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형준 Nov 23. 2023

귀국. Home Alone.

한국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꿀 타임

1년 반 만에 한국에 들어왔다. 


내가 일하는 기관의 대표가 한국에서 개최하는 컨퍼런스에 기조연설을 하러 오셨고, 

한국인인 내가 보좌해서 정부, 국회, 국제기구 등 다른 파트너들과 지난 며칠 정신없는 일정을 보냈다. 


3일간의 "일"을 하는 동안 시차 적응은 커피로 꾹꾹 눌러 담아 3일이 지나니 한국 시간에 적응된 나를 보게 된다. 역시 멘탈이 중요한 건가 싶기도 하다. 해야 되면 하게 되는 그런. 


때마침 미국은 추수감사절이라 휴일이라 보스에게 말해서 3일 정도 더 있다가는 스케줄로 변경. 오늘 드디어 개인 일정의 첫날이 시작되었다. 여의도 호텔에서 부모님이 사시는 곳까지 캐리어 2개를 들고 도저히 올 수가 없어서 밤늦게 택시를 타고 왔다. 


부모님은 내가 이렇게 올 줄 몰랐고 장인장모님과 같이 일본에 놀러 가셔서 빈 집에 Home Alone을 찍으며 어젯밤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처음 한 일은 동네에 순댓국 맛집을 검색하고 아침을 먹으러 나왔다. 나오는 길에 양복과 재킷들을 드라이 맡기며 내일이면 찾을 수 있다는 사장님의 말에 역시 한국은 패스트 컨트리임을 다시 느낀다. 

신의주 순댓국이 투자를 많이 받았나 보다. 브랜딩도 새로 하고 인테리어가 한층 깔끔해졌다. 순댓국을 주문하고 두근구든. 순댓국의 최고봉은 혼순이다. 혼자 먹는 순댓국. 맛에 집중해서 여유롭게 먹을 때 느껴지는 순댓국과의 조우는 나의 귀국 의식과도 같다. 순댓국이 보글보글 거리는 사진을 찍으며 국물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살코기들과 순대들을 꺼내본다. 나의 소울푸드 순댓국. 지친 마음과 영혼을 충전한다. 



그리고 옆에 있는 스벅에 왔다. 한국에서 파는 메뉴들을 찾아서 시킨다. 이제는 한국도 오트밀크를 선택하게 해주는구나 하면서 어느새 유당불유증 돼버린 나도 살만하단 생각을 해본다. 예전에는 막 우유 종류 물어보고 고르는 게 까다로워 보였는데 체질이 변하니 나도 이제는 꼭 오트밀크로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모두가 열심히 일을 하는 한국에서 대낮에 한량처럼 돌아다니는 기분은 사실 짜릿하다. 그들의 삶에 잠시 방문한 외부인의 기분이랄까. 이것저것 사면서 달러로 얼마지 하며 돈을 쓰며 돈을 버는 이상한 기분도 덤이다.


오후에는 혼자 영화관에 가서 한국 영화를 보고 목욕탕을 가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묵언 수행이고 혼자의 시간이다. 극 E인 나이지만 혼자 있을 때 채워지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가족이 생기고 아이들과 북적대는 아빠의 삶에서 잠시 벗어나 (다들 너무 보고 싶지만 ㅠㅠ)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너무 기대가 되는 건 사실. 이 글을 쓰며 와이프의 문자를 확인한다. "오빠 다녀오면 나도 하루 정도 사라지게 해 줘.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해." "당연하지. 나도 여기서 최대한 즐기고 갈게."라고 답을 한다. 


예전에 한국에 오면 CEO스케줄처럼 몇 시에 누구를 만나서 커피를 마시고, 저녁을 먹고, 종로, 강남, 광화문 이렇게 돌아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사실 만나자면 만나야 할 사람들. 들어보고 싶은 이야기들, 받고 싶은 영감들이 많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가. 그것들로 얻는 만족보다 혼자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여행자처럼 돌아다니는 오늘이 더 큰 행복을 가져다준다.


앞으로 3일간 조용히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고 돌아갈게요! 지난 몇 달 공부도, 육아도, 일도, 교회일도 하면서 지친 몸과 마음. 묵언수행하면서 생각도 많이 하고 글도 조금 써보고. 제 삶에 주어진 감사들을 묵상하며 보내다 다시 미국 가서 열심히 살아보려고요. 

덧. 쓰고나서 맞춤법 검사하며 알았다. 순대국이 아니라 순댓국이 표준어란걸. 뭔가 정감없어보인다. 그래도 난 순대국이 더 정겨운데.


매거진의 이전글 1억 6천만 원의 장학금을 받는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