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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Jan 16. 2024

파친코





 유튜브의 신묘한 알고리즘이 열일할 때가 있습니다.  2019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담에서 "이민진"이라는 작가분이  위트 있고 매력적인 화법으로 자신에게 던져지는 질문들에 답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죠. 세바시 특강 강연들을 듣던 중 추천받은 영상이었어요. 글쓰기의 이유,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연관 주제로 영상이 나온 것 같더군요. 영상 속 파친코의 저자 이민진 교수의 모습은 자신감 있는 태도와 함께 시기적절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어 주는 정말 매력적이었습니다. 영상을 본 뒤  그녀가 쓴 책 소설 파친코를 바로 문했죠.


 다른 나라에서 교포 2세 혹은 3세로 살아가는 이들에 대해 생각할 때가 한 번씩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동생 부인이 태국사람이기에 혼혈로 태어난 우리 조카가 있어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국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며 그들이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 내에서 어떤 입지를 갖고 살아가는지에 대해서 살펴보며 훗날 조카에게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 말해주고 싶어서 찾아보곤 하죠. 검색을 통해 만나게 되는 여러 인물들 가령  주디 주, 유미 호건, 이민진 등 성공한 이들에 대해 그들과 우리나라와의 연관성을 널리 알리며 호들갑스럽게 추켜세우는 기사나 영상을 보면 마음 뿌듯해집니다. 그러나 그들과는 반대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더 많은 이들의 삶들은 과연 어 가만히 생각에 잠기죠. 그리고 제 조카는 어떤 삶을 살아갈까란 혼자만의 청사진도 그려보게 되구요.















역사가 우리를 망쳐 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강렬한 문구로 소설이 시작됩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았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어떻게?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게 만들죠.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한 4대에 걸친 방대한 가족사를 담은 소설입니다. 그들의 삶을 우리가 사는 지금보다 더 강력하게 지배하던 '시대' 또는 '역사'라는 물결 위 인간의 의지라는 조종키가 말을 듣지 않는 인생이란 작은 배에 오른 사람들. 자신들을 어디로 데리고 가는지도 모른 채 그렇게 묵묵히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했던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순응 혹은 강렬한 저항만이 전부였던 시대의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을 시작하는 문구가 저렇게 도발적인 말이라니 그 간극이 주는 신선함에 책을 놓을 수가 없었죠.



 역사는 멀리서 바라보면 거대한 물결로 소리 없이 흐르고 있죠. 가까이 들여다보면 강물을 이루고 있는 입자들 같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이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갖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걸 보면 가끔 전율이 일어. 음, 분노에 가까운 전율일 때가 더 많아 문제지만요.
박경리 소설 "토지"와 조정래의 "한강" 또는 "태백산맥" 등을 읽을 때도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지는 삶의 바통의 무게를 가늠해 볼 때가 있습니다. 불에 달궈진 인장이 되어 한 사람의 삶을 낙인찍듯 규정해 버리거나 그가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정상적인 공간 속으로 들어오는 것조차 못하게 문을 봉해버리는 것들을 보며 분노하게 되죠. (숱하게 쳤어요. 베갯보가 제 주먹에 구멍이 날 뻔했죠.)


 이번에 만난 파친코는 식민지 시대에 이민 온 조선계 일본 사람들이나 그들의 후손을 일컫는 '자이니치Zainichi'들에 대한 섬세한 기록입니다. 작가는 예일 대학 재학시절 마스터 티라 하는 예일대학의 초청 강연 시리즈 중 하나인 역사 강의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네요. 친구와 자신, 그리고 강연자와 진행자 총 4명밖에 듣지 않았던 강의가 그녀의 인생을 건 소설의 시작이 되어습니다. 이런 글감 혹은 주제를 만난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일까요?


 당시 강연을 한 미국계 선교사가 조선계라는 이유로 졸업앨범을 훼손당한 중학생 남학생이 급우들의 끈질긴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작가는 지금까지도 그 일이 바로 아침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생각이 난다고 해요. 급우들이 소년에게 했던 잔인한 말들, 그 말들이 하루이틀 있었던 일이 아닌 암묵적으로 오래도록 자이니치들에게 계속되었다는 것이 작가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죠. 고등학교 역사시간에 일본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분노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이 우물에 독을 탔다란 말을 퍼뜨리면서 집단 대학살을 시행했다 배웠습니다. 그 사실을 알려주시던 역사선생님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생각이 납니다. 하나하나 나열되던 잔인하고 섬뜩한 그들의 분노의 결과를 생생히 전해 들었을 때의 충격이 다시 떠올랐죠. 집필 동기에 대한 작가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요.



 그렇게 그녀 삶의 한 순간에 새겨진 이 이야기를 시점으로 장장 30년이란 시간 동안 다양한 인터뷰를 통해 자료를 수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인물들을 만들어내죠. 생동감 있고 다양한 성격을 가진, 정말 그때를 살아낸 인물들을요. 몇 해 전 할리우드 내 굉장히 유명한 기획자가 이 소설을 영화화하려다 실패했대요. 미국 내에서 아시안들에게 누가 관심을 갖겠느냐며 코웃음을 쳤다던데 애플 TV에서 이민호 주연의 8부작 드라마로 만들어졌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윤여정 씨도 캐스팅하면서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드라마로 탄생했어요. 수준 높은 영상미, 색감이 좋더라구요. 이런 일이 가능한 건 세계에서 우리나라의 입지가 높아지고 있고,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왠지 어깨에 막 힘이 들어가는 이 기분은 뭘까?(다만... 주연은 아쉬워요. 소설을 읽었기에 그 역할에 어울리는 이를 찾는다면, 조진웅 씨가 더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거든요. 하정우씨나요. 아... 이렇게 제 개인적인 선호도를 들키나요오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제목에 대해 생각에 잠깁니다. 누군가를 향한, 그들이 한 잘못에 대한 날 선 분노로 삶을 망가뜨리거나 도망가지 않고 당당히 자신의 삶을 일궈낸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겨요. 등장인물들을 하나씩 떠올려 봅니다. 분노가 삶의 추진연료가 될 수는 있지만, 오래도록 달리게 만드는 건 가족에 대한,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오늘을 이겨내고 내일을 꿈꾸게 만드는 가장 귀한 동력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 꿈이 꿈꾸는 자의 세상을 더 풍족하고 온기 있는 공간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면 좋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꿈을 꾸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경우도 있죠.


 재일 교포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투명하고 강력한 경계선이 드리워져 그들이 세상이 나오는 것을 번번이 막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일본 내 많은 학생들이 가기를 희망한다는 와세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결국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삶을 결정해 버린 소설 속 인물 노아, 그리고 학교 내 괴롭힘에 맞서 폭력으로 대응하다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나와 파친코 사업에 뛰어든 노아의 동생 모자수를 보면 그들이 삶을 선택할 수 있는 다양성이 얼마나 협소했는지에 대해 공감하게 됩니다. 소설 속에서 모자수가 파친코 일을 배우기 시작할 때 그에게 일을 가르쳐 준 사장 고로 씨가 아침마다 파친코 기계를 점검하는 장면이 니다.


 다양한 장애물들을 피해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구슬의 방향성을 하루 내 연구하다 돌아간 이들의 예측을 보기 좋게 뒤엎는 고로 씨의 섬세한 기계 리터칭 작업이 파친코 사업장의 흥망을 좌우하는 핵심이죠. 촘촘한 핀 사이 예측하지 못하는 장애물들 사이를  지나는 쇠구슬. 총구를 떠난 총알처럼 쏜살같이 직진하지만 마지막 종착점은 고로 씨만이 아는 만들어진 확률의 한 점이죠.

아폴론을 피해 달아난 다프네처럼 잡히지 않는 단 한 번의 운을 위해 모여드는 이들. 그들을 위한 고로 씨의 망치질이 제게는 신의 손 끝에 걸린 꼭두각시 인형들을 떠올리게 되더라구요.






자이니치라 불리는 우리 국민들의
디아스포라(Diaspora-신앙적, 경제적, 정치적 이유 등으로 인해 고향을 떠나 타지로 이동하는 현상)를 소설 속에서 만나면서 청산되지 않은 우리 역사 속 부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부채가 있음에도 침묵하고 있는 이들에 대해서도요. 끝까지 전범에 대한 추적을 멈추지 않는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보면 더 많이 화가 나죠. 몇 해 전 한 웹툰작가가 독립군들과 친일파의 현재 생활수준에 대한 기묘하고 흥미로운 발언을 한 것부터, 일본군 위안부는 공인된 매춘부였다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말까지. 제대로 부채를 청산하지 않고 권력을 다시 잡은 이들이 메우고 덮기 급급했던 우리나라 역사는 뭉개진 회반죽이 덕지덕지 발라진 벽지 니다.








 소설 파친코는 그 두터운 회반죽에 예리한 틈을 만들어 걷어내 곰팡내 나는 속살을 보여줍니다.  멍들고 상처 난 이들의 삶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내 국가 대신 위로해 주고 있. 지난한 삶을 살아낸 당신들을 기억하며 그 삶에 경이를 표하고 있는 소설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그들의 삶을 잊고 있던 우리들에게 지금이라도 제대로 바라보면 어떻겠느냐 가만히 건네는 작가의 목소리를 마음에 새겨보는 시간. 참 좋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느끼실지 궁금하네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소향 : 홀로아리랑















#우리동네

#눈오는밤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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