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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Dec 05. 2023

숨결이 바람이 될 때







 중학교 2학년 1학기가 시작될 즈음, 나는 자궁암 말기 환자인 이모와 같이 살기 시작했다. 이혼을 하고 혼자 살았던 이모는 더 이상 손 쓸 수 없는 상태로 병원에서조차 자택에서의 치료를 권하는 중이었다. 비싼 입원비를 감당할 여력도 없던 이모는 강력한 진통제를 시간마다 피하주사로 맞아가며 죽음을 기다려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통제를 맞는 간격은 짧아지고 주삿바늘은 꽂힐 곳이 없을 정도로 피부와 뼈 사이의 근육과 지방층은 사라져 갔다. 내가 보이지 않게 치우려 하던 하혈의 흔적들과 구토의 잔여물들을 마주하며 인간의 생명이 이토록 쉽게 꺼질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목도하는 순간들이었다. 



 두려움이 수시로 엄습했다.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내가 마주한 생의 마지막이 똑같이 내게도 찾아올 수 있다는 두려움은 학교 수업에도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며 도서관에 숨어 책만 찾아 읽게 만들었다. 손에 잡히는 무엇이든 읽었다. 책만이 탈출구였고, 상상의 세계에서는 아픈 이모에 대한 걱정이나 직접 주사를 놓을 때의 손끝에서 느껴지는 버석거리는 마른 살갗의 감촉도 주사를 놓은 후에 근육이 뭉칠까 봐 한참을 문질러야 하는 일도 없었다. 그리고 새벽녘 문득 깨어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게 손 끝을 이모의 코 끝에 대어보던 순간의 두려움도 없었다.  



 한 번은 잠결에 일어나 주사를 놓다가 내 손을 찌른 적도 있었다. 살갗을 파고드는 이물감을 나중에야 깨닫고 정신이 번뜩 났지만, 빼낸 주사기를 그대로 이모의 엉덩이에 꽂을 때 혹시 알아챌까 걱정된 나는 아픈 내색도 하지 못했었다. 도서관 책장 한편에는 정말 오래되어 폐기처분을 앞둔 책들을 모아 둔 공간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연처럼 펼쳐든 책에 죽음의 춤이라는 작자 미상의 그림이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해골들과 손을 잡고 열을 지어 춤을 추는 그림이었는데, 그 아래 적힌 글귀가 인상적이었다.

"죽음은 확실하다. 하지만 그 시기만 불확실하다."

 내가 본 책이 어떤 내용이었는지, 줄거리도 기억나지 않지만 그 그림과 글귀만큼은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어쩌면 나는 모든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죽음이란 숙명에 대해 이 글귀를 통해 수긍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2년간의 간호 끝에 이모를 보내드리고 동생과 함께 장례식 첫날 장례식장을 빠져나와 어두운 극장에 들어가 영화를 보다 한참을 울었다. 안에 쌓인 슬픔을 풀어낼 공간이 필요한데, 집까지 가기엔 거리가 멀고 시내 외곽의 장례식장에서 가까웠던 극장을 우리들의 감정해우소로 택했던 것 같다. 세상 달콤한 멜로영화 시드니의 잠 못 드는 밤을 보면서 대성통곡을 하던 우리를 보며 다른 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고통 속에 마지막을 준비하는 이에 대한 이야기, <바람이 숨결이 될 때>란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이란 홍보 문구에 끌렸다. 너무 이른 나이에 이 사람이 죽음과 마주하고 쓴 책이라니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 불청객에게 그는 어떤 말을 했을까 궁금했다. 책 맨 마지막에 실린 그의 가족사진을 먼저 보았다. 거뭇한 피부에 수염이 덥수룩했지만, 안경 너머 보이는 이지적인 눈빛과 맑은 미소의 그의 아내, 그리고 어린 아기의 호기심 가득한 미소까지 모두 눈에 담긴다. 이제는 그 사진 속에 있던 젊은 그는 없을 텐데, 남겨진 그의 가족들은 어떻게 그를 추억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가 자신을 그리워할 이들에게 남긴 추억 혹은 정신적 유산들은 무엇이 있을까?



 주인공 폴 칼라니티는 문학을 전공하던 학생이었다. 그런 그가 의과대학, 그것도 신경외과를 선택하며 호된 수련과정을 거치고 레지던트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던 중에 자신의 몸을 파고든 암을 발견한다. 갑작스러운 체중감소와 식욕부진 등 여러 가지 증상에 검진을 받고, 환자의 입장에서 의사의 진단을 기다리는 그의 모습을 보며 모든 이의 삶을 기습하는 질병의 가차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의사면서 자기 몸을 몰라라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누구보다 치열한 하루를 보내고, 매일 같이 진단을 내리고 수술을 하고, 인간의 뇌를 갈라 종양을 제거하고 그 예후의 좋은 결과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에 자신을 돌보는 시간을 놓친 폴. 그와 같은 이들이 세상에 참 많다. 그리고 그렇게 놓쳐버린 회복의 시기 앞에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를 두고 대처하는 자세들은 저마다 다를 텐데, 나는 폴의 의연함과 담대함에 가만히 존경을 표하며 이 책을 읽었다.





 애리조나 주 사막에서 방울뱀을 베갯보로 포획해 뱀이라면 질색을 하는 엄마를 위해 등굣길에 멀리 갖다 버리던 어린 시절부터 영국 유학시절의 장난기 가득한 엉뚱한 학생이 자라 자신의 숙명 같은 진로를 발견해 매진해 가며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는 장면들이 잔잔하게 그려진다. 나는 그의 생의 시간들을 따라 읽으며 앞으로 그에게 내정된 그는 몰랐을 죽음과 목도하는 그날의 기록까지를 순식간에 읽어 내렸다. 문학에 조예가 깊기에 글이 참 아름답다. 그리고 지나치게 감정적이지도 않아 더욱 몰입할 수 있는 그의 목소리가 내 귀에 직접 들리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어느 날 태어났고, 어느 날 죽을 거요. 같은 날, 같은 순간에, 여자들은 무덤에 걸터앉아 아기를 낳고, 빛은 잠깐 반짝이고, 그러고 나면 다시 밤이 오지.

                                     - 사뮈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중 포조의 대사




 산부인과 레지던트 시절, 자신이 제왕절개 수술로 받은 쌍둥이 아이들의 죽음을 보며 그가 적은 글귀이다.



뇌는 우리가 겪는 세상의 경험을 중재하기 때문에, 신경성 질환에 걸린 환자와 그 가족은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계속 살아갈 만큼 인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폴 칼라니티, <바람이 숨결이 될 때> p. 95








신경외과로  마침내 자신의 진로가 분명해졌을 때 그가 고민하던 내용들이다. 저 질문이 나의 마음에 와 담긴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하루를 보내면서도 하루라도 더 살기를 바랐던 이모에게 내가 하지 못했던 질문들. 내 손을 붙들고 가끔 죽고 싶지 않다고 울던 이모에게 묻지 못했던 말, '당신을 지금 살게 만드는 건 무엇인가요?' 이 질문을 그가 어린 날의 내 대신 성인이 된 내게 하고 있다. 



우리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을 책임져야 하는 힘겨운 멍에를 졌다. 우리 환자의 삶과 정체성은 우리 손에 달렸을지 몰라도, 늘 승리하는 건 죽음이다. 설혹 당신이 완벽하더라도 세상은 그렇지 않다.
 
 이에 대처하는 비법은 상황이 불리하여 패배가 확실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의 판단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환자를 위해 끝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완벽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한없이 0에 가까워지는 점근선처럼 우리가 완벽을 향해 끝없이 다가가고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있다.

                             - 동일 책, p142-143 중








 자신이 암에 걸린 사실을 알았을 때 친구에게 그 사실을 이메일로 알리며, "그나마 좋은 소식이라면 내가 이미 브론테 자매나 키츠, 스티븐 크레인보다는 더 오래 살았다는 거지. 나쁜 소식은 내가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는 거고."라며 재치 있고 유머러스하게 자신에게 찾아온 불청객을 삶 속에 수용하고 이겨내려 했던 그의 모습을 통해 나는 큰 위로를 받았다. 어린 날 목격했던 죽음이란 무형의 존재, 시간의 사형선고에 내게 남아 따라붙던 어두운 그림자들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책은 마무리되지 못했다. 갑작스레 악화된 병세로 그는 자신의 딸에게 남기는 아름다운 메시지를 끝으로 세상을 떠난다. 책의 뒷부분은 그의 아내 루시 칼라니티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편의 투병 중에 미리 보관한 정자로 귀한 아기를 얻고 키우게 된 그녀는 그를 추억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날마다 더 깊이 그를 그리워하고 또 기리며 하루하루를 열심 다해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던 남편의 모습을 이야기하며 그의 아내이자 목격자로, 그리고 그를 기억해야 할 남겨진 이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글을 대신 맺는다.




 삶은 우리에게 어떤 길을 제시할지 모른다. 한 번도 간 적 없는 매일의 새로운 길을 조금씩 더듬으며 묵묵히 나아갈 뿐이다. 그러나 때론 깊은 고독과 두려움 속에 누군가 내게 내 앞의 길을 걷는 방법을 조언해 주길 바랄 때가 있다. 그런 순간 나는 책을 펼친다. 살아있는 그를 만나 암을 이겨 낸 그의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테지만,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기록한 그의 책으로 오늘을 살아갈 용기와 힘을 얻는다.




 폴 칼라니티, 당신을 기억합니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 허회경, 그렇게 살아가는 것








#숨결이바람이될때

#폴칼라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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