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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19. 2016

고통

우리를, 아이들을 도와주세요.


남자는 인상을 구기며 쇼파에서 일어났다. 몸을 지탱하던 손 끝이 리모콘을 누르며 티브이의 소리 를 올리고 있었지만 남자의 시선은 어질러진 탁자 위를 헤매고 있었다.

"특보입니다. 인천을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남자의 시선이 더욱 급하게 어둠 속을 헤매였다.  티브이 화면이 토해내는 짧은 찰나의 푸른 번쩍임 이, 카페트 위에 엎어져 있는 하얀 약통을 비추었다.

"세월호가 전라도 진도섬에서 서남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서 전복 되었습니다. 현재 476명의 탑승객 중, 172명만 구조되고, 269명의 학생이 숨을 거두고, 35명의 사람이 실종..."

하얀 알약들은 빨간 카페트 위로 작은 무덤을 만들 며 쏟아져 있었고 남자는 더욱 심해지는 치통에 이 빨을 강하게 맞 물고는 손에 집히는데로 알약을 집 어삼켰다. 그리고는 머리를 울려되는 티비를 꺼버 렸다.그제서야 남자의 몸이 쇼파 위로 떨어지며 고요함이 그의 몸을 덮어버렸다.

커텐사이로 새어나오는 햇빛이 방안을 가로지르고 다시금 어둠속으로 스며들었을 때즈음, 남자는 강한 허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허기를 지우기 위해  부스스한 머리를 한번 넘기고는 바닥 에 널부러져 있던 가벼운 외투를 껴 입고 곧바로 거리로 나섰다.

언제부터였을지 모르는 밤길을 걸으며 편의점으로 향하던 남자는 집 옆, 공원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았다. 쌀쌀한, 사 월의 봄바람을 타고 '미안합니 다.미안합니다. 잊지않겠습니다.' 라는 문구가 엄숙 하게 고개숙인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나부꼈다. 남자 는 짧은 시선을 거두며 그 자리를 서둘러 벗어날려 하였을 때, 그를 가로막는 학생들이 있었다.

"도와주세요. 친구들이 울고있어요."

남자의 몸이 살짝 움찔거리며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서명란이 들린 페이퍼를 들고 서있는 그들의  강한 염원에 남자는 고개를 돌릴수가 없었다. 그들 속에서 한 여학생이 다가와 남자에게 서명을 요구 하며 남자를 응시하자, 그 검은 눈동자 속으로 남자 의 모습이 담기었다. 원을 타고 굴곡지며 휘어진 얼굴과 흰 자위 밑으로 사라지듯 떨어져있는 몸. 남자의 얼굴이 또 다시 일그러졌다. 그는 서둘러 품을 뒤져 진통제를 찾기 시작했다. 남자의 앞에 서 있던 여학생은 그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펜을 내 밀었지만, 남자는 무너지는 얼굴로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하고는 황급히 그들의 앞에서 사라졌다.

집으로 서둘러 돌아온 남자는 지끈거리는 턱을 부여잡고 현관 바닥에 주저 앉아 흐느꼈다.  흔들리는 어깨를 부여잡으며 고개를 들어  방을 바라보았다. 붉은 카펫위로 쏟아져 있는 알약들이 여전히 하얀 무덤을 만들며 흩뿌러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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