 화장실도 가고, 커피도 한 잔 마시고 출발하는 게 옳았습니다.
그런데 점심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저의 <지나친 배려>가 문제였습니다.
사실 동생을 데리고 일반 식당에 가는 일은 문턱부터 쉽지 않은 일입니다. 물리적 문턱은 물론이요 심리적 문턱이 아직 많이 존재하거든요. 주차부터 쉽지 않고, 자리 잡기도 쉽지 않고, 같은 돈을 내고 먹는데도 대단한 배려를 받는 듯 괜히 감사해야 하는게 짜증났거든요.
그레서 건강 문제로 날 것을 먹지 못하는 엄마도 배려할 겸,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회는 포장해서 숙소에서 먹을 생각을 한 겁니다. 각자의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서는 오히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일이 적기도 하구요.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차장에서 동생을 휠체어에 태우다가 동생의 발이 휠체어 발 받침에 걸리면서 옴짝달싹 못하게 된 것입니다. 동생은 <뚱땡이> 구요. 엄마는 노인이구요. 저는 근력 없는 돼지입니다. 버티던 동생이 아프고 무서우니까 그냥 바닥에 앉아버렸습니다.
정말 울고 싶습니다.
그 와중에도 휠체어는 끼어서 꼼짝을 안하구요.
지나가던 한 가족이 저희를 보다가 머뭇거리며 지나갑니다. 사실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도 도움을 청하지 않고 시선을 외면했습니다. 사실 이런 꼴(?)을 들키는 게 싫었거든요.
그러나 지나갔던 분들이 돌아왔습니다. 아빠, 엄마, 딸이었는데요. 결국 이 가족의 아버지가 동생을 들어서 휠체어에 앉혔습니다. 그 와중에도 성인 여성의 몸에 손을 대기가 미안했는지 ‘미안해요.’ 라는 말까지 덧붙이셨구요. 엄마와 딸도 어떻게든 도와보려고 애쓰쎴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죄송했습니다. 커피라도 한 잔 사드렸어야 하는데, 제가 넋이 나가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내내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렇습니다. 때로 누군가의 절대적 호의가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외면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죠. 이 악물고 애써도 안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휴게소에서 온갖 진을 다 빼고 예정보다 훨씬 늦게 속초에 도착했습니다.
영금정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쪽으로 갔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바다 가까이 휠체어로 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고장입니다. ㅎㅎㅎㅎㅎㅎㅎ(실성한 웃음)
그 와중에 엄마는 휴게소 사건으로 지레 겁을 먹은 상황이라 <내리지 말고 그냥 숙소로 가자> 만 무한반복 중이었습니다.
일단, 가까운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길가에 차를 세워놓고 먼 발치에서 바다를 보고 있는데, 동생도 안내려도 된다고 합니다.
아, 자기가 먼저 말하지는 못하고, 물어보면 대답하는 형식으로 대화를 합니다.
"안 내려도 되지?"
"응. "
이런 식의 대화입니다.
갈매기 소리는 들리는데, 바다는 잘 안 보입니다.
이럴거면 뭐하러 속초까지 왔을까요.
그래서 내렸습니다.
해변에서 가까운 주차장에 차를 대고, 제가 물었습니다.
"뚱땡아, 아까처럼 힘 빼고 늘어지면 너 못 내려. 힘 빡 주고 언니잡고 버텨야 돼. 그럼 내릴 수 있어. 할 거야?"
"응 "
내리고 싶은 동생의 초월적 의지와, 저의 미친(?) 의지가 만나 동생의 바다구경이 성사되었습니다.
엄마는 말은 안 해도, 마냥 좋은 표정이고 우리 엄마가 나에게 저렇게 다정하였던가?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간사하시긴. 누가 뭐래도 당신의 무게추는 뚱땡이 쪽이군요. 흥.
잠깐의 바다 구경을 끝낸 후에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조금 사서 숙소로 들어와 먹고, 이른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오히려 잠이 안 옵니다. 어정쩡 아침이 됩니다.
삭신은 쑤시고, 팔도 제대로 못 들겠습니다. 엄마는 그냥 집으로 가자고 합니다. 바다봤으니 됐다고.
그래, 그러자. 이러다가 내가 죽겠다.
그런데......
이곳은 명백한 설악산입니다.
숙소를 나서기 전에 한 번 떠보듯 물어봤습니다.
"뚱땡아, 언니가 힘들어서 너 딱 한 번 밖에 못 내리는데 바다 한 번 더 가볼래? 산에 가서 캐이블카 탈래?"
"따에~"
"바다?"
"으응~ (아니라는 뜻)"
"산?"
"에!(지 기분 좋을 때만 존댓말입니다)"
그러합니다. 어제 바다는 봤으니 오늘 산을 보셔야 한답니다.
혹시라도 언니가 힘들테니 집으로 가자는 일말의 양심같은 거, 없습니다.
노양심 뚱땡이가 산에 가자시니 산에 가아죠.
설악산 케이블카를 탔습니다.
케이블카를 두고 환경 문제로 말이 많지만 휠체어로 산에 오를 수 있다니... 그 순간은 덕분에 감사했습니다.
저 뚱땡이도 남들 하는 건 다 해보고 싶었을테니까요.
사실 저는 바다가 한 번 더 보고 싶었습니다.
산보다는 바다가 좋아요. 저는. 산은 오르는 것도 싫고, 내려오는 것도 싫고...;;;
마지막으로 한적한 바다에 차를 세워놓고, 저만 잠시 걸었습니다.
그 순간은 엄마의 큰 딸도 아니고, 뚱땡이의 언니도 아니고 그냥 최**입니다.
돌아오는 길, 앞이 안 보이게 비가 쏟아졌습니다.
그러나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지막 고난이 남았습니다. 저희집이 연립주택 1층인데요. 경사로가 없이 계단입니다.
내려올 때는 제가 어찌 끌고 올 수 있으나 올라갈 때는 혼자힘으로 불가합니다.
그래서 속초에서 미리 여기저기 <심부름센터>에 전화를 돌렸습니다.
대부분은 어렵다고 거절했는데, 한 곳에서 가능하다고 합니다. 결국 두 분이 오셔서 양쪽에서 휠체어를 들고 계단 다섯 개를 올라갔습니다.
비용은 삼만원입니다.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지불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쉬운일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내가 가진 돈의 범위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러니까 당장 돈벼락을 맞아야겠다. 빠른 시일 내에 경사로가 있는 아파트를 사야겠다. 하는 뻘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이 여행이 마지막 가족여행이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만, 일어나지 않은 일을 생각할 시간에 그냥 지금의 최선을 다하는 것에 집중합니다.
앞날, 알게 뭔가요.
뜻한다고 뜻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걱정하는 것 만큼 힘든 것도 아닌걸요.
아, 저는 꼬박 3일을 앓았습니다. 허리와 어깨가 동시에 가출을 했는데 돌아올 생각이 없습니다.
돌아오렴. 아직 너희들은 떠날 때가 아니란다.
여행이라기엔 고행이었으나 돌아오는 길, 엄마의 질문에 <뚱땡이>가 한 대답으로 답을 찾기로 합니다.
"뚱땡아, 행복했어?"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