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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no Nov 14. 2023

더 리더 - 책을 읽어주는 남자


 


 두 개의 거짓말을 양팔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하나는 자신의 수치를 덮기 위해 쓴 가면과 생존을 위해 바꿔 쓴 가면. 미동 없는 영점을 바라보며 역사라는 이름의 시간 위에 가해자와 피해자로 마주 선 이들의 가면을 벗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가해자 <더 리더>의 여주인공 한나 슈미츠, 피해자 <페르시아 수업>의 잔. 당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다음 날 그녀와 만났을 때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하자, 그녀는 몸을 뺐다. "그전에 먼저 내게 책을 읽어줘야 해." 그녀는 진지했다. (중략) 책 읽어주기, 샤워, 사랑 행위 그러고 나서 잠시 같이 누워 있기 - 이것이 우리 만남의 의식儀式이 되었다.





 1부를 관통하는 큰 줄거리를 통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 굉장히 큰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더 리더. 난 그들의 만남 이후인 2부와 3부에 주목하고 싶다. 15살 소년의 세상을 연 한나 슈미츠. 그에게 열락의 기쁨을 알려주었지만 끊임없이 굴종을 하게 만들던 여인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남겨진 소년은 누구에게도 마음을 쉽사리 열지 않은 채 살아가는 빈 껍데기 같은 사람이 된다. 그 후 나치 전범 재판장에서 다시 만나게 된 그들의 이야기가 2부에서부터 펼쳐진다.

 


 읽고 쓸 줄 모르던 한나는 자신의 비밀이 탄로 날까 두려운 나머지 당시 다니고 있던 철도회사의 승급제안을 마다하고 다른 도시로 떠나버린다. 그리고 맡게 된 유대인 수용소 감시원 역할. 그 일을 하던 중 이송하던 포로들이 교회에 갇힌 채 불에 타 죽는 일이 발생하게 되고 그때의 생존자가 쓴 책의 출간을 앞두고 당시 복무한 감시원들을 재판에 회부하며 청년이 된 소년의 세상에 다시 나타나게 된다. 법대에 진학 후 나치세상에 동조한 부모세대와 그 유산을 발판으로 전쟁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자식 세대의 첨예한 대립 속에 갈등하던 이들의 모습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부모님들에게 수치의 판결을 내렸다. 우리가 그들을 고발한 내용은, 그들이 1945녀 이후에도 주변에 있는 범죄자들의 존재를 묵인했다는 것이다.

     - 더 리더, 베른하르트 슐링크 이레. P 99




 당시 시대의 분위기에 마취되거나 도취된 이들, 그리고 묵인으로 눈감아버린 수많은 이들 사이 주인공은 한나의 재판을 지켜보며 우리에게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제2세대들은 유대인 박멸과 관련된 끔찍한 정보들을 실제로 어떻게 대해야 했으며 또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 되며, 자꾸만 물어봐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질문자는 그 끔찍한 사건들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해도, 그 앞에서 다만 경악과 수치와 죄책감을 느끼면서 침묵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 동일 책, P112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한나가 보이는 태도는 일관적이다. 나는 당시 내게 맡겨진 일을 충실히 이행했을 뿐이며 그들을 풀어주었다가 일어날 수 있는 극도의 혼란을 피하기 위해 불이 붙은 교회의 문을 열어주지 못했을 뿐이라는 그녀의 말에 모두들 경악한다. 한나는 글자를 모른다는 자신의 치부를 들키지 않기 위해 다른 감시원들이 모두 그녀가 주도해서 시킨 일이라며 죄를 뒤집어 씌우는데도 반박 없이 모두 떠안고 감옥에 가게 된다. 다른 이에게는 문맹이라는 작고 소소한 배움의 부족 혹은 결여일 수 있지만, 그녀에게는 문맹이라는 것이 타인과의 소통의 부재. 간절히 배움을 원하지만 쉽사리 할 수 없는 자신의 근원적 고독이 되어버린 것이다.










 페르시아어 수업의 유태인 질은 이송되던 트럭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샌드위치를 건네주고 대신 그가 훔쳤다는 페르시아어 책을 얻게 된다. 이송되던 도중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으로 쏴 죽이는 독일병사들에게 자신이 페르시아인이라고 거짓말을 한 뒤 코흐대위 앞에 끌려온다. 코흐는 전쟁이 끝나면 테헤란에 가서 식당을 차리려고 한다. 미리 이란의 언어를 배워두기 위해 사람이 필요했던 건데 책 한 권, 그것도 앞장에 적힌 책의 원래 주인 레자란 이름과 바바(아버지)라는 단어 하나밖에 모르던 질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목숨을 연장하기 위해 스스로 언어를 고안해 낸다. 수용소에 끌려 온 유태인들의 이름을 갖고 만들어 낸 단어들은 약 2000여 개가 넘게 되고, 그 단어들로 코흐와 질은 자신들의 과거 이야기를 나누며 코흐는 시를 짓기도 한다.


 

 그러던 중 대위의 급작스러운 질문에 그만 다른 단어를 해버린 질. 그에게 속았다는 것에 극도로 분노한 코흐의 지시로 채석장으로 끌려가 고된 노동 끝에 쓰러져 삶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을 때 질의 페르시아어 잠꼬대를 들은 코흐는 그를 다시 믿게 되며 자신의 옆에 두게 된다. 여러 번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온 질은 도망 다니고 숨고, 거짓으로 만들어내는 자신의 세상에 진심으로 회의를 느끼게 된다.



 특히 진짜 페르시아인이 수감되어 정체가 탄로 나게 되었을 때 질이 보살펴 준 유태인 형제가 질을 지키기 위해 페르시아인을 살해하고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을 본 뒤 생존을 위해 자신이 만들었던 세상이 실재하는 세상이 될 수 없다는 걸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전쟁이 끝날 무렵 질을 수용소에서 빼내 탈출한 코흐. 그와 자신들의 페르시아어로 작별인사를 나눈 질이 수용소에 갇혀있던 유태인들의 이름을 복기하며 영화는 끝을 맺는다. 흐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꼭 영화를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란다.










 더 리더와 페르시아어 수업에서 내가 주목하는 건 언어의 효용이다. 한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미하엘이 보내주는 오디오 테이프를 통해 글자를 익혀나간다. 미하엘이 보내 준 테이프를 수없이 감고 다시 들으며 글자들을 익힌 그녀는 처음으로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눌리고 삐뚤삐뚤한 글씨체로 소통을 하기 시작하는 그녀. 이후 한나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일어난 일들에 관심을 갖게 된다. 여러 가지 책들을 통해 홀로코스트 속에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과 그들이 처했던 상황들을 알게 되고 자신이 한 일에 대해 들여다보는 일을 한다.



 글을 알기 전에는 한 번도 직시한 적 없던, 재판장에서조차 판사에게 "그렇다면 판사님은 어떻게 했어야 했나요?"라고 되묻던 그녀가 들여다보게 된 현실이 그녀의 마지막 선택의 선택지들을 지워버렸다고 생각한다. 언어의 확장은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지고, 세계관의 완성을 돕는 중요한 수단이다. 그녀의 배움은 그러기에 온전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선택한 단 하나의 희망이 아니었을까?



 페르시아어 수업의 잔이 만든 언어를 통해 패망 후 퇴각하며 모든 걸 소각한 독일군들의 만행이 알려진다. 야유회를 나가 천진하게 독일어 민요를 부르고, 동료에 대한 질투와 사랑의 애증관계를 보이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먹을거리들을 놓고 일상의 대화를 하는 독일인 병사들이 유태인들 앞에서 끔찍한 짓들을 하는데서 오는 불편하고 소름 끼치는 괴리감. 우리 대신 질이 코흐에게 묻는다.

"그들의 이름을 알려고 하지 않잖아요?"

갇혀있는 가축을 대하듯 사람을 대하는 병사들이 자신들 앞에 있는 존재들의 이름을 알고, 번호 대신 그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면 질을 살려 준 흐는 또 다른 이들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를 통해 동일한 사건의 다른 시점을 접한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저마다 살고자 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생의 목적의식에서 출발한 사건들이 서로 연결고리가 되어 세상을 직조하고 남겨진 그림들을 마주하고 서 있는 기분이다.



  2840개의 이름을 가만히 읊던 질, 감옥 벽 한가득을 채우고 있던 홀로코스트 관련 이야기 속 자신의 전재산을 깡통 속에 두고 정말 떠나버린 한나.






인간은 매 순간 말을 통해서 자신의 구조와 자신의 과거를 넘어설 수 있다.  

     - 막스 피카르트, <언어와 세계> 중에서







 이들을 통해 작가와 감독이 던지는 질문에 답을 찾는, 찾아야 하는 우리들. 당신이라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더리더

#페르시아어수업

#우리들의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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