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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21. 2016

기억

잊고 살아야 한다.


무엇이 처음일까. 아비없이 세상에 끌려나와 어미의 작은 품에서 꼼지락거리던 그 아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오로지 죄책감으로 멀어지기 위해  추하게 늙어버린 남자만이  나의 기억 첫 번째에 꽂혀 있었다.


ㅡ아버지


멍하니 서 있는 내 앞에서 남자의 얼굴이 무너지고 있었다. 족쇄에서 벗어나 날 뛰던 죄책감이 안개 속으로 젖어들어 갈때 쯤, 백지에 물이 젖어들며 선들이 나타나 흑백의 가족사진을 그려내고 있었 다.  


정신차리세요. 아버


정신차리세요? 젋었을 때 동네 작은 슈퍼를 운영하던 아줌마가 늘 나에게 하던 말이였다.  언제까지 여자 뒷 꽁무니나 쫒아 다니며 인생을 허비할거냐고, 정신 좀 차리라며  하루가 멀다하고 쫒아 다니며 잔소리하던 여자였다. 곧 건너편에 큰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슈퍼를 닫고 이사를 가버렸 지만 부모없이 자란 나에겐  부모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면 되는것인지 알려줘야 정신을 차리든 놓아 버리든 할 것 아닌가. 걱정과 분노만으로는 제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한번 시작 된 오류는 주변의 모든 것을 망치고 나서야 멈추듯,  타인의 고통이 내 것이 아니, 내 고통 또한 가족일 지라도 공유할 수는 없다. 그 끝이 죽음이 아니고서 .

 

아들녀석은 한참동안이나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 나서야 방문을 나섰다. 아직은  자신이 알던 아버지 가 맞다는 것이 그를 안도케 했음을 그리고 그 확신 이 또 물음으로 바뀔 것임을 나는 예견했다.


 방문 넘어로 새어나오는 아들과 며느리의 대화가 벽을 타고 웅웅거렸다. 조용히 장롱을 열었다. 손 등으로 셔츠의 소매 끝자락이 느껴졌다. 그제서야 입고 있던 옷을 확인했다. 젋었을 때나 입었을 요란 한 무늬가 박힌 셔츠가 나의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 다.


 단추는 정석에서 빗겨나 있었다. 처음이 세번 째에, 세번 째는 두번 째에. 두번째 단추는 보이지도 않았 다. 멍청한 늙은이. 나는 망가진 것을 온몸으로 표현 고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있지만 거울 속으로 보이는 주름지고 흐리 멍텅한 눈빛이  낯설 만 하다. 늙었다는 것을 언제 깨달았을까. 손녀가 태어났을 때? 아님 쌀밥조차 씹기 힘들어 아들의 손에 이끌려 틀니를 맞추던 날? 갑자기 홧기운이 뱃속에부터 부글부글 끓어 올랐다. 신경질적으로 셔츠를 뒤집어 벗어 던졌다. 아무런 걸림없이 셔츠 는 내몸에서 떨어졌다. 거인의 허물이였다. 또한 기억하기 싫은 과거의 찌꺼기였다. 화를 참기 힘들 었다. 셔츠의 단추가 떨어져 나갈 때까지 짖밟고 또 짖밟았다. 베이지 색으로 도배한 벽 중앙에 걸어둔 네모난 액자속의 마누라가  나를 보며 비웃고 있는 것 같았다.


 어젯밤 부터 무릅이 쑤셔온다. 비가 올 것이다. 30년동안 내 예보는 틀린적이 없었다  출근하는 아들에게 억지로 우산을 챙기게 한 후, 나는 지금 다섯시간 째 비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에선 치매 걸린 한 노인이 집을 나선지 이틀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모자이크 처리된 노인의 영정사진과 함께 한 병원의 의사는 치매걸 린 환자들에게 개인 명찰을 꼭 목에 걸고 다닐것을 권고했다. 저 놈이다. 저 놈이 나에게 치매를 선고 했다. 고마운 놈이다. 68번 째 생일날 나는 희망을 선물 받았다.


가장 최근의 기억부터 빠르게 사리질겁니다.. 반면 과거의 기억은 그런대로 또렷하게 생각나 실겁니다.


동네 병원의 돌팔이와는 다르게 그 놈은 제법 의사 다운 말을 했다. 내방 보다 은 진료실하며 잘 다려 진  순백의 가운, 은색으로 번쩍이는 안경테가 나에 게 충분한 믿음을 주었다. 그래서 물었다. 반대로는 안되냐고. 과거의 기억부터 사라지게 해줄 순 없냐 고. 의사의 대답보다 아들의 사과가 먼저 튀어나왔 다. 의사가 웃으며 말했다. 불가능합니다.

저 웃는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다.


 그림자들이 보이지않았다. 어느새 해가 사라지고 회색 구름들이 내머리 위로 몰려오고있었다. 비가 온다. 불안했던 내마음까지 쓸어버리며 시원하게 내린다. 머리는 망가졌지만 몸은 아직 쓸만하다. 목에 걸린 빨간 명찰줄이 까슬거렸다.


 아범님 식사하세요.


주방에서 며느리가 손녀에게 숟가락을 쥐어주며 말했다. 요세들어 식욕이 사라졌다. 허기는 졌지만 목구멍이 열리지 않았다. 어차피 먹어도 엄한데 쓸 기운이었기에 나중에 애비오면 먹겠다고 일렀다.


야간학습을 맞치고 돌아오는 여학생이 무참히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30년전, 7명의 여고생을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토막살인사건 기억하십니까. 오늘 오전11경에 발표한 경찰의 발표에 의하면 동일범이라는 가능성이 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소식, 김조식 리포터가 전해드리겠습니다. 김조식 리포터.


티비속에선 우산을 쓰고 바바리 코트를 입은 남자 리포터가 낯익은 건물앞에서 무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귀담아 듣지는 않았지만 리포터가 말을 할 때 마다 잠겨있는 머리속이 덜그럭 거렸다.


 손녀가 밥을  먹다말고 숟가락을 든 채, 나에게 뛰어왔다. 할아부지. 밥먹어야지. 밥. 손녀가 눈과 입을 크게 벌리며 숟가락을 내밀었다. 어이쿠 하고 웃으며 손녀가 내민 숟가락을 한입 크게 베어 물었 다. 쇠 맛이 난다. 숟가락 어디에도 밥은 없었다. 밥을 오물오물거리는 흉내를 내자 손녀가 방긋 웃었다. 며느리가 땅에 떨어진 밥풀을 닦고잇었다. 할아부지. 영숙이가 누구야?손녀가 물었다. 어제 할아부지가 그랬어.영숙이 죽인 놈 찾아야한다고.


눈 앞에 왠 여자아이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영숙이, 영숙이, 그렇다. 나는  찾아야한다. 영숙 를 죽인 그놈을. 덜그럭 거리는 입안 혀사이로 차 고 미끈한 쇠 맛이 난다. 숟가락을 뱉어 집어 던졌 다. 중년의 여자가 소리를 치며 나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명찰은 예상보다 효과가 좋았다. 며느리와 손녀가 잠깐 나간 사이, 어느 동네 집 주변을 서성이며 난리 치는 나를 한 여편네가 경찰에 신고했고, 그 경찰은 나의 명찰을 보고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아들 녀석  회사에서  소식을 듣고 집으로 달려와 나의 안전 을 확인했다. 며느리는 아무말 없이 그런 아들을 노려봤다. 비루하고 멍청한 늙은이였다. 또한 냄새 고 치매걸린 늙은다. 젋은 날의 나는 마을 누구 보다도 똑똑하고 건장한 청년 이였다. 아들은 그런 나를 자랑스러워 했고, 그 누구보다도 오래오래 사실거라고 말했다. 나는 수긍했다. 마누라 보다 오래 살고있이니.하지만 사는게 사는것이 아니다. 가족조차, 나조차 알아보지 못하는 삶이 영일지 언정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ㅡ요즘 좋은 요양소도 많아요.여보. 저렇게 그냥 두실게 아니예요.오늘 얼마나 놀란줄알아요? 심장 떨려서 못살겠다구요. 거기에는 항상 보살펴주는 사람도 있고."

알겠으니깐, 그만해."

그만좀 인정해요. 건강하시던 아범님이 아니예요. 늙으셨다구요. 지희도 아직 6살인데 교육에..."

역시 말보단 행동이란 말인가. 아들의 손이 며느리 의 새하얀 뺨에 붉은 흔적을 남기며 떨어졌다. 죽은 마누라가 즐겨보던 삼류드라마 같았다. 아픈 할배 와 병 수발에 지쳐 화를 내아내의 뺨을 내려치는 남편. 나는 뺨을 또한번 내려치는 남자를 보며 고개 를 끄덕였지만 마누라는 내 뺨을 내려쳤다.


 당신. 혹여나 애들 힘들게 할 생각마요.아프면 조용히 죽던가. 요양소로 간다고 약속해요.


그땐 마누라의 치겨든 손바닥에  놀라 그러겠다고 약속을 했었지만, 속으로는 콧방귀를 꼈었다. 하지만 이못된 내 마누라는 몸소 자신의 말을 실천하며 조용히 나의 곁을 떠났다. 그 때가 결혼 기념일 24주년 되던 해였다. 하얗게 서리 내리는 새벽이였고 그녀는 내 뺨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당신도 날 한번 떠났었으니 억울해 하지 말아요. 쌤쌤이예요. 그러니 그만울고, 알겠죠? 애들 잘부탁해요.

언제나 이야기의 갈등은 평온속에 숨겨져 있다. 치매인것을 아직 인정못하는 아들에게 오늘의 일은 커다란 의미로 다가갈 것이고 결과를 책임지어야 할것이다.

조용히 대문을 닫고 집을 빠져 나왔다. 제법 매서운 바람이 외투를 뚫고 살을 비껴갔다. 60살 먹은 남자 가 갈데는 없었다. 보이는 길데로 걸었고. 때 마침 서는 버스를 탔다. 안면이 있는 버스기사의 인사를  받으며 좌석에 앉았다. 버스의 스피커에선 얼마전 일어난 살인사건의 대한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었 고. 목격자를 찾는 다는 아나운서의 말이 끝날 때 쯤. 벨을 누르고 버스에서 내렸다.

밤길 조심하세요 어르신.

그래 자네도 조심히 운전하게.


치익하고 문이 닫히고 검은 매연을 내뿜으며 버스 는 줄발했다. 한적한 동네였다. 익숙한 듯 했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냥 걸었다. 분명 모르는 길인 데 몸뚱아리는 거침없이 앞을 나아갔다. 가빠오는 호흡에도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고 정신없이 골목길 사이로 나아갔다.

어? 할아버지. 또 오셨네요?

초록색으로 도배된 대문 앞에서 교복을 입은 여자 아이가 인사를 해 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 앞에 서자 두 다리가 후들거리며 힘을 잃고 꺽여 버렸다. 깜짝 놀란 아이가 놀라며 나를 부축했고 나는 괜찮 다고 말하며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여자아이는 걱정스런 눈빛으로 나를 봐라봤고, 그 순수하게 반짝거리는  두 눈속에서 나는 보았다. 초록색으로 도배된 대문의 한 쪽편에 붉게 점찍힌 표식을.

나를 본적있니. 아이야?

아이는 무슨소리 하냐는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리 다가 내 가슴언저리에서 덜런거리는 명찰을 보곤 손바닥을 소리없이 쳤다.

아 기억 못하시는구나. 네. 점심 때 쯤에요. 이 부근에서 무엇을 찾고 계시던걸요. 할아버지 ,괜찮으세요?

몸이 주체없이 떨려왔다. 뿌옇던 안개가 걷히면서 거대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그 놈은 연신 토악질을 해대며 추악한 과거를 내 뱉었다.  미친 늙은이.. 랄맞을 놈!그냥 죽자.죽어! 눈물이 쉴세 없이 흘러 나왔다. 어쩌자고,이 죽일 놈아. 니 아들놈.며 느리 손녀 마누라 얼굴안 잊지말고 기억하면 되잖 아. 어쩌자고 이 미친 늙은이야. 죽자 죽어 제발. 눈물이 앞을 가려 세상이 흐리게 다가왔지만 그 붉은 점만은 나의 온몸에 각인되고 낙인찍혀 내 머리를 태우고 있었다.

번의 연기를 했다. 치매걸린 노인의 연기. 사실 이것이 연기인지 아니면, 진짜 기억 못하는 것인지 헷갈렸지만. 아들은 속았다. 가깝지 않고 되도록 집과는 먼 요양소를 택했다. 아들은 반대했지만 며느리는 찬성했다. 나 또한 찬성이다. 가족과는 멀어져야 한다. 내 과거와 그 놈과의 거리 또한.


요양소 측에선 사흘 뒤에나 온다고 한다.


승용차를 보내드릴께요. 그동안 정리할거 정리하고 준비하고 계셔요."

 

그렇다. 정리와 준비가 필요하다. 저 요양소를 택한건 잘한일이었다.지금의 내가 사라지기 전에 해야  일이 있다. 나는 종이를 꺼내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반드시 사흘안에 끝내야 한다.


모르는 동네였다. 어떻게 이곳에 있는지는 상관 없었다. 세상이 멸망하여 나혼자 살아남았다 해도 나는 찾아야 한다. 영숙이를 죽인 그 놈을. 기억을 더듬어 발걸음을 옮겼다. 손목에 차여진 시계의 초침이 틱틱ㅡ거리며 원을 그리고 있었고 오로지 해야할 목표만이 뚜렷하게 방향을 제시하고 있었다.


버스를 탔다. 까만 선글라스를 낀 기사가 나를 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어르신. 어르신? 내가 그렇 게 늙어보이나?욱하는 마음에 나는 그 인사를 무시 했다. 토큰을 내기위해 주머니를 뒤졌다. 나오는건 먼지와 메모지 몇 장 뿐. 난감해 하고있는데. 선글라 스가 말했다. 그냥 타세요.  운이 좋았다.요새 보기 드문 친절한 기사였다.


 비어있는 좌석을 찾아 앉으며 주머니에서 나온 메모지를 확인했다.


 ㅡ기억하지 말 것. 떠올리지 말 것.찾지 말것ㅡ


 글씨는 내 것인데 쓴 기억은 없다. 무엇을 기억하지 말고 무엇을 떠올리고 무엇을 찾지말라는 말인가. 찾지말라는 그 흔들리는 글씨체에 잠시 눈을 빼앗 겼지만 관심은 그리 오래 가지는 못했다. 시선을 돌렸다. 버스의 창밖으로 보이는 세상은 변해있 었다.내가 알던 곳이 아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여자 들은 짧은 치마와 치렁치렁 거리는 긴머리를 풀어 헤치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시간은 11시.곧 통행금지 시간이다. 하지만 순경들은 보이지 않았 다.


 귓가로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와 경찰들의 고함 소리가 이명처럼 메아리쳤다. 혼란이 버스의 속도 계만큼 가증되고 있을  문듯, 기억이 났다. 


 대통령은 야간 통행금지를 해제시켰고 장발단속도 해제시켰고 교복의 자율화를 실행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정치개혁의 실행과 함께 살인범의 시간또한 해제 되었고 그 첫 희생부터 여섯번째 희생까지  아무런 제재없이 자유롭게 행해지고 있었다. 그리곤 일곱 번째의 살인이 벌어지고 나서야 그들은 사태를 직시했다. 한국에 의례없는 연쇄살인. 여자들을 윤간하고 목을 졸라 죽인 , 토막 내어 냇가에 유기한 연쇄 살인범. 그 일곱번째 희생자는 이영숙. 보라빛 교복치마가 어울리던 하얗게 빛나는 치아를 뽐내며 나를 향해 미소짓던 영숙. 사랑하는 내 사람이였다.


ㅡ여고생을 살인하고 유기한 범인의 목격자를 찾습니다. 제보전화는.


놈은 아직 잡히지 않은것 다. 내가 목격자다. 나는 놈의 얼굴을 안다. 그리고 내앞에서 유린당하고 짖 밟히던 여자의 얼굴도.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없다. 삐그덕 되는 다리를 보며 나는 느꼈다. 기사를 향해 소리쳤다. 얼마안가 버스가 멈추었고 문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며 나는 뛰어내렸다.



 고개를 들었을 때, 경찰 두명이 나를 보고있었다.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색이었기에 나는 물었다. 


무엇을 기다리는거요?


곁눈질을 하며 주변을 훝었다. 나는 지금 파출소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앞에는 펜 한자루와 종이가 놓여있었고, 하얀 종이 위에는 붉은 점이 찍혀 있었다. 손이 파르르 떨려 왔다. 곧 경찰의 무전기에  알  없는 잡음이 들리며 파출소의 문이 열리고 눈매가 부리부리한 사내가 들어섰다.


누구요?


경찰은 날 지목했고, 남자는 나에게 물었다.


할아버님이 살인범을 목격했습니까?


아니오. 그런거 모릅니다.


경찰이 나를 향해 다그쳤다. 하지만 나는 모른다. 남자가  손을 들어 경찰을 저지했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곧 나는 그의 맹수같은 시선이 앞에 놓인 종이에 집중하고 있는것을 깨달았다. 황급히 손을 뻗어 종이를 찢었다.


ㅡ나는 정말 모릅니다. 나는 치매걸린 늙은오. 아들을 불러주시오.아들.


한 시간 뒤, 아들이 와서는 내가 환자라는 것을 경찰과 남자에게 설명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 며 가도 좋다고 말했다. 아들의 팔에 기대어 경찰서 를 빠져나갔다. 뒷 통수가 근질거렸다.하지만 돌아보지는 않았다. 아들 녀석의 차에 타고 나서야 나는 안도했지만, 그 맹수같은 남자의 눈길은 끝까지 꼬리를 물고 따라붙고 있었다.



 하루 남았다. 집을 떠날 준비는 되었다. 경찰소를 나온 이후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밥조차 먹지 않았다. 걸을 기운 조차 없애야 했다. 아들은 늘그렇듯  말이 없었다.


ㅡ계십니까.


누군가 찾아왔다. 현관 카메라로 찍이는 화면속의 남자는 낯선 얼굴의 50대 중년이였다. 누구요?

중년은 경찰 뱃지를  카메라에 내보이며 나를 찾아 왔다고 한다. 그 맹수같던 남자는 아니였다.


ㅡ문좀 열어 주시죠.사건에 대해 여쭐게 있어서요.


스피커를 통해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용하고 묵직한 울림이었지만 잡음이 끼어 불편한 소리로 다가왔다.


ㅡ나는 모릅니다. 내가 누군지도 잊어버리는  늙은이오. 할 말없으니 그만 돌아시오.


화면을 꺼버리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중년은 끈질기게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렸다.나는 현관 문에 대고 소리쳤다.


ㅡ삼십년도 더 지난일을 무슨 수로 기억한다 말입니까. 나 좀 그만 내버려 두시오!


집안에 아무도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울분이 맺힌 나의 고함은 집안 구석구석에 퍼져나갔고.나는 눈물과 콧물 범벅이 된 채 오열했다.


ㅡ가족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야. 그놈이 날 찾아 와서 협박했다고. 내 자식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 갈 것이라고. 진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야. 내 아내와 뱃속의 아이까지  모두 죽일 것이라고! 나 좀 내버 려 두시오. 제발.


한번 시작된 독백은 멈추지 못했고, 그 폭풍같던 진실의 외침속에도 밖은 고요하기만 했다. 몸을 일으켜  현관 밖을 확인했다.중년의 남자는 떠나고 없었다.



차가 도착했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안전하고 좋은 곳이라고 날 닮은 남자가 말했다. 웃어 보였다.고맙다고 이 은혜는 꼭 갚겠다고 머리 숙여 인사했다. 남자 옆의 여자는 울고 있었고 작은 여자아이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나도 손을 흔들며 웃었다. 하얀 옷을 입은 남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나는 차에 탔다. 문이 닫히고 올라가는 창문유리 넘어로 나에게 손을 흔드는 다정한 가족이 보였다 좋은 사람들이다.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들이 서있는 울타리 옆으로 화사한 꽃들이 만개해 화단을 채우고 있었다. 갈색의 나무지붕과 노란빛이 살짝 감도는 베이직으로  페인칠한 외벽들이 그 들을 안전하게 오래 오래 지켜줄 것이다. 나도 이제 안전한 곳으로 간다.사랑하는 아내와 날 닮은 아이가 있는 곳으로. 차가 힘차게 출발했고. 그들의 현관 문 외벽사이로 점점이 찍혀있는 붉은 점들이  사라질 때까지 나는 손을 흔들며 그들과 작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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