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no Dec 19. 2023

작별인사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얼굴을 가린 운명의 여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나름의 역할을 하게끔 한 뒤 다시 침묵의 세계로 돌아가게 한 것이다. 이 운명을 수긍하거나 거역하는 것은 할 일이 아니다.

    - <헨리 라이크로프트 수상록>, 조지 기싱








 두 해 전 변호사 부모를 둔 자식이 부모를 상대로 자신을 왜 허락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는가 소송을 걸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인도에 사는 청년이었죠. 상류층에 속하는 삶을 영위하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교육을 받은 그 자신이 세상에 태어난 자체를 후회한다며 이런 세상에 허락도 없이 자신을 태어나게 한 부모를 고소한다더군요. 조지 기싱이 그를 보았다면 미간을 좁히고 눈썹을 꿈틀대며 지그시 응시하고 이 구절을 백만 번 필사시킬 것 같은 말입니다.



  사건을 보도하는 기사 제목이 선정적이어 얼른 클릭했다가 대체 무엇이 부족해서 그는 생명이 주어진 자체를 후회하고 원망했을까란 의문으로 이어. 소송의 마지막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사를 검색해도 알 수 없어 지금도 궁금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이 세상을 이토록 힘겹게 받아들이는 이도 있다는 것이 제겐 신선한 자극이었습니다.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하루를 누리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가 된 제게 태어난 이유는 무엇이고, 왜 나를 태어나게 했는가라는 청년의 질문은 저의 걸음을 멈추게 만들었거든요. 질문의 방향이 제게 향하게 되는 순간, 저의 삶의 목적에 대해 대답할 말이 너무나 궁색했달까요? 



그래요. 고통에는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세상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이는 건 의미가 있어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의식이 있는 존재들이 이 우주에 태어날 수밖에 없고, 그들은 살아있는 동안 고통을 피할 수 없어요.



  청년에게, 저에게 답해주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소설이 있습니다.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죠. 소설을 읽으며 기사에서 보았던 청년에게 조심스레 답을 해주는 상상을 했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서 말이죠. 어떤 소설이길래 이런 글귀가 나오는지 궁금하시죠?








 명령만 하면 가서 확인해 올 로봇이 한 대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종. 시판을 앞두고 활성화되기까지 곧 멀지 않을 존재들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요?"휴머노이드". 혹은 "아바타". 이 용어에 대해서는 저도 규정하지 못하겠어요. 만지고 느낄 실체가 있다면 휴머노이드지만, 그렇지 못한 영상과 이미지로만 존재하는 건 아마도 아바타라 생각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로봇 박사님들께서 이 을 본다면 분기탱천하셔서 뭐라고 나무라실지 모르겠지만 슬쩍 발뺌하며 작은 목소리로 우기기 신공 들어갑니다.


 

 가상공간에서의 우리들을 대체할 아바타였다가 이제는 정말로 개성 있는 한 존재로서 우리들 앞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는 존재들을 보고 있으면 가끔 전율이입니다. 솜털 하나까지도 우리와 닮아 있는 저들이 실체가 아닌 이미지로만 존재하는데도 이렇게 압도적인 존재감을 갖고 있다 생각하면 프로그래밍한 인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되짚어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인간들이 개척하는 미지의 대상을 향한 걸음은 바른 궤적을 잇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곰곰 해보고요.



 광막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멀리서 반짝이는 불빛이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물결치듯 그렇게 다가올 때가 있습니다. 오래전 누군가 보낸 아주 먼 데서 오는 편지처럼 날아와 안기는 별빛. 별들의 개수만큼이나 많은 통신망으로 연결된 우리들도 서로에게 닿을 때는 이렇게 반짝하고 더 빛나죠. 깜빡이는 알림과 함께요. 영화 "HER", "LUCY", 식스센스의 귀여운 꼬마가 열연했던 "A.I", 로빈 윌리암스의 "바이센테니얼맨"의 공통점을 떠올려 보세요. 정답이 뭘까요? 딩동댕! (혹은 땡^^;;;) 인공지능과 휴머노이드를 다룬 영화들이란 거죠.(맞추신 분들께는 제 마음으로 드리는 하트만 백만 개 발사요. 반품 없습니다.)



 흥미롭게 보았던 영화들 속의 주인공들. 인간과 기계의 경계에서 인간이 되고 싶어 노력하던 피노키오를 닮은 존재들을 바라보다 그들이 결합하는 온라인상의 거대한 네트워크의 힘에 대해 고민해 보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인도의 청년처럼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탄생의 이유에 대해 반문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이번엔 김영하 작가의 신작 소설 <작별인사>를 통해 공존을 넘어 가치의 전환과 그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습니다. 오래 앓는 감기로 부쩍 기력이 쇠한 고여사 님께서 나중에 요양병원에 자신을 보내지 말아 달라는 호소를 가장한 엄명을 하시며 본인이 위중해지면 제가 직접 병간호를 해달라 부탁하시던 날. 제 허락이나 생각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심각한 얼굴로 막중한 책무를 맡기시는데 뭐라 답할 말이 없어 고민하다 '나랑 똑같은 거 뭐 없을까?'라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엄마께선 너 아니어도 좋으니 았는데 좀 더 실하고 체 고 순종적인 존재를 데리고 와 본인의 병상을 지켜달라 이야기하시는데 순간 움찔했어. 우리가 매 순간 살필 수 없는 곳에 로봇의 필요성이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필요에 의해 태어난 존재가 쓸모를 넘어 존재 자체의 의미를 되묻는다, 그럼 그들에게 우리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도 실제로 휴머노이드들의 쓰임이 간절해진 순간이 바로 요양병원의 지킴이들이죠. 거기서 시작된 휴머노이드들, 그리고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 붐으로 이어집니다.  "휴먼매터스(인간문제들로 읽힙니다. 꼭 인간이 문제라는 말처럼요)"의 최진수 박사의 손에서 탄생한 울트라 캡숑 짱 기능 최상인 휴머노이드 "철이"가 미등록된 기계로 판명되어 당국의 단속반에 무참하게 끌려가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급작스러운 사건의 전개, 신속한 몰입. 매력적인 도입이에요. 자, 내가 소중한 존재를 잃었고 나는 그걸 찾으러 떠나고 그런데 잃어버린 너는 엄청난 생존력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나 스며들고... 플롯만 보면 너무 흔한 성장소설 아닌가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시는 분들이 생기겠죠. 흡입력 최강인 소설이니 조심하세요. 설득당할지도 모릅니다. 너의 편박한 세상이 닫아 건 빗장을 열고 또 다른 층위의 세상에서 삶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보라는 목소리에 말이죠.  





 소설 속에 이런 문구가 나와요.


민이 네가 인간이든 기계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수억 년간 잠들어 있던 우주의 먼지가 어쩌다 잠시 특별한 방식으로 의식을 얻게 되었고, 이 우주와 자신의 기원을 의식하게 된 거야.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 잠깐을 이렇게 허투루 보낼 수는 없어. 민아, 너는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다 보고 느끼게 될 거야. 걱정하지 마.



 불법으로 통용되던 휴머노이드들을 강제로 모아놓은 수용소에 갇히게 된 철이가 만난 선이와 민이라는 인간과 휴머노이드. 탈출과정에서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휴머노이드 민이를 살리기 위해 다짐하는 선의 대사죠. 간절히 민이를 살리고 싶어 하는 그녀 앞에 나타난 "달마"라는 로봇 해방군 리더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마음이라, 마음이 뭘 말하는지를 저는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기억일까요. 어떤 데이터 뭉치일까요? 또는 외부 자극에 대응하는 감정의 집합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뇌나 그것을 닮은 연산 장치들이 만들어내는 어떤 어지러운 환상들일까요?



 머리와 몸통이 분리되어 폐기 처분될 민이를 다시 다른 기계로 백업시켜 환생하고 싶어 하는 선 이에게 던진 이 질문에 제 마음도 두려운 '마음'이 들며 그 순간 '마음'은 대체 어디서 생겨난 것이며 무엇 때문에 우리의 걸음을 앞으로 밀어내고 있는 걸까요?



 마음이라는 주체적 생각의 흐름. 그걸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인간인 우리 앞에 등장한 새로운 종들의 목소리로 우리가 갖고 있는 의식의 한계들을 되짚어 보던 시간입니다.



 읽는 내내 수많은 물음표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보름달처럼 머리 위로 맺힙니다. 쉽게 읽히면서도 절대로 쉽게 잊히지 않. 그리고 그려보지 않았던 결말까지. 통속을 뛰어넘은 작가의 힘 있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문장의 힘이겠죠. 영화에서 만났던 모든 순간들보다 더 폭넓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책에 빠져 새벽까지 뜬 눈 부엉이가 되었.



 복복 서가에서 발행하는 책으로 구입했는데 표지가 정말 예쁩니다. 별빛이 쏟아지는 장면이 영화 문라이트 한 장면 같아요. 아직 읽지 않으셨다면 우리, 같이 읽어요. 뻔한 이야기에서 진한 이야기로 생각을 붙들어 줄 책 한 권. 함께 나누실래요?












* 같이 듣고 싶은 곡


 Missouri Sky :

The Moon is a Harsh Mistress












#청수당

#작별인사

#김영하

이전 05화 이처럼 사소한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