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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형준 Apr 15. 2024


하버드 박사생의 시간 관리 비법

미슐랭 쉐프가 아닌 김밥천국의 주방장으로 살아가기

"야 너는 애들도 키우고 일도 하면서 박사까지 어떻게 다하냐?"


주변에서 자주 이런 소리를 듣는다. 남들의 눈에는 많은 걸 다해내는 것처럼 보이나 보다. 사실 내 삶은 아주 단순한데 말이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내 삶이 그렇게 보이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내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늦깎이 박사생으로, 국제기구 컨설턴트도, 아이 둘의 아빠로, 교회에서 청년들을 섬기는 간사로써. 나의 시간에 관한 생각을 정리해 봤다. 


1. 절대적인 시간은 부족하지만 스케줄의 밀도를 높인다. 


자녀를 가진 사람의 스케줄은 아이들 중심으로 돌아간다. 나의 관심과 시간이 필요한 자녀들이 집에 있는 한 그들의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방치하고 방에 들어가서 공부만 할 수 없는 이유다. 한 예로, 이번주가 아이들의 봄 방학인데 나의 수업은 계속되지만, 내일은 아이들과 꽃을 보러 가야 하고, 수요일에는 디씨에서 오는 친구들 가족과 애들을 놀려야 한다. 논문 준비는 논문 준비대로, 일은 일대로, 아빠로서의 삶도 계속된다.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이 가는 한글학교를 가고, 친구들 생일잔치를 다니고, 자녀들의 플레이 데이트를 돌아다닌다. 주일에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 친구들과 논다. 주중에는 9-5를 학교에서 대부분 보내지만 주말에는 아이들이 잔 밤 9시 이후부터 자정만이 나의 시간이다. 


그래서 나의 주중의 시간은 빡빡하게 돌아간다. 나에게 주어진  9-5의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새벽기도로 6시에 하루를 시작하고, 학교로 출근해서 수업을 듣고, 중간에 집중도가 낮아도 할 수 있는 일 (회사 업무 등)을 몰아서 하면서 점심을 퀵퀵 해치운다. 중간중간 온라인으로 동료와 회의도 하고, 네트워크도 하면서 논문 아이디어와 협업들을 만들어내고 애쓴다. 오후 수업이 다 끝나면 버스+지하철을 타고 50분 정도를 거쳐 집에 온다. 집에 오는 길에도 나에게 필요한 설교나 강의들을 귀로 들으며 걷는다. 20분 정도 걸을 때는 최대한 빨리 걸어서 운동도 한다는 생각으로 한다. 열심히 걷다 보면 애플시계가 물어본다. 운동하는 걸로 기록해 줄까? 내가 아는 학생은 퇴근길에 나를 자주 보는데 항상 너무 빨리 걸어가서 아는 척도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고 말해서 알았다. 내가 축지법으로 걸어가는구나. 그렇게 집에 오면 애들이 숙제를 하고 있거나 뭐를 배우러 가있다. 그때를 활용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운동을 다녀온다. 운동에 가서는 내가 보고 싶은 최애 티브이프로그램 (나는 솔로)을 보며 운동을 한다. 내 구글 캘린더는 해야 할 일들이 꽉꽉 차있는데 하루가 마무리 될때면 오늘 다 못 끝낸 일들은 과감하게 내일로 끌어서 옮긴다. 그렇게라도 나에게 약간의 리마인더를 한다. 24시간이 모자라. 헉헉.


잠은 12시가 조금 넘으면 자려고 한다. 이제는 6시간 자면 피곤해서 아침 오후에 커피로 버텨야 하고, 7시간 넘게 자면 하루가 상쾌하다. 주중에는 늦잠 따위는 없다. 아침은
 6시에 일어난다. 새벽기도를 한다고 하지만 기도하다 잠들어있는 나를 자주 발견하게 된다. 그래도 기도의 자리로 나간다. 하나님은 알아주시겠지 하면서. 절대적 시간은 부족하지만 누구보다 꽉꽉 채워서 주중을 쓰려고 한다. 주말엔 놀아야 하니까. 그래서 오히려 주중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주중을 꽉꽉 눌러서 3가지 역할 (학생, 직장인, 아빠)을 바쁘게 보내고 나면 금요일 찬양 예배로 향한다. 그러면 찬양하다 눈물이 날 수밖에 없다. 인생은 쉽지 않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 내 지금의 밀도가 감사로만 느껴지는 기적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렇게 주말을 맞이한다. 


2. 체력이 약해졌지만, 자기 관리엔 양보가 없다. 


프로에게는 체력도 중요하다. 난 사실 학생이 아니라 이미 프로리그에서 뛰는 선수라고 생각한다. 나의 체력과 자세와 자기 관리도 프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2-3번은 어떻게든 운동을 가려고 한다. 


하루를 돌아보면 은근히 버려지는 시간들이 있다. 학교를 다녀오서 저녁 먹기 전까지 1시간. 와이프에게 양해를 구하고 운동을 간다. 운동에 가서도 다녀와서도 설거지를 하면서 내가 보고 싶은 콘텐츠를 소비한다. 행동과학에서는 이런 것을 temptation bundling이라고 한다. 하기 싫은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같이 묶어서 하면 더 쉽게 느껴진다는. 러닝 머신을 달릴 때 넷플릭스를 보다 보면 내가 운동을 하러 가고 싶은 건지 넷플릭스를 눈치 안 보고 보고 싶은 건지 헛갈리다 그곳에 가있는 당신을 발견할 게다. 


내가 작년에 한국에 가서 여의도 호텔에서 머물며 새벽 6시에 호텔짐에 갔는데 과장 없이 50명 넘는 사람들이 빡빡하게 운동을 하고 있었고, 대부분 40-50대 이상의 회사임원 같은 분들이셨다. 그때 다시 깨달았다. 운동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고, 체력과 기운의 관리는 프로의 조건 중에 하나기도 하다는. 내 에너지가 건강해야 주변도 변화시키고 리드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3. 기대를 낮춘다. 나는 다 잘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게 또 그렇게 중요하다. 어느 정도 요리가 끝났으면 빨리 손님에게 서빙하는 게 중요한 요리사처럼. 완벽함을 위해 서비스를 딜레이 할 수 없다. 나는 미쉘린 스타쉐프가 아니라 김밥천국 주방장과 더 가까운 것 같으니까. 수업에 들어가며 읽어가는 논문도 숭숭 읽으면서 그래 이 정도면 괜찮다 하고 덮는다. 수업시간에 내야 하는 페이퍼도 그래 이 정도면 쪽팔리지는 않을 거야 하면 집착하지 않고 바로 제출해 버린다. 어느 정도 생산했으면 바로 다음단계로 던진다. 일처리도 그렇다. 끙끙 내가 가지고 있다가 마지막에 보스한테 보내는 게 아니라 생각나면 바로 포인트를 던져서 확인받고 일을 나눠서 진행한다. 그러면 큰 일을 만들어내는 것도 쉬어 가면서 할 수 있는 느낌이다. 


무엇보다 내 제한된 시간에 결과물을 만들고 던지다 보면 그 결과에 연연할 시간도 없이 다른 결과물들을 던지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박사 논문 프로포절을 준비하는 지금 많은 부담이 들지만.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너는 박사 논문을 제시간에 제출만 하면 그게 최고의 승리야. 세상을 바꿀 논문은 나중에 졸업하고 일하면서 풀어내도 늦지 않으니 take it easy라고 나에게 말하곤 한다. 


운동도 그렇다. 몸을 키우는 게 목표가 아니라 넷플릭스 보러 가서 스트레스 푸는 느낌으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골프도 치러 나가서 릴랙스 하는데 목적을 두지 잘 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게 그래서 약간 적당히만 넓게 하는 것 같은 찜찜함이 있지만. 나의 삶에 기대를 높이면 그건 모두 내가 스트레스로 감당해야 하기 때문에 남들과 비교하기 힘든 이 미국의 삶에서 나를 조금 쉬게 해 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빠의 역할도 그렇다. 내가 이나를 거꾸로 매달아서 스쿼트를 하는 이유를 이나는 모를 거다. 이안이가 왜 아빠가 도서관에 데려가는지. 내가 왜 우노카드를 하면 그렇게 져주는지. 미안하다 얘들아. 나는 놀아주며 운동하고 있었고, 도서관에 데려가서 너 책 볼 동안 숙제했어. 그리고 빨리 져서 게임을 끝내고 싶었어 너도 자고 나도 공부해야지. 그래도 너네랑 같이 있었다. 이 정도로 좀 봐주라 하면서. 


4. 삶의 중심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있다. 


나의 삶의 중심은 하버드가 아니다. 박사도 당연히 아니고. 하버드에서 박사는 나에게 부차적인 세상적 역할이고, 사실 보스턴은 나에게 바울이 광야에서 보낸 3년의 시간과도 같은 단련의 장이다. 신앙적으로 더 좋은 훈련을 하기 위해 내려놓고 온 유엔 여권, 같지 않은 특권들. 그런 것들을 깨끗이 씻어내고 삶의 목적을 다시 정립하는 그런 자리 말이다. 


그래서 나는 교회에서 청년들을 섬기며 매주 금요일 찬양집회가 끝나고 아이들과 성경말씀을 나누고, 교회 새신자반에서 새로 온 교우들을 환영하고, 새벽을 기도로 시작하려고 하고, 주중에 남자 집사들끼리 모여서 성경공부를 한다. 이 부분이 나의 삶의 중심이다. 내 삶의 목적이기도 하고. 


세상을 살아가지만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사는 크리스천의 삶을 살아가며, 세상적으로는 부족하고, 빡빡하고, 이해가 얼핏 안 되는 삶을 살아가지만, 나의 40대는 그 어느 때보다 감사함으로, 평안으로, 축복으로 채워지는 삶을 발견한다. 여기 올 때 걱정했던 재정문제도 모자라지 않게, 넘치지도 않게 부어지는 은혜를 경험하고, 아내와 같이 청년들을 섬기며 섬김의 축복도 누리고 있다. 하나님과 그 어느 때보다 가깝게 지내며, 성경을 읽는 재미를 처음 느꼈다. 평생 크리스천으로 살아왔지만, 부끄럽지만 그렇다. 


어찌 보면 이 빡빡한 삶을 버텨내는 힘도 광야에서 부어주시는 축복의 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더욱 이런 마음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삶의 능력을. 당신의 삶에도 그런 명확한 중심을 발견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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