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희망을 찾는 여정을 따라
말들은 인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고고하게 다가오는데 주영은 진정한 주인을 위해 겸손하게 길을 비켜주었다. 하늘엔 어느새 노을이 깔려 있었다. 문득 고원을 향해 돌아서니 고원 아래로 수십 마리의 말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어디서 오는 것일까. 신의 사랑을 받고 돌아오는 듯 평온한 귀가였다.
광막한 자연 속에 두 사람 빼고 인간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넓이를 잴 수 없는 하늘 아래 온통 말과 새들이 대지 위를 누비고 있었다. 더없이 완전한 풍경이었다. 낙원이 거기 있었다. 고원 위에서 스투파도 자연의 주인들을 내려다보는데 해탈이 거기 있었다.
- 툰드라, p55
인간은 사랑에 의존하고 신에 매달리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원인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생긴다는 연기의 법칙만 깨달으면 밖에서 구원을 찾으려 헤매지는 않아요. 내가 갖고 태어난 업 - 나라와 부모와 내 먼 전전생부터 축적된 습의 유전자, 내 몸을 숙주로 살아가는 쾌락 집착 슬픔이여,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으로 인한 번뇌여, 늙고 병들고 죽는 두려움이여, 여기서 해방되는 그 자유가 바로 구원이 아닌가.
스님들이 청춘을 바쳐 선을 하는 건 그것이 자유로 가는 지름길이고 생의 정수精髓이기에. 일생이 얼마나 되관대 갈애에만 허덕이랴. 되풀이되는 업의 윤회를 끊으려면 먼저 자신을 관觀 해야지.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구원이란 없어요.
- 석양꽃 p.278
자리에서 일어나 또다시 길을 나서니 눈앞에 하얀 은사시나무가 보인다. 큰 몸통 위에 하늘이 걸려 있어 올려다보니 구멍이 뻥 뚫려 있다. 어떻게 저러고도 살았을까 싶을 만큼 큰 구멍이다. 그 구멍이 왠지 낯익다 했더니 <산해경> 책 속에 그려진 관흉인 가슴이 겹쳐졌다. - (중략) -
"어떻게 살았는지 신기해요. 가지도 잎도 멀쩡하게 자라고."
"온통 벌레들이 차지해서 걱정될 만큼 잎에 구멍이 숭숭 난 나무도 많아요. 식물학 책 보니 숲의 규칙이 있는데 잎의 이십 프로는 숲 속 다른 동물들을 먹이기 위해 만든대요. 이게 자연의 지혜라. 인간도 지구에 사는 대가로 가슴을 갉아먹히는지 모르겠어. 그 고통을 이십 프로는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되지 싶어요. 무심한 천지가 준 내 업인가, 하고. 분노도 자책도 다 가을 잎처럼 털어 묻고...... 여기가 무장사지 가는 길 아닙니까."
- 가멸사加滅寺 p.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