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레 한 떼의 아이들이 교실을 빠져나갔다. 갑작스레 흐르는 적막 사이 흐트러진 공기의 결 사이 바깥의 소음이 밀려들어온다. 분주히 오가는 차들, 친구들과 재잘대며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 놀이터에서 신나게 하원의 즐거움을 누리는 꼬마 아이들까지. 저마다의 소리는 오후 4시 30분, 분침과 초침 사이로 갈라진 틈에 기록되는 악보가 된다. 미미미, 파#솔라, 도도라 파... 허밍으로 따라 하는 아이들의 소리는 정겹고 다정하고 생그럽다.
그때였다. 큰 소리로 외치는 "안녕!", 도플러의 효과에 따라 50m 정도 떨어진 곳에서 다시 들리는 "안녕!". 한쪽의 소리가 끝나면 다른 쪽에서 되돌아오는 소리가 조금씩 더 멀리 퍼져나간다. 나르시스의 모습을 나무 뒤에서 바라보던 에코가 서 있던 곳을 벗어나 버린 느낌이다. 발 달린 메아리는 없는 걸로 아는데 무슨 일일까?
궁금해진 나는 창가로 움직였다. 철제 펜스 너머 인도에서 거꾸로 돌아 걷는 여자 아이가 보인다. 한 손을 열심히 흔들며 활짝 웃고 있다. 아이의 입에서 나온 안녕은, 바람을 타고 반대편으로 날아가 다시 되돌아오는 중이다. 꼭 같은 얼굴로 활기차게 손을 흔들고 있는 조금 더 작은 여자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나란히 하교하다 헤어지는 중인가 보다.
그 짧은 시간의 헤어짐도 아쉬운지 연신 서로를 보며 뒤로 걷는데 저러다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걱정스러워 나도 모르게 "아가! 뒤를 봐."라고 소리를 낼 뻔했다. 용케 뒤에 있던 보도의 턱을 피해 발을 딛는 아이. 자주 다니는 길이기에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까지 머릿속에 입력이 되어 있던가 보다. 괜한 염려에 내가 소리를 내었더라면 아이의 다정한 인사말은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인식과 함께 자취를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가 떠오른다. 아침에 등교하면 제일 먼저 친구의 반으로 달려가 밤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점심이면 같이 도시락을 먹고, 저녁이면 가끔씩 자습을 빼고 학교 밖 세상에서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던 나의 수니.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친구를 창 밖에서 배웅하며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어린 날의 내 모습도 떠오른다. 간절히, 애틋하게 나누던 우리의 시간을 잊고 살아가고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도 잊은 채.
일상을 살다가 저 아이가 까닭 없는 누군가의 미움에 마음이 데이거나 방향 없는 증오에 마음이 베이는 날이 온다면 서로를 바라보며 뒤로 걷던 이 순간의 온기를 기억하기를 바란다. 우정, 인사. 흔하디 흔한 단어가 낯설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서로를 향한 다정한 인사가 마음을 지키는 온기가 되어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가 바로 서 있을 힘을 주기를. 나는 이름도 모를 아이의 내일을 위해 안녕을 바라본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소리 내어 말해보지 못했을 오늘의 안녕을, 그리운 이름을 부르며 가만히 불러볼 수 있는 밤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