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베리, <전시 조종사> 중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사람들은 침울했지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p.11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p.29
안개가 여기저기 기운 기다란 천 모양으로 내려앉았다. 구불구불한 도로에 차를 돌릴 만한 공간이 없어서 펄롱은 우회전을 해서 샛길로 들어갔다. 그 길로 가다가 또 우회전했더니 길이 더 좁아졌다. 또 한 번 우회전을 해서 전에 지나간 적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은 건초 창고를 지나다가 짧은 목끈을 질질 끌며 돌아다니는 숫염소 한 마리를 보았고 곧이어 조끼를 입은 노인이 길가에 죽은 엉겅퀴를 낫으로 쳐내는 모습이 보였다.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p.54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엇을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p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