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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현 Feb 19. 2016

말하지 못한 말

벌써 한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는 아무말도 없이 각진 소주잔을 든 채, 반복적인 기침을 내 뱉으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짐이 들어 있는 가방을 쇼파 위에 올려 놓고는 말없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거운 공기가 나를 짖누르고 있었다. 나는 리모 콘을 들어 티비를 켰다. 반응은 신속했다. 감정없이 내뱉는 인간의 나레이션과 한 무리의 회색 곰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그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녀석이 그 육중한 상체를 들어올리며 화면을 통해 나를 쳐다봤다. 포식자의 눈빛이였다. 그 몸은 육 중하고 튼튼해보였으며, 어깨가 높이 솟아올라 엉덩이보다 높아 보였다.  순간 빛바랜 회색의 털 빛이 하늘로 치솟아 오르며  세차게 흔들렸다.


곰의 성난 포효가 집안에 울려 퍼졌다. 새끼들이 겁을 먹으며 뒷걸음 치고 있었고 녀석은 그 강인한 두 발을 하늘로 뻗어 올린체 새끼들을 위협했다. 그 사이 인간의 목소리가 새끼들의 죽음을 예견했다. 회색 곰은 새끼를 죽인다. 생태계는 이런 곳이라며, 담담하게 아무것도 아니라는듯 그렇게 평범하게 지껄이고 있었다. 어미 곰으로 보이는 녀석이 다급 하게 새끼의 목을 물고 도망쳤다. 그리곤 커다란 곰을 향해 울음섞인 소리를 내 뱉었다. 익숙한 무언 가가 느껴졌다. 애정과 증오사이, 새끼가 그 속에서 떨고 있었다.


 아버지의 소주잔이 거칠게 탁자위로 떨어졌다. 그리곤 매서운 눈빛으로 티비를 노려봤다. 마치 자신의 영역을 넘보는 놈이라도 보듯이. 나는 숨을 죽이고 티비소리를 줄였다. 표효가 사라져간다. 그제서야 아버지는 크흠,하며 그르렁 거리 듯 헛기 침을 내 뱉곤, 담배 하나를 입에 물곤 불을 붙였다. 보랗빛 입술 사이로 담배연기가 새어 나오며 아버 의 초점없는 눈빛이 허공을 쓸어담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에 있는 대학에 입학했을 당시, 대학교와 집의 교착점은 구명역 버스 정류장 였다. 그 곳은 언제나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했고, 나도 그 곳을 거쳐야 했다. 사람들의 시 은 한 곳을 응시한체 허공을 멤돌았고 , 나는 그들 과 떨어진 한쪽에서 담배를 태우며 버스를 기다리  있을 때였다.


학생. 담배 하나만 얻읍시다.


한 중년의 남자가 나에게 불쑥 찾아왔다. 하나만 주게.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주머니에 감춰져 있던 손을 내밀었다. 주름 틈 사이로 검은 때와 같은 것들 이 늘러 붙어있는 앙상한 손이였다.


 정류장에 서 있던 사람들의 움직임이 부산스럽게 움직이자, 나는 고개를 내밀어 시선의 끝에서 부터 오는 버스를 바라보았다. 기다리던 버스가 아니였 다. 몇몇 사람들이 다시 의자에 주저 앉으며 아까와 같은 멍한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내가 고개를 바로 했을 때,  남자는 바닥에 주저 앉아 종이컵을 입가에 들이대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소주 일 병만 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한잔 할려나? 종이 컵을 내밀며 그가 물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종이 컵에 가득찬 쓴 소주를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가 붉어진 광대를 힘껏 끌어올리며 말했다.


같이 마시는 사람이 있어서 좋구만.


 눈가의 주름에 끼어있던 그림자가 늘어지며 보랗빛 입술 사이로 누런 이빨이 드러났다. 왜 혼자 드세요? 나의 물음에 남자는 소주를 입 안으로 털어 넣으며 말했다.


 크으. 좋구만. 좋아. 아! 같이 마실 사람이 있어야 마시지. 마누라는 집 떠난지 오래고, 자식들도 자기 길 간다고 나간지 오래여. 다 필요없지. 아무도 없어.암!  


남자는 후회와 원한 섞인 탄식을 내비치며 말을 이었다.


친구들은 애초에 연락을 끊었어. 내가 먼저 그랬단 말이지. 놀고 먹을 돈이 없어서 그랬던 거여. 아무도 없어도 되.


그렇게 말하는 남자의 얼굴은 오랫동안 보아온  참을수 없는 아버지를 닮아 있었다. 권위적이고 자신밖에 모르던 아버지. 늘 혼자 어두컴컴한 거실에 자리잡고 소리없이 번쩍이는 티비 불빛에  기대어 술을 들이키던 아버지. 고함을 지르며 우리에게 쓴소리를 내뱉던 아버지. 그 앞에서 나는 작은 몸을 웅크린체 알수없는 분노를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이젠 소년을 벗어나 상처는 실로 단단히 꼬매 버렸지만, 다시금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변해야 했다.


정류장의 사람들이 여러번 바뀐 시간, 어느새 소주병 속의 액체는 말라있었고 멀리서 버스의 경적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던 것이였다. 나는 남자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한 뒤, 편의점에 들어가 내가 피는 담배와 아버지가 피던 담배를 사서는 돌아왔다. 남자는 고개를 숙인체 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외소한 몸을 흔들거리고 있었다. 멈추어 선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피우던 담배 한갑을 그의  헤진 점퍼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건강하세요. 이렇게 술 드시지 마시구요.아셨죠?


 남자가 멍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것을 느끼며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사람들은 이미 자신의 자리를 돌덩이처럼 버티며 지키고 있었고, 나는 어렵게 그 속을 헤치며 창가 쪽으로 몸을 틀고 밖을 내다 보았 을때, 남자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소리치고 있었다.


아들아.아들아


나는 아무런 행동도 할수가 없었다. 그것이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이였는지, 손 조차 들수 없을 정도로 밀려오는 사람들의 행렬때문인지 알수는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우두커니 서있는체 버스가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 할 때까지, 남자를 오랫동안 지켜보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난 오늘. 떠나는 자식을 두고 아버 지는 아무런 말도 없었다. 밖에서 택시의 경적소리 가 들려왔다. 기다리던 것이였다. 나는 티비를 끄고 챙겨 두었던 가방과 짐을 어깨에 둘러 메고 아버지 를 쳐다 보았다. 언제부터 였을까. 그 강대하던 어 깨가 이토록 외소하게 보였을 때가. 갑갑한 공기가 나를 둘러싸고 밖으로 내몰고 있었다. 갈께요. 단 한마디만 남긴체 그렇게 나는 도망가듯 집을 빠져 왔다. 조용히 닫힌 현관문 앞에서 나는 짐을 땅 바닥에 늘여 놓고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다스려야 했다. 아파트 복도는 조용했고  현관 문 넘어로 간간 히 들려오는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가슴에 박혀 스 들었다 .건강하세요. 자주 찾아 뵐께요. 이 한마  되는데 할 수가 없는 내 자신을 후회했다. 흐르 는 눈물을 닦고 짐을 다시 챙겨 그렇게 나는 집을 떠났다.


그 때, 그 남자는 떠나는 자식을 향한 울분 섞인 외침 이였을까, 아니면 언제가는 돌아오길 바라는 자식을 찾는 애탄 아비의 외침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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