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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Jul 12. 2023

Don't be a duck!

하버드의 오리가 되지 마세요!

Don't be a duck! (오리가 되지 마세요)


하버드 오리엔테이션 때 기억나는 한 구절. 



오리는 물 위에서는 고고하게 떠있지만 물 밑에서는 떠있기 위해 발을 엄청 움직이고 있다는 것. 즉, 잘하고 있다고, 문제없다고 다들 지내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다들 엄청난 스트레스와 중압감에 시달려사는 하버드생을 표현하는 말. 


조금 시간이 지난 통계지만 코로나 직전에 발표된 하버드 자료에 따르면 약 15%의 하버드 학부생이 정신질환을 진단받았고, 약 30% 정도의 학생이 본인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어디 하버드 학부생뿐이랴. 네이처라는 탑 저널에 발표된 결과에 따르면 대학원생들은 일반인보다 6배나 많은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코로나를 지나면서 이 통계는 더 올라갔을 것이라 감히 추측해 본다. 실제로 하버드 내의 클리닉에서 상담하는 카운슬러를 만나려면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하버드에 오기까지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작게 든 크게 든 성취를 맛보았고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학부 기준 평균 4% 합격률을 뚫고 들어온 하버드인데 이곳에는 모두 오리들만 둥둥 떠있으니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던 게 아닐까. 


이런 시기에 실패나 패배감에 대한 근육(resilience)이 없으면 그런 압박감에 힘들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오리처럼 괜찮은 척하지 말고 힘들면 힘들다 주변 친구들과 시스템에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이다. 입학 첫날에 하는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던 이 말을 시간이 지나며 더욱 이해할 수 있었다. 세상을 어느 정도 안다고 더 압박이 높은 스트레스 환경 (군대, K-직장, 아프간, 지진)에서 살아왔다고 자신했지만 막상 나도 쉽지만은 않은 1년 차였다. 


한 해를 돌아보니 3가지 정도의 스트레서 (stressor)가 나를 압박했다. 


1) 남들보다 시간이 적다는 부담

학교에 있는 대부분의 싱글 친구들보다 자녀 둘을 가진 부모로 시간이 항상 모자란다고 생각했다. 평일 수업이 끝나면 5시에 집에 바로 와야 하고 가족과 저녁을 먹어야 하고 애들을 씻기고 잠을 재워야 하는 삶. 주말도 다르지 않았다. 토요일은 아이들을 한글학교에 데려가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주일은 교회에서 시간을 보냈다. 줄이고 압축해서 시간을 내려고 해도 나에게 공부를 위한 시간은 정말이지 밤 9시부터 자정까지 3시간 정도밖에 없었다. 다음날 새벽 기도를 위해 6시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6시간은 자야 하기에. 항상 시간이 모자란다고 느꼈다. 애들 없던 석사 시절에는 자정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막차 버스를 타고 집에 오고, 주말에는 하루 종일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곤 했는데 이제는 추억일 뿐. 부족한 시간에 비해 내가 읽고 써야 하는 양은 언제나 빚쟁이처럼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간이라는 산에서 항상 자유롭지 못했던 한 해였다.


2) 내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감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나는 내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감이 있었다. 지금까지 잘 해왔으니 하버드에서도 잘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 그리고 여기서 A급 학생은 아니어도 A-급 학생은 되어야지, B+학생은 되지 말아야지.  이런 알량한 기대감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게 너희들과 같이 젊은 두뇌는 없지만 경험이 있으니 내가 더 잘 알 거야 하는 그런 교만도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런 모든 것들이 모여 나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했다. 내 최고 퍼포먼스의 때를 기억하며 나의 기대치를 만들어 임했을 때 맞이한 현실을 녹록지 않았다. 돌이켜보니 이 기대감은 허구였고 난 그냥 살아내면 되었던 것인데, 너무 잘하려고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3) 빨리빨리 결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함

이건 한국인의 특징일까. 모든 것들을 빨리 결과로 보여주고 싶은 조급함. 아직 몇 달밖에 안되었는데 연구를 하는 방법을 알고 싶고, 멋진 논문도 발표하고 싶다는 부담감. 최대한 빠르게 정보를 습득하고 적응하려 노력할수록 내 안에 빨리 결과물을 내고 싶은 조급함이 있었다. 그러나 난 그냥 박사생일 뿐이었다. 현직에서 일할 때처럼 퍼포먼스를, 결과물을 빨리빨리 찍어내던 속도와는 다른 학문의 속도. 나는 너무나도 모르는 게 많았고 이곳의 문법은 내가 지난 10년 일하면서 배운 문법과 너무 달랐다. 이번에는 영어도 되고, 미국도 알고, 경험도 있으니 가자마자 빨리빨리 무언가 해낼 거란 나의 기대감은 곧 실망감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초조해지고 졸업 시점을 기준으로 거꾸로 조여오는 데드라인 같은 무게감이 나도 모르게 나를 압박했다. 


안타깝게도 이 모든 것 중에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내가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해도 내 안에 샘솟는 조급함, 기대치, 불안함은 실망감으로 이어지곤 했다. 이게 아닌 걸 알면서도 그런 부정적이고 우울한 마음들은 매일 나의 마음을 두드렸다. 그걸 내 마음에 들어오게 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기대치를 낮추고, 더 멀리 보고, 천천히 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행복=분자/분모. 즉, 분자를 늘리기 보다 분모를 줄이는 삶. 그럼 같은 분자 (내가 가진 것)을 가지고 적은 분모로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나만의 개똥철학. 그리하며 가뜩이나 부족한 나를 지킬 수만 있다면야. 모두가 하는 것 혹은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안 해도 괜찮아라고 나의 기대치를 낮추는 방법. 조금 비겁한 변명 같지만 나에게 꼭 필요한 전술이었다.


이런 세 가지 스트레서 (stressor)와 힘겨루기를 했던 첫해. 나를 더 깊은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게 잡아준 세 가지가 있었다. 이것 없이는 버틸 수 없는 하버드 박사의 첫해였기에 그것들을 샤라웃(shout out) 해본다. 


1) 운동

바프 찍는 게 목표예요. 식단 관리를 하고 있어요.라는 얘기는 인스타에만 존재하뿐 나는 "살기 위해" 운동했다. 운동 포 서바이벌. 나의 머리가 복잡해지고 지끈 해올 때 운동을 하고 나면 머리의 긴장이 온몸의 땀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내 안에 긴장과 쥐어짬이 음습할 때 뛰고 들고 땀을 흘리면 머리가 맑아졌다. 트레드 밀에서 벤치프레스에서 없는 힘을 끌어내서 운동을 하다 보면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오기 같은 게 생겼다. 군대에 있을 때 그런 경험을 많이 했는데 몸을 한계치로 끌어가면 이상하게도 마음의 힘 같은 게 생겼다. 할 수 있다는 믿음. 가장 기본적인 몸의 자극을 통해 정신의 분주함을 밀어냈던 첫해였다. 


이를 통해 얻은 것은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 건강해진 몸, 운동하면서 봤던 한국 드라마/예능, 그리고 넘치지 않게 관리되는 스트레스. 


2) 피어 코치 (Peer coach)

내가 있는 DrPH 프로그램에는 리더십이 큰 배움의 부분이다. 리더십 교육 중 코칭이 큰 부분인데 두 가지 코칭 프로그램이 있었다. 학교에서 붙여준 전문 코치에게 매달 코치를 받으며 커리어나 전반적인 삶의 방향들을 다듬어가는 것. 그리고 같은 프로그램 동기들을 엮어줘서 매주 만나 서로의 삶을 점검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는 그런 서포트 그룹이다. 우리는 그들을  Peer Coach 라 부른다. 스웨덴/칠레인인 이사벨라. WHO에서 오래 일하다 마지막은 필리핀에서 일하다 온 아이 셋 엄마. 나랑 너무 비슷한 게 많아서 배울 것이 너무 많고 공감도 참 많이 되는 친구. 캄보디아/미국인인 폴린. 이민자 가정에서 수많은 역경을 뚫고 대학을 가게 되어 하버드 박사까지 오면서 쌓아온 삶에 대한 내공이 엄청난 친구. 스탠퍼드 헬스에서 디지털 헬스 전문가로 일하다가 와서 나랑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미국인의 눈으로 조언해 주는 프로페셔널 팁들이 너무 도움이 된다는. 우리 셋이서 시험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한 번씩 점심을 먹으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서로의 부족한 점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약한 모습도 서슴지 않고 보여주고, 피드백도 줘가면서, 박사생이 겪는 불안감과 자기의심 (self doubt)등에 관해 서로 미러링을 할 수 있었다. 너무 힘이 들 때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이렇게 잘난 친구들도 그렇구나라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나를 돌아볼 수 있었던 그룹이었다. 


3) 신앙생활 

나에게 신앙을 빼고 나를 설명하기란 참 힘들다. 나를 붙들어준 두 가지. 매일 새벽 6시에 하는 새벽 기도와 금요일 밤에 하는 찬양집회/성경공부. 새벽 기도는 올해 초부터 시작해서 새벽에 일어나 영적인 영점조준을 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나만의 영적 루틴이다. 짧은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다 보면 나의 부족함과 욕심들을 보게 된다. 회개하고 다시 세상으로 (죄를 지러 ㅠㅠ) 나가게 되는. 금요 찬양 예배는 석사 때 청년부로 매주 와서 눈물을 많이 흘렸던 그곳인데 이제는 청년부의 간사로, 성경공부 인도자로 서게 되었다. 지난 1년 학부생들과 함께 같이 예배드리고 삶을 나누며 늙은 학생이라 이들의 학업 스트레스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은 물질도 아니요. 시간뿐이기에. 나의 헌금을 이렇게 시간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1년이었다. 


이 많은 일들을 겪고 내가 세운 3가지 목표가 있다. 아주 심플하고 직관적이라 내 의사결정의 수단으로 많이 사용해왔다. 지금도 그렇고.


첫째. 나는 지금 하고 있는 박사를 제시간 안에 마무리해서 졸업할 것이다. 그 말인즉슨 그 과정에서 A 학점의 학생이든 C 학생이든 중요하지 않다는 것. 졸업을 위한 조건을 다 마치고 더 늦지 않게 졸업해서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 그리하여 작금의 작고 작은 거절감과 실망들에 bird view로 떨어져서 볼 수 있게. 이건 다 지나갈 것이다. 난 졸업만 제때 하면 된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그 중간에 얼마나 잘하든 못하든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다. 이렇게 되새기며 말이다. 


둘째. 가족과 좋은 추억과 퀄리티 타임을 보낼 것이다. 보스턴에서의 박사과정은 가족의 불편함을 조금 빌려와서 나의 자아실현을 채우고자 하는 그런 어떤 나의 욕심이기도 하다 to be honest. 그러하기에 지금의 시간들이 가족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을 수 있게 해가 나오면 밖으로 나가고, 이안이가 레슬링을 하자고 덤벼들면 넘어져 주고, 자전거를 가르치고, 애들 학교에 자원봉사자로 가고, 재정이 빠듯해도 카드 포인트 모아서 여행 다니고, 아내에게 항상 더 감사를 표현하고. 주말은 가족과 함께. That's it. 주말 저녁에 애들 재우고 나서 공부는 하지만 주말은 온전히 가족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시험이 있어도 주말은 주말처럼 보내는 삶. 아이들에게 아빠가 공부하는 사람인지 헛갈리게 만들 정도로 말이다. 


셋째. 나에게 박사로 보내는 몇 년은 영적인 수련의 장이자 트레이닝이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스턴에서 머무는 이 시간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내 삶을 맡기고 깎이고 깎이며 영적인 성장을 하는 시간이 되는 것이 목표다. 기도로 아침을 세우고, 섬김으로 다지고, 신앙을 나누면서 하나님과 나와의 1:1관계를 다지는 시간이 될 거라고 다짐했다. 그리하여 선택의 순간에 주저 없이 하나님! 하고 외칠 수 있는 단단한 믿음을 가지는 것. 삶에서 부족하지만 영적 근육을 쌓는 자리. 보스턴이 나에겐 영적 체육관이라 마음먹었다. 세상의 소리에 휘둘리지 않고 말씀에 귀 기울이는 그럼 삶을 적어도 지금 조금 부족한 때에 더 살아내야 할 것이다. 


나는 오리가 아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할 기도의 자리와 친구들이 있고. 나의 불안함과 스트레스를 풀어낼 통로도 알고 있다. 그것을 루틴으로 만들어서 내가 막을 수 없는 컨트롤 할 수 없는 기운이 몰려올 때 방어 카드로 막아내는 연습을 지난 한 해 꾸준히 하고 있다.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나는 여전히 무너지고 새벽에 회개하지만, 이렇게 나눔으로 또 한 번 나에게 다짐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지만, 그걸 가슴에 안고 살아가다가 병이 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것들을 흘려보내는 여러분만의 공간과 시간과 관계가 있기를 소망하며. 나도 여전히 불안하고 연약하지만. 우리 모두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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