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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Dec 26. 2023

아침 그리고 저녁

멜랑코리커들을 위한 위로





매일 수많은 활자를 접합니다. 다양한 문장 기호들과 독자를 배려한 꾸미기 기능까지 첨가된 온라인 저작물들을 읽으며 이렇게 다양한 관심사들로 잇닿은 세상에 대한 흥미가 더욱 커지죠. 손 닿을 거리 어디든 놓여있는 책들과 읽을거리들이 주는 위안이 참 큽니다. 스스로 선택한 고독 속에서 마음을 걸러내는 자정 너머의 시간에 펼치는 책들은 때론 현자의 목소리가 되어, 때로는 질책하는 호된 꾸중의 목소리가 되어 제 마음을 걸러내게 만들죠. 읽고 흩어지는 생각이 되지 않게 브런치북을 통해 기록하고 여러분들과 나누는 일이 즐겁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미지의 분들과 온라인 독서모임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가끔 웃기도 합니다.



이번 책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문학동네-박경희 옮김)입니다. 얼마 전 욘 포세의 노벨상 수상으로 많은 책들이 소개되기 전 공유서재 무소음을 통해 받아 든 책이죠. 세 번을 다시 읽고 이 글을 씁니다. 참 낯설어요. 읽기의 이질감 덕분에 되려 내려놓지 못하고 쉼표를 찾아 계속 읽어가게 되는 묘한 매력의 책입니다. 책을 읽기 전 늘 목차와 옮긴이 혹은 작가의 말 부분을 먼저 훑어봅니다. 다른 문화권의 작품인 경우 작가의 작품들에서 옮긴이는 무엇에 중점을 두고 번역을 했는지 알고 보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묘한 말 맛의 차이가 어떻게 우리에게 전달이 될지 어떤 강세나 포인트로 문맥을 살펴야 하는지를 알려줄 때가 많으니 꼭 읽어봅니다. 특히 노벨상 후보에도 올랐다고 하지만 내게 너무 먼 당신인 욘 포세에 대한 정보도 좀 필요했죠. 낯섦에 대처하는 자기 방어의 제1원칙이죠.










산문이 노래가 되어 흐릅니다. 아주 먼 원시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 듯 설원에 감싸인 작은 오두막 같은 무대에 막이 오르고, 조명이 들어오며 한 아이의 탄생이 보입니다. 산고로 지친 여인과 초조하게 지켜보던 남편, 삼신할멈 같은 산파까지. 탄생이 주는 기쁨과 한 생이 무르익을 과정을 그려보며 마음 벅차올라 어쩔 줄 모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의 부모님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죠. 막 태어난 작은 원숭이(실제 제 엄마는 저를 개구락쥐라고 표현하셨죠.) 같은 존재를 두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지 가만히 상상하게 됩니다.





이제 아이는 추운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혼자가 된다, 마르타와 분리되어, 다른 모든 사람과 분리되어 혼자가 될 것이며, 언제나 혼자일 것이다, 그러고 나서, 모든 것이 지나가, 그의 때가 되면, 스러져 다시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왔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무에서 무로, 그것이 살아가는 과정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새, 물고기, 집, 그릇,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올라이는 생각한다, 인간이 무에서 무 같은, 그런 것을 생각할 수는 있다 해도, 그것만은 아닌 것이, 그 이상의 많은 것이 있다,

(중략)

 그 다른 것이란 무엇인가? 그걸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그건 신의 영혼이 아니겠는가, 모든 것에 내재해 무 이상의 것을 만들어내고, 의미와 색을 부여하는, 그리고 그것이, 올라이는 생각한다, 모든 것에 신의 말씀과 영혼이 내재하는 이유다, 그래, 그렇지,

            - 아침 그리고 저녁, p.16




쉼표만 존재하는 문장 기호 속에서 한 인간의 탄생과 마지막을 만납니다. 한 인물의 일대기라 생각하고 시작한 읽기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있는 이들로 확대가 됩니다. 요한네스라 불리는 저 작은 어린아이가 태어났던 그때처럼 어느 날 아침 홀로 산책을 하며 만나는 모든 풍경들을 우리는 같이 마주하며 두려움과 호기심이 혼재한 시선으로 따라나섭니다. 알 수 없는 나의 마지막을 미리 겪어보는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죠. 요한네스의 삶의 궤적들은 드문드문 등장하는 주변인들과의 대화 혹은 본인의 독백 속에서 미루어 짐작하게 되죠. 그의 아버지가 막 태어난 요한네스를 보며 생각했던 신의 영혼과 말씀이 그에게 어떻게 닿아있는지, 그리고 나에게는 어떻게 다가오는지에 대해 이런 궤적들을 따라 걸으며 계속해서 생각하게 니다.



 책 전체에서 마침표가 찍힌 부분은 열개 남짓, 요한네스가 확신할 수 있는 자신의 사고나 취향 등에 이야기할 때만 동그란 온점이 마침표로 찍히죠. 그 외 비어있는 부분들을 보며 우리가 삶에서 확신할 수 있는 것들이 이렇게나 적다는 사실에 놀라게 됩니다. 작가의 은유가 정말 절묘합니다. 그의 막내딸 싱네가 연락이 되지 않는 아버지를 찾아 허겁지겁 길을 나서던 장면에서 딸을 부르며 다가서던 요한네스와 싱네가 서로 교차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느낀 듯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싱네와 끊임없이 소통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스쳐 지나가는 딸을 보며 망연자실해하는 요한네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삶과 죽음의 미묘한 경계와 접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처에 그리고 어쩌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들로 자리해 있는 생과 사의 순간들 속 우리가 떠올려 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고요하게 되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요한네스의 가장 친한 친구의 페테르가 나옵니다. 서로 머리카락을 잘라주며 오랜 시절 친구로 지내온 이들이죠. 소설 속 페테르가 등장해 요한네스가 던져둔 게망을 건지고, 꽃게를 팔러 시내에도 갔다가 페테르가 좋아하는 안나 페테르센이란 여인에게 선물로 꽃게를 가득 건네주고 오는 등의 일련의 과정이 등장하죠. 그 모든 일이 생생하게 이어지기에 처음 소설을 읽을 때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요한네스와 동일한 시선과 눈빛으로 그의 하루를 경험니다. 막 세상에 던져진 어른아이와 같죠.




 소설 속에서 페테르가 요한네스에게 말하죠.


 몸을 잠시 되돌려 받았어, 자네를 데려올 수 있도록, 페테르가 말한다
 이제 고깃배를 타고 떠나자고, 그가 말한다
 어디로 가는데? 요한네스가 묻는다
 
 아니 자네는 아직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구먼, 페테르가 말한다
목적지가 없나? 요한네스가 말한다
 없네, 우리가 가는 곳은 어떤 장소가 아니야 그래서 이름도 없지, 페테르가 말한다

(중략)

 그래 이제 길에 접어들었네, 페테르가 말한다

그리고 페테르와 그는 그 자신이면서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 모든 것이 하나이며 서로 다르고, 하나이면서  정확히 바로, 그 자신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르면서 차이가 없고 모든 것이 고요하다
      
             - 아침 그리고 저녁, p132 -134






 우리는 사는 동안 끊임없이 느끼는 불안과 외로움, 고독, 삶과 죽음이란 우리를 감싸고 존재하는 추상의 감정들에 대해 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며 살아가죠. 그런 우리들에게 그러한 탐색이 주는 생각의 쉼표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며 살아가라 말해주는 소설,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입니다. 하루의 공허를 덜어내지 못해 허기진 밤이라면 가만히 이 책의 책장을 펼쳐보시길 바랍니다.



 멜랑콜리커(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고민하며, 사후세계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사람)로 불확실한 세계를 살아내며 스며든 우울로 시끄럽고 어지러운 연말연시의 분위기 속에서 작은 섬처럼 고립된 기분이 드는 분들이라면 이 소설이 마음의 작은 온점이 되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지는 삶의 원형을 벗어던질 수 없는 우리들의 불안은 가장 밝고 화려한 날들 속에 찾아들어 그 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만들죠. 이렇게 기뻐해도 되는가, 누려도 되는가, 즐거워해도 좋은가란 질문이 마음 가장 깊은 곳에 피어나며 불안하게 만듭니다. 저만 그런가요?(어쩐지 슬쩍 억울해지는 이 기분은 뭐... 뭘까요?) 신에게도 묻지 못하는 말을 페테르에게 묻던 요한네스가 되어 묻습니다.


 "그곳은 좋은가?"


 그렇다,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멋진 하루를 보내시길 바랍니다. 꼭이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조성진 : 리스트의 위로 3번


https://youtu.be/iWYdl5OkvSk?si=kUBVGZH3uPsLkHY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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