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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Jan 23. 2024

겨울을 지나가다

조해진

 



 그가 사라졌다. 새벽에 보내온 문자를 아침에서야 보고 답을 했지만 오후 늦도록 답장이 오지 않는다. 장난스러운 문자들로 하루를 틈틈이 전하던 그였기에 침묵이 불안하다. 요 근래 더 위중해진 형의 병환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기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머릿속을 오간다. 형을 모시고 병원에 간 건 아닌지, 직접 가서 살피느라 분주한건 아닌지 전화도 받지 않아 걱정이 되던 날. 수많은 가정 중에 저녁이 돼서야 들려온 소식에 전화기를 떨어뜨렸다.


 내가 생각한 어떤 가정에도 그에 대한 염려는 없었. 답지에도 없던 그의 갑작스러운 부재, 원인이 심장마비였다고 한다. 장례식장에서 자세한 사인을 전해 듣고는 그만 허탈해 주저앉고 말았다. 심장만큼은 태양 같다며 자랑하던 그가 우리 곁을 떠난 이유가 갑작스레 멈춰 버린 심장 때문이라니.










 존재의 부재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는 사람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일상 속 갑작스럽게 단절된 관계라면 적어도 상대방이 정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며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으로 더는 들을 수 없는 소식이어도 덤덤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살다가 한 번은 만나겠지라는 기대감으로 이겨낼 수 있을 단절의 시간들이기에. 그러나 생의 부재는 남겨진 이의 마음 한구석  공간에서 울려오는 바람소리조차 결이 다르다. 불러도 대답이 없는 긴 침묵으로 인해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는 이의 마음은 버겁고 허랑 하고 끝내는 무너져 내릴 수도 있는 껍데기만을 붙들어 놓은 빈 가죽주머니와 같다.



 죽음이 가져온 일방적인 관계의 단절을 두고 남겨진 이의 일상 회복을 위해 망자가 있던 자리를 깨끗하게 되도록 빨리 지워내는 일이 최선이라고 설득해 온 것은 아닐까? 입던 옷을 태우고, 즐겨 쓰던 것들을 버리고, 방을 없애고, 책을 버리고, 생전에 하던 유언 한 조각 기억하다 할 수 없다면 기억 깊이 묻어두는 슬픔의 방어를 최선으로 알려주고 시행하라 이른다. 그러기에 덜어내지 못한 슬픔은 시간이 지날수록 안으로 곪아 어느 날, 어느 특정 시간, 장소, 음악 등등의 아주 작은 기억의 바늘에도 순식간에 터져 나와 보통의 하루를 무너뜨리고 마는 두려운 존재가 된다. 슬픔의 무게가 나를 잠식해 더 낮은 바닥을 향해 엎드려 울게 만드는 밤이 오면 망자에 대한 좋은 기억들보다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그의 부재에 대해서만 원망을 하게 되는 것도 찔린 틈으로 비어져 나온 곪아버린 슬픔 때문이다.








 조해진 작가의 <겨울을 지나가다>의 마지막 장을 덮고 가만히 책 위에 이마를 얹는다. 서늘하고 딱딱한 양장의 표지에 가득 채워진 분홍빛 색들이 이마로 옮겨온다. 빛이 옮겨오는 과정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표지의 밝은 색감이 좋다. 체온으로 데워진 책 속 인물들이 내 눈앞에서 움직인다.



 소설은 정연의 엄마가 투병 중인 장면으로 시작된다. 완쾌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는 환자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춥다, 정연아. 너무 추워."로 시작되는 엄마의 통증, 진통제로 간신히 잠재운 통증의 끝에서 혼미해진 정연의 엄마는 자신의 엄마를 부르 잠꼬대처럼 흐느낀다. 그 소리에 발길이 붙들린 정연이 침대를 바라본다.



 2달 여의 본격적인 병간호에 지쳐버린 차, 엄마 몰래 마신 술기운이 올라오던 정연은 자신의 눈앞에서 점점 작아져만가는 엄마를 보며

'그녀를 전율하게 한 감각은 무엇인지, 순도 높은 행복을 느낀 날들은 생애에서 며칠인 되는지, 배를 앓던 날의 베개 너머 꿈의 입구는 어떤 세상을 열어주었는지'등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영원히 봉인되어버릴 기억의 파일과 함께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다.

   



 
한 사람의 부재로 쌓여가는 마음이 집이 된다면 그 집의 내부는 너무도 많은 방과 복잡한 복도와 수많은 계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리라. 수납공간마다 물건들이 가득하고 물건들 사이 거울은 폐허의 땅을 형상화한 것 같은 먼지로 얼룩진 곳, 암담하도록 캄캄한 곳과 폭력적일 만큼 환한 곳이 섞여 있고 창 밖의 풍경엔 낮과 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하는 그런 집......

          - 겨울을 지나가다, 조해진 p.20


          


 날 이후 혼수상태에 빠진 엄마 마침내 세상을 떠나고, 발인을 마친 그녀들은 엄마의 골분을 나누어 하나는 동생인 미연의 집 사기그릇에 또 하나는 엄마가 살던 집 모과나무 아래 묻고 장례를 마친다. 소설은 그 뒤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영화 편집일을 하던 큰 딸 연이 엄마 생의 마지막 2달을 함께 한 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끈질기게 추격해 온 죽음의 올무에 갇혀 실체화된 엄마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어떻게 다독이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진행을 한다.









 엄마가 키우던 개 정미를 보며 절연에 대해 알지 못해 대문이 열릴 때마다 엄마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간절한 눈빛이 부럽다 말하는 그녀, 엄마의 옷과 신발을 신고 엄마가 운영하던 정미식당에서 칼국수를 정성껏 만들어 밥을 먹는 정연의 모습을 통해 슬픔의 구렁에서 느릿하게 빠져나오는 존재가 마치 나인 듯 나도 모르게 응원을  책장을 넘긴다. 슬픔이 만든 고치 속에서 영원히 잠드는 이들도 있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로 인해 이전과는 달라진 세상의 온도를 견디지 못하는 많은 이들을 작가는 조용한 목소리로 위로한다.

  

 



 정미는 여전히 엄마를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긴, 정미는 지금도 가끔씩 새벽에 돌연 깨어나 집 안 곳곳에 코를 들이밀며 돌아다니곤 했다. 정미는 엄마와의 숨바꼭질이 이어지고 있으며 자신은 언제까지라도 술래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고, 나는 그것이 정미 몫의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  p. 70






 죽은 엄마가 키우던 개 정미의 행동을 통해 정연은 부재를 인정하는 법을 배운다. 어떤 말도 남기지 못하고 떠나버린 엄마의 듣지 못한 유언 대신, 엄마가 꾸려오던 일상을 지속하며 남겨진 존재들을 살피며 살아가는 일, 그리고 엄마의 칼국수를 먹으러 오던 영준의 슬픔을 같이 목도하며 위로하는 일을 통해 정연은 슬픔으로 만들었던 자신이 둘러쓴 고치를 벗고 세상으로 걸어 나온다. 담백한 문장들이 때로는 슴벅, 가슴에 생채기를 내 곪아버린 상처를 비워내게 만들고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 소독을 해준다. 이 책을 추천한 김혼비 에세이스트가 쓴 책의 서문에 실린 글에 나오던 그녀의 추천 이유, 조해진 작가의 소설이 왜 빛으로 가득한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소설을 통해, 그가 세상에서 사라진 뒤 멈춰버렸던 나의 시계가 다시 작동하기 시작한다. 나날의 일상은 쉼 없이, 부지런히 보내왔지만 원고지 위를 매끄럽게 오가던 언어들과 막 직조한 한 편의 시를 서로에게 보여주며 웃을 때의 온기. 삶에 대해, 존재에 대해 물으며 살아가는 이유를 이야기할 때의 따뜻함이 사라져 걷어낼 수 없는 농밀한 어둠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던 내면의 내가 용기를 내어 부재를 인정하며 다시 일어선다.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였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 p.133















* 같이 듣고 싶은 곡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 비창

- 정명훈 지휘

https://youtu.be/65nvqmVhZ3g?si=Gl907ANen8SqVTY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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