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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Jan 09. 2024

지복의 성자






 고통받는 도시에서
 
             비는 어떤 언어로 내리는가?

                                  - 파블로 네루다











 두 개의 성을 동시에 갖고 태어나 "히즈라"라는 인도에서 제3의 종의 인간으로 구분된 안줌이라 부르는 출생신고 시의 성별은 남자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칭기즈칸의 후예라 자부하며 살아가던 무슬림인 아버지 하킴이 그토록 고대하던 아들로 태어났으나 여성의 상징 또한 또렷하게 갖추고 태어나 엄마가 필사적으로 그 사실을 감추려 했던 아이입니다.



 아들의 성인식 관문인 할례를 앞두고 더 이상 이 사실을 감출 수 없게 되자 남편에게 아들의 신체적 특징을 알리는데, 아버지 하킴은 이 아이의 여아 성징을 없애 남성으로 살게 하려고 하죠. 하지만 어릴 적부터 보기 드문 미성으로 노래를 하고, 그 노랫소리에 많은 이들이 홀린 채 듣기도 했던 안 줌이었기에 미에 대한 호기심과 경애의 감정을 버리고 보통의 자신 또래 남자들처럼 살라는 아버지의 명령은 그에게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성인식이 얼마 남지 않은 때 안줌은 시장에서 만난 여장을 한 히즈라를 보고 한눈에 반해 그녀(?)가 사는 콰브가라는 히즈라들의 세계에 들어가 버립니다.


 감추라고 강요받던 자신의 또 다른 성, 여성으로 살기로 마음먹은 안줌은 돌출된 성기를 수술하고 여성 호르몬제를 복용하며 새로운 날들을 꿈꿉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사원 계단에 버려진 어린 여자아이 자이나브를 데려와 키우게 되며 "엄마"라는 존재가 되어 아이를 돌보면자신이 바라던 여성성의 완성을 이루게 되었죠. 애면글면 키우는 아이가 이유 없이 앓자 신께 아이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드리러 사원에 가는데, 2002년 극우 힌두교도가 수천 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구자라트 폭동을 겪게 됩니다. 아름답게 꾸미고 노래하는 것으로 외신 기자들의 스포트라이트도 받던 그녀는 폭동으로 인해 포로로 잡혀있다 돌아온 뒤 모든 것이 변해버립니다. 끊임없이 잠을 자고, 글만 읽고, 말하는 걸 잃어버린채 살아가죠. 그런 그녀에게 놀란 어린 딸 자이나브까지 자신을 멀리하자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안줌은 결국 콰브가를 떠나 공동묘지, 오래전 곁을 떠난 자신의 아버지 무덤 옆에 조그만 숙소를 만들고 은둔하게 되죠.


 여기 또 한 명의 여인 틸로타마가 있습니다. 지역학교 교장으로 명성이 드높은 어머니의 양녀(공식적 기록은 양녀, 실제로는 사생아)로 자란 그녀는 델리대학에서 무사, 나가, 비플랍이라는 3명의 남자들과 대학 연극 연습을 통해 우정을 나누게 되죠. 그러다 대학 졸업 후 헤어지게 된 그들은 1996년 분리독립운동으로 아비규환이 된 카슈미르에서 다시 만납니다.


 

 아내와 어린 딸 미스 제빈을 정부군이 쏜 총에 잃은 무사가 틸로를 불렀죠. 끊임없이 읽고 쓰며 기록하는 그녀에게 자신에게 있던 일들을 알린 무사로 인해 위기에 처한 틸로가 언론인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나가와 인도 정보국 소속의 고위 공무원으로 살아가는 비플랍에게 도움을 청하며 이들의 운명은 다시 얽혀버립니다. 정부군에 의해 쫓기던 무사와의 인연으로 그들의 삼엄한 감시를 받게 된 그녀는 고위 상류층인 나가와 결혼을 하게 되고, 밀랍인형처럼, 또는 부유하는 이끼처럼 그렇게 15년을 살아가다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한 엄마의 마지막 순간들을 지키며 마침내 자신에 대한 각성을 하죠.


 서로 다른 세상에서 살아오던 그녀들. 다양한 인도의 시위자들이 모여 시위를 벌이는 잔타르만타르 광장에서 버려진 한 아이 덕분에 서로의 삶이 잇닿습니다. 마치 멀리서부터 흘러오던 강이 만난다는 두물머리가 된 안줌의 공동묘지 안 "잔나트게스트하우스"에서 고아원에 버려질 뻔한 아이를 데려 온 틸로와 그녀를 지키기 위한 안줌의 새로운 시간들, 여기까지가 이야기의 큰 줄기입니다.


 두 여인의 삶이 하나로 이어지기까지 펼쳐지는 정교한 서사의 얼개들과 거기에 붙어있는 잎새 같은 다양한 삶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또렷한지 마지막 장을 덮었는데 제 눈 앞에 아직 어린 우디야가 엄마를 위한 기도를 올리며 내쉰 숨결이 흐르고 있니다.








 1997년 <작은 것들의 신>으로 인도 여성 작가로는 최초로 부커상을 받은, 또 그때 받은 상금과 인세를 "나르마다강 보전운동"을 위해 설립한 단체에 기부해 화제를 모은 "아룬다티 로이"가 무려 20년 만에 내놓은 소설 <지복의 성자>입니다.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태양"을 읽으며 우리와 다른 문화권의 여성들이 어떤 일을 겪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바라보다 참담함에 오래 앓듯 긴 한숨을 쉬었더랬죠.


 이 소설은 더욱 커다란 서사 속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인도라는 나라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해요. 다양한 신이 존재하고, 그 아래 더 많은 인간 종파가 존재하는 이곳. 서로의 종교 전파와 교세 확장이 삶의 최우선의 목표가 되어 총구를 겨누고 있는 분쟁의 지역에서 오발이 아닌 저격으로 쓰러져 가는 무고한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그들을 잃고 힘없던 손에 총을 쥐고 일어서는 이들의 복수라는 끊임없는 반복의 굴레 속에서 남겨진 이들이 이어가는 삶의 무게를 정교하고 아름다운 서사로 기록할 수 있는 작가를 통해 인간성의 회복과 구원이 진정 어디에서 오는지를 시금 깨닫습니다.



 맹목의 믿음이 아닌, 진심으로 우러나온 사랑. 타인에 대한 이해. 그리고 내 것을 내어 베풀 줄 아는 마음. 신에게 올리는 재물이 아닌 이웃을 위해 베풀 수 있는 마음 조각들이 이어 만드는 거처. 안줌의 "잔나트 게스트하우스"에서 진정한 회복을 만났니다.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임시거처에서, 매춘부라는 이유로 장례조차 없이 버려진 여인의 장례식을 올려주며 장례식장이 된 그곳이 없는 이들의 수영장, 동물원, 기도처 등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모하며 많은 이들을 품는 과정을 보았더랬죠.



 인도 공산당 게릴라였던 레바티란 여성이 여섯 명의 경찰에게 윤간을 당해 태어난 아기, 태어나자마자 머리에 총구가 닿았던 아이 "우다야(일출이란 뜻)"를 키우며 드디어 진정한 엄마가 된 안줌과, 잃어버린 아기를 이렇게라도 찾게 된 틸로. 두 여성이 만들어 낸 견고한 모성의 성벽이 세상 어떤 이유로도 부당하게 이들을 헤칠 수 없게 굳건히 자리매김니다.


 파블로 네루다가 이야기한 고통받는 도시에 내리는 비의 색깔은 우리의 피부색을 닮았다 말하고 습니다. 관습과 문화에 의해 규정된 색이 아닌, 내게 닿아 흐르는 물빛.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물빛으로 흐릅니다. 먼 나라 타인의 고통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공통된 감정으로 연결이 되자 빗물이 그녀들의 눈물의 색으로 그리고 내 눈물의 색으로 다가니다.

어두운 주제를 다룬다고 읽고 나서 너무 낙담하지 마셔요. 이 책은 더 큰 희망과 내일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녀들이 복구하는 무너져가는 인도의 공동체와 그 속에서 자란 내일의 아이들이 만드는 새날을 그리며 책장을 덮습니다. 지복의 성자, 여러분이 만날 그녀들의 모습은 어떤 색일지 정말 궁금합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고갱 : Voyager





#The Ministry of Utmost Happiness
#지복의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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