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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Jan 30. 2024

거기, 눈을 심어라

M. 리오나 고댕 - 반비





 5년 전 눈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눈에 겸자를 끼우고 누워 마취를 하고, 일식 때도 차마 제대로 올려다보지 못했던 커다란 백일을 닮은 수술용 전구가 내 눈을 비추는 동안 겸자로 인해 강제로 개안된 눈은 한 번도 내 의지대로 깜박이지 못하고 그 빛을 온전히 다 이겨내야만 했다. 눈을 깜박일 수 없다는 일이 이렇게 무서운 일인지 처음 깨달았다. 눈꺼풀의 소중함을 제대로 경험한 나는 연주회 때 말고는 눈화장도 피한다.


 메스를 눈동자에 대자(이런 장면은 미션 임파서블에서나 나올 줄 알았는데, 내 눈에 일어나다니!) 순식간에 붉게 번진 시야는 처음으로 색에 대한 순수한 공포를 불러일으켰고, 수술 후 즐겨 입던 붉은 계열의 옷들은 내 옷장에서 치워졌다. 2시간 남짓한 수술 시간 동안 나는 눈멂을 경험했다. 하얗게 바랜 시야는 눈동자 위를 스치듯 움직이는 칼날의 회색 궤적만이 인식할 수 있는 전부였고 그 짧은 시간이 남긴 두통의 후유증은 1주일 넘게 지속되었기에 시각이란 오감 중 제1번의 감각에 대해 예민한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자신의 자서전   <눈멂>에서 이렇게 말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 잠자는 데 익숙한 나로서는 이 안개의 세계에서 자야 한다는 게 오랫동안 괴로웠다. 파르라니 희미하게 빛나는, 또는 푸르스름한 안갯속 세계, 이것이 맹인의 세계이다.



 
 푸르스름한 안개의 세상에서 살았지만, 그는 위대한 저서들을 남겼고 죽는 날까지 자신이 노래하고 기록하는 것들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는 시각장애란 엄청난 핸디캡을 이겨낸 영웅이고, 그런 행동은 마땅히 칭송받아야 하는 인간의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이기에 지금도 그의 저서와 어록들이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시작장애인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견들로 인해 활동한 내용에 대해 오도되고 가려지는 경우들도 발생한다. 특히나  헬렌켈러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많은 이들이 설리번 선생과의 일화를 이야기하면서 장애를 이겨낸 여성의 표본으로 꼽는다. 하지만 그녀가 목소리를 냈던 <내가 사는 세계>란 책 속 우리의 세계의 부조리함을 꼬집고 성토하는 내용에 대한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세계를 인식하고 바라보는 방식들이 그들이 갖고 있는 장애에 가려져 등한시되고 있었다는 점은 다소 놀랍다.








 이런 점들을 작가 M. 리오나 고댕은 <거기 눈을 심어라>라는 책에서 17개의 챕터를 통해 다양한 장르에서 우리들의 시각에 의존하는 낡은 시선을 유려하게 꼬집고 있다. 어린 나이에 "망막이영양증"이라는 질환으로 눈의 중심부부터 시력을 서서히 잃어가기 시작한 작가가 자라며 자신이 겪었던 개인사와 함께 세계사 속 다양한 맹인 예술가들의 저서와 활동 등을 이야기하며 그들을 바라보는 동시대인들의 시각의 문제점 혹은 한계를 밝히며 보이는 것 이면의 세상에 대해 바라보아야 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내용만 보면 다소 딱딱할 것 같지만, 그녀의 박식함이 만들어 내는 다양한 주제들과 역사적 사료에 대한 고찰은 읽는 이에게 지식의 폭발적 확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그럴수록 더욱 너, 하늘의 빛이여,

마음속에 빛나고, 마음의 능력 전부를

비춰라, 거기 눈을 심고, 모든 안개를

거기에서 씻어 걷어내라,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내가 보고서 말할 수 있게

  
                                - 밀턴의 실낙원 중에서





 밀턴의 실낙원에서 제목을 따 온 이 책의 다양한 챕터 중 5번의 챕터가 정말 흥미로웠다. 근대 철학과 과학에 있어 바라봄에 대한 사고의 혁신을 가져온 데카르트는


"우리 생활의 관리는 모두 감각에 의존한다. 그리고 감각 중에서도 시각이 가장 포괄적이고 고상하기 때문에, 두말할 것도 없이 시각의 힘을 증대해 주는 발명품은 있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이다."



라고 말했는데 그가 소의 안구를 관찰한 끝에 망막 이미지가 위와 아래, 좌우가 뒤집혀 있다는 점을 발견해 낸다. 당시 과학자들이 이런 우리 신체구조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세상의 사물을 인식할 때 왜 거꾸로 보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과학자들이 엄청난 의구심을 품었다고 한다.


 데카르트가 이런 일련의 과학적 사건들을 통해 우리 눈이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제대로 '보지'못하며 실제로 보는 것은 '마음(인간이 사고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한다. 귀납적 방법론을 제시한 베이컨이 "보이지 않던 것을 보고, 또는 더 멀리 보고, 또는 더 정확히, 뚜렷하게 보기 위한 것"이라며 과학적 시각 도구의 필요성을 설파하는데 어쩌면 이 말은 인간의 시각 중심주의 사고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시각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찰로 얻어낸 결론이 아닐까 한다.









 볾, 멂. 동사가 명사화되어 이분된 세상에서 볾의 영역에서 바라보는 내 시야에 담기는 세상을 떠올려 본다. 책상 왼편에 쌓여있는 여러 권의 책들. 아무 때나 꺼내 읽을 수 있는 다양한 책들이 주는 위로와 위안. 그리고 거기에서 얻어내는 지식들이 채워주는 마음 조각들에 편견은 없는지, 제대로 바로 보고 듣고 살아가고 있는지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된다.


 마지막 챕터 속 작가는 어슐러 K. 르 귄의 <왼손의 어둠>을 인용한다.





 빛은 어둠의 왼손이고
 어둠은 빛의 오른손이네.
 둘이 하나이고, 삶과 죽음은
 케머 안에 연인처럼 함께 누워 있네.
 서로 맞잡은 손처럼,
 끝과 길처럼.







 고정된 양극단의 두 존재를 각 개인의 삶의 주기에 따라 주기적으로 성별이 바뀌는 윈터 행성의 인간의 특성을 비유한 소설 속 저 문구를 인용한 작가의 재치에 놀라게 된다. 그들의 눈멂이 생의 주기에 일어난 어떤 특질적 변화에 따른 것이므로 누구에게든 찾아올 수 있는 변화임을 고려해 본다면 이분의 세상은 하나로 합쳐진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해야 할 주제를 갖는다는 걸 깨닫게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시각 중심주의의 사고에서 벗어나 이면의 세상을 톺아보며 귀 기울이기. 이것만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중요한 방법임을 다양한 챕터에서 작가는 이야기한다. 하나의 사건에 대해 맹목이 되어버리기 일쑤인 우리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떠올려 보게 되는 소중한 순간이다. 매일 그녀의 눈 안에 빛의 물결이 가장 사랑스럽게 일렁이는 시간대에 만나 같이 그 순간을 누리며 이야기 나누고 싶을 만큼 소중한 작가의 책, <거기 눈을 심어라>. 책을 펼친 당신의 마음에는 어떤 챕터가 가장 와닿을지 궁금해진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스티비 원더 : Isn't she lovely













#거기눈을심어라

#내눈은정상인지

#이분의세상을넘어

#대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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