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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Dec 12. 2023

이처럼 사소한 것들





완공된 성당의 관리자로, 혹은 성당 의자나 운반하는 사람으로 자기 소임을 다했다고 만족하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부터 패배자다. 지어 나갈 성당을 가슴속에 품은 이는 이미 승리자다. 사랑이 승리를 낳는다.

... 지능은 사랑을 위해 봉사할 때에야 비로소 그 가치가 빛난다.

                 - 생텍쥐베리, <전시 조종사> 중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저층의 공간은 계절에 따라 밖의 다양한 소리들이 곶감 빼먹는 어린아이처럼 천방지방 시도 때도 없이 창문을 넘어 들어온다. 이 날따라 밖에서 노는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쓰는 욕설이 듣기 거북할 정도로 심한 것들이 오갔다. 처음 들을 때 움찔, 또 다른 소리에는 '어떻게 저런 말을!'이라며 고개가 180도 회전하며 창쪽으로 향하게 되더니, 연속으로 들려오는 욕설에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창가로 향했다. 베란다 아래서 핸드폰을 보면서 모여있는 아이들 무리가 보인다. 유튜브 쇼츠를 보며 서로 자신이 좋아하는 영상 등을 공유해 보는 중인가 본데, 그 영상에 대한 품평을 하는데 이리 다양하고 신기한 욕설이 등장한 것이었다. 또 한 번의 걸쭉한 욕설이 파란 후드티를 입은 녀석에게서 나오는데, 그걸 듣자마자 난 큰소리로 아이들을 불렀다.


 서늘하고 단호하게, 그리고 절대 얕잡아 볼 수 없는 무게의 톤으로,

"얘들아, 놀 때 꼭 그런 말을 써야 하니?"

(심히 가증스러운 서울 말씨로 찬찬히 타이르듯 이야기하는데)


"웬열, 뭔 상관? 아줌마 누구세요?"


 눈 똑바로 뜨고 나를 보며 쏟아내는 질문들 중, 내 눈을 황급히 피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녀석의 제비추리가 보인다. 낯익은 선과 형체. 내가 가르치는 녀석이다.


"너희들이 노는 건 자유고, 즐겁게 논다니 기쁜 일인데 사용하는 언어들이 듣기가 괴롭네. 그래서 말하는 거야. 꼭 그렇게 욕을 써야 하니?"


"아, 별 꼰대 다 보겠네. 우리가 쓰든 말든 안 들으면 되잖아요. 왜 밖에서 노는 데까지 간섭인데요."


 참을 만큼 참았던 난, 평상시 정말 다루기 힘든 문제아들을 다룰 때 내는 발성과 눈빛(가만있지 않으면 3대를 괴롭혀주겠다!)으로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내일 너네 학교로 간다. 보아하니 6학년. 너네 학교 몇 개 안 되는 반에서 너네들 골라내서 교장실 가서 이야기해보자. 올바른 언어사용법에 대해. 어때? 지금 가?"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실내의 수업하는 아이들조차 숨소리 하나 안 내고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나를 올려다보지 못하고 있는 제비추리가 애들을 툭툭 치며 손짓한다. 튀어야 산다는 다급함과 함께. 정말 더럽게 짜증 난다는 표정을 하고 갈 길 가는 아이들을 팔짱 끼고 계속 째려보다 허탈해진다. 나 혼자만의 도덕심으로 결국 훈계하듯 아이들을 혼냈다는 약간의 자괴감마저 들었다.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란 후회와 함께 말이다.




 많은 일에 눈을 감고 살아가는 것 같은 요즘이다. 내 나름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무형의 기준이 때로는 감옥이 되어 나를 쉽사리 밖에 나가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용기 내서 하는 발언도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거나, 꼭 내가 해야만 하는 걸까란 생각으로 여러 번 다시 생각해 볼 때가 많다. 불의란 참을 수 없는 사회적 병폐로 우리 사이를 파고들어 병들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눈에 불을 켜고 목소리 내고 방제작업을 하려 하던 내가 아니게 된다. 


 갈수록 못 들은 척, 못 본 척 고개를 돌리고 내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안온한 일상을 지키는 일에만 더 몰두하던 요즘이었기에 아이들이 나를 향해 뱉어내던 눈빛의 욕설(직접 쓰는 걸 들었기에, 대충 무슨 말을 했을지 알 것 같은 그 찝찝함이란... 잊어버리고 싶다.)을 곱씹으며 소소한 일상의 이토록 사소한 것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란 고민이 생긴 날이었다. 그런 내게 소시민의 일상을 깨는 정결한 끌과 같은 소설이 다가왔다. <맡겨진 소녀>를 통해 만났던 클레이 키건의 또 다른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이 책주인공에게 펼쳐지는 어떤 무심한 겨울의 묘사로 시작을 한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 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사람들은 침울했지만 그럭저럭 날씨를 견뎠다.

     - 클레이 키건, <이처럼 사소한 것들> p.11





 주인공 펄롱은 16살에 미혼모로 자신을 낳은 엄마와 함께 미시즈 윌슨의 도움으로 그녀의 댁에서 자란다. 무사히 아기를 낳게 도움을 준 미시즈 윌슨은 펄롱이 자라자 잔심부름을 시키고 글도 가르쳐주며 그들을 지켜준다. 부지런한 그는 특유의 성실함과 재능으로 자리를 잡고 결혼도 하게 되는데 5명의 딸을 낳고 석탄, 목재상을 운영하며 꽤 안정적인 중산층 가정의 가장으로 살아간다. 젊은이들은 미국으로 떠나고, 실업수당을 받기 위한 줄은 매일 더 길어지며 오래된 회사들도 문을 닫는 때, 그는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자 존재 이유가 되는 딸들의 안위와 평온한 미래를 위해 지금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를 다시 한번 되며 열심히 가게를 운영한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지던 어느 날, 케이크를 만드는 가족들 틈에서 펄롱은


늘 이렇지, 펄롱은 생각했다. 언제나 쉼 없이 자동으로 다음 단계로, 다음 해야 할 일로 넘어갔다. 멈춰서 생각하고 돌아볼 시간이 있다면, 삶이 어떨까, 펄롱은 생각했다. 삶이 달라질까 아니면 그래도 마찬가지일까- 아니면 그저 일상이 엉망진창 흐트러지고 말까?

... 내일이 저물 때도 생각이 비슷하게 흘러가면서 또다시 다음 날 일에 골몰하리란 걸 펄롱은 알았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p.29




 그는 종종 아무렇지 않게 흘러가는 시간 속 반복되는 루틴 사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잊거나 놓치고 살아가는 건 아닐까 고민한다. 그와 같은 고민으로 집에 있던 모든 시계의 배터리를 빼버린 적이 있는 나이기에 무의미한 반복처럼, 그러나 끝나지 않고 밀려오는 반복적인 일과의 행진이 숨 막히게 다가오는 날. 그런 날의 펄롱의 기분에 쉽게 공감이 되었다.


 

 다행히도 미혼모의 자식이란 이유로 학교에서 늘 따돌림을 당하고 무시당하던 그에게 종종 따뜻한 어른으로 회상이 되는 미시즈 윌슨, 그녀가 해준 작은 칭찬과 선의의 행동들이 펄롱에게 어떤 느낌으로 남아 있는지를 보며 결국 그를 낳고 양육한 건 생물학적 부모인 엄마지만, 정말 한발 더 성장하고 꿈을 갖고 미래를 그려보게 만든 건 늘 한발 뒤에서 그를 지켜보고 칭찬해 주던 미시즈 윌슨 같은 어른이 있어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의 서두에 인용한 생택쥐베리의 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는 이들에게 조용히 전하는 삶의 목적 한 가지. 목적을 이루었다 안주하고 살아가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삶을 완성해 가야 한다는 그의 글이 미시즈 윌슨의 모습을 통해 소설에서 펼쳐진다. 그녀의 사랑으로 보이지 않는 배려를 통해 성장해 온 펄롱. 그의 일상에 뜻하지 않은 반전이 생긴다.







 

 강 건너 언덕 위 수녀원으로 석탄과 목재를 납품하던 그가 배달을 하러 갔다 한 무리의 소녀들을 만나게 된다. 담당 수녀를 찾던 중 불이 켜진 작은 예배당에서 맨발로 정말 끔찍한 상태의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을 하고 바닥에 엎드려 걸레질을 하고 있는 아이들을 보게 된다. 눈먼 이가 가위질을 한 듯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깎인 한 소녀가 그에게 다가와 애원한다. 자신들을 대문 밖으로만이라도 나가게 해달라고 말이다. 일하다 죽어도 좋으니 펄롱의 집에 데려가 달라고 애원하던 소녀를 그대로 두고 나올 수밖에 없었던 펄롱은 자신이  일련의 장면들을 계속 떠올린다.


 

 마을 사람들이 그동안 언덕 위 수녀원에 대해 이야기하던 소문들을 떠올리는 펄롱. 실제로 이 소설에 등장하는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말까지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고 아일랜드 정부에서 지원한 여러 시설 중의 하나다. '타락한 여성'들을 교화하고 수용한다는 명분으로 설립했지만, 외모가 아름다워서 남자들을 타락시킬 위험이 있는 젊은 여성들까지 마구잡이로 잡아들이고 그녀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세탁소를 운영하고 수도원을 유지했다고 한다. 1966년에야 아일랜드의 마지막 막달레나 세탁소가 문 닫았는데, 그때까지 비공식적으로 추산된 수용인원은 3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대부분 분실되고 파기된 기록 속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소녀들이 얼마나 많을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고 한다.











 펄롱은 수도원에서 믿을 수 없는 현실을 목격하고 나오게 된 것이다. 자신에게 대금을 지불하는 수녀를 바라보다 틈하나 없는 그녀의 모습에 자신에게 애원하던 소녀에게 생기던 호기심마저 사라져 버린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중 기이한 일을 겪는다.



 안개가 여기저기 기운 기다란 천 모양으로 내려앉았다. 구불구불한 도로에 차를 돌릴 만한 공간이 없어서 펄롱은 우회전을 해서 샛길로 들어갔다. 그 길로 가다가 또 우회전했더니 길이 더 좁아졌다. 또 한 번 우회전을 해서 전에 지나간 적이 있는지 없는지 확실하지 않은 건초 창고를 지나다가 짧은 목끈을 질질 끌며 돌아다니는 숫염소 한 마리를 보았고 곧이어 조끼를 입은 노인이 길가에 죽은 엉겅퀴를 낫으로 쳐내는 모습이 보였다.  

펄롱은 차를 세우고 노인에게 인사를 했다.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오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이 길?" 노인은 낫으로 땅을 짚고 손잡이에 기댄 채 펄롱을 빤히 보았다.
"이 길로 어디든 원하는 데로 갈 수 있다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p.54



 소설을 다 읽은 뒤에야 지금 이 부분이 얼마나 기막힌 은유였는지 깨닫는다. 집으로 돌아와 사춘기 딸의 투정을 들으며, 아내에게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을 들으며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미사를 보고 돌아오는 생활 속에서 좀처럼 집중하지 못하던 그 결국 다시 수도원을 찾는다. 그곳에서 벌을 받고 갇혀있던 자신의 어머니 이름과 같은 소녀 새라를 구출해 나오면서 그녀가 가길 원했던 배로 강을 향해 걷는다. 수도원 일에 관심을 갖는 펄롱을 만류하던 이들이 하나같이 말하던 신경 쓰지 말라는 말에도 끝내 소녀를 데리고 나와 걷는 그의 여정은 막 내린 흰 눈 위로 처음 찍히는 발자국처럼 선명하고 또렷하다.

 








 자신이 입던 외투를 소녀에게 걸쳐주고 같이 걸으며 오래전부터 그를 알고 거래해 온 이들이 소녀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보이지 않게 만드는 투명한 벽 사이를 걸으며 자기 보호 본능과 용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펄롱.


아이를 데리고 걸으면서 펄롱은 얼마나 몸이 가볍고 당당한 느낌이던지. 가슴속에 새롭고 새삼스럽고 뭔지 모를 기쁨이 솟았다. 펄롱의 가장 좋은 부분이 빛을 내며 밖으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을까?

펄롱은 자신의 어떤 부분이, 그걸 뭐라고 부르든- 거기 무슨 이름이 있나?- 밖으로 마구 나오고 있다는 걸 알았다. 대가를 치르게 될 테지만, 그래도 변변찮은 삶에서 펄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와 견줄 만한 행복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갓난 딸들을 처음 품에 안고 우렁차고 고집스러운 울음을 들었을 때조차도.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엇을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 <이처럼 사소한 것들> 중, p 120





 



 삶을 완성하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1차적 목적들만이 전부가 아니라 속삭인다.  안의 내면에 감춰진 선과 선의가 발현되어 주변을 같이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작고 소소한 행동들이 이 세상을 밝히고 따뜻하게 만드는 진정한 원동력임을 소설은 고요한 어조로 전달하고 있다.



 연말이 되어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캐럴을 듣다, 뉴스 속 어지러운 사회면을 보다 도움이 늦어 외롭고 쓸쓸하게 세상을 등진 이들을 위한 늦은 위로를 전하는 요즘. 펄롱의 고민들이 하나하나 묵직하게 와닿았다. 우리 마음의 빛을 더해주는 한 편의 아름다운 서사시와 같은 소설, 당신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 책을 가만히 덮는다.












* 같이 듣고 싶은 곡


:  쇼스타코비치 왈츠 NO.2


https://youtu.be/pE9D0ai0bZM?si=1qJyoSVVELmoYqir



** 모든 그림은 강요배 화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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