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원장님! 야간 진료 때는 꼭 제게도 호출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왜 또 혼자 계세요? 병원 문은 이렇게 다 열어놓고. 위험하다고 했죠!”
병원 입구에서부터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세희의 목소리가 들린다.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용운과 그런 용운을 떼어내기 위해 다리를 털려던 민기의 대치 사이, 갑작스러운 세희의 등장이 반가워 미주가 진료실 밖으로 얼른 몸을 내민다.
“여기 있어요. 세희 씨.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연락을 못했네. 미안. 쉬는데 어떻게 알고 왔어요?”
“남편이 퇴근해서 들어오면서 병원 문은 다 열려있고, 불도 환하게 켜져 있는데 저는 집에서 뭐 하느냐고 타박하잖아요. 졸지에 제가 농땡이 끝판왕의 놀고먹는 직원이 됐지 뭐예요. 원장님. 덕분에 말이죠.”
원장님 소리를 어금니를 꽉 물고 말하는 세희에게서 응축된 분노가 느껴지는 걸 보아, 이렇게 야간진료를 미주 혼자 하는 일이 빈번하게 있었던가 보다. 용운은 그 생각을 하니 민기란 놈이 더 참을 수 없게 싫어진다.
‘니는 담번에 또 이러면 어금니를 갈아서 다리에 팍 박아버릴겨. 혈관이 찍 터져서 피가 비 내린 다음날 대천천 마냥 줄줄 흘러야 놀래서 안 오지. 기다려라. 이놈아.’
용운은 비장한 다짐과 함께 윗입술을 뒤집어 깐 채 민기를 노려보았다. 그런 가당찮은 용운의 모습은 분주히 움직이는 세희의 바짓단에 일어난 먼지에 밀려 한쪽 구석으로 치워졌지만.
“원장님, 야간 진료. 특히 갑작스러운 사고나 이런 일들로 병원을 찾는 아이들은 사후 뒤처리도 까다롭다고 말씀드렸죠? 그거 제가 다 하고 있다는 거 알고 계시죠?”
진료실에 들어서자마자 생명을 잃어가는 사고 환자의 상태를 파악한 세희는 미주를 몰아세우기 시작한다. 주인이 없는 사고 동물은 시청의 축산과 동물 보호과나 위탁 업체에 따로 연락해야만 한다. 목줄이나 인식칩이라도 있다면 주인을 찾아 연락할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인식칩이나 보호자 연락처 등록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한 편이라 이런 방법으로 주인을 찾는 일은 짚더미 속에서 바늘 찾기랄까? 그만큼 이런 사고 동물에 대한 사후 처리가 매우 힘든 편이다.
“아, 또 뵙네요. 우리 병원 야간 특진 진료의 단골손님이 오셨어요. 아이고, 민기 님. 진료비는 절대 못 받는 민기 님. 오늘은 어디에서 발견한 아이일까요? 서류 작성부터 좀 해야겠어요. 이리 오시죠. 원장님, 이 아이. 가망 없지요? 제가 봐도, 너무 안타깝지만. 가망이 없어 보이는 걸요. 바로 연락할 준비 할게요. 마음 다해 보내주세요.”
세희는 능숙하게 민기를 진료실 밖으로 내몰고, 미주가 차분히 진료할 틈을 만들어 주었다. 자신을 불편하게 하던 민기가 나가자 미주는 용운을 내려다본다.
“보디가드야? 누가 나 지켜준다고 이렇게 막아서는 거 처음이네? 기특하잖아. 좀 있다가 간식 줄게. 잠깐만 기다려.”
용운은 간식이라는 말에 반사적으로 돌아가려는 꼬리에 힘을 주고 미주를 올려다보았다.
‘다 까먹었구먼. 내가 맨날 저 업고 댕기고, 진 데 딛을까, 넘어질까 애지중지 했구먼. 하기사 나가 있느라 커가는 동안을 못 봤으니 누굴 탓하겄냐마는. 그렇게나 애꼈던 기억들이 하나도 안 남아서 저런 말을 한다냐. 쯧.’
미주의 말이 못내 서운한 용운은 시무룩하게 꼬리를 말고 캐리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 사이 강제로 내몰 듯 민기를 배웅해 돌려보낸 세희가 진료실로 들어오며 사고 환자의 예후를 살피며 지저분하게 흩어진 의료 도구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원장님, 지유는 어떻게 하고 이 시간에 병원에 계신대요? 저 녀석이 집에서도 말썽 피워서 어쩔 수 없이 나오신 거죠? 그러니 왜 맡으셔서 이 고생을 하셔요. 얼마 만에 온 지유인데. 좀 같이 계시지.”
세희의 타박에 미주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해 애꿎은 환자의 심박수를 한번 더 살피는 척 얼굴을 가리며 진료대 위로 몸을 숙인다.
“그리고 혼자 계실 때, 민기 씨도 받지 마세요. 그냥 시청 축산과나 위탁업체 번호 알려주시고 내버려 두세요. 지금 3달 사이 몇 번째 이렇게 밤에 찾아오는지 아세요? 무려 4번째예요.”
세희는 정확한 증좌를 찾아낸 감찰상궁보다 더 엄한 기세로 손에 든 종이를 미주 앞에 내밀었다. 그 기세에 놀란 미주가 뒤로 한걸음 물러서며 종이를 바라보자
“4번째! 이 동네 로드킬 당하는 녀석들의 저승사자도 아니고. 번번이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서 데려오는지. 그것도 찜찜해요. 그리고 왜 맨날 우리 병원으로만 데리고 와요? 아니 저 위에 더 큰 병원에는 왜 안 가요. 오면 진료비도 안 내고 사람만 힘들게 하면서.”
세희는 작정을 한 사람처럼 미주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용운은 반쯤 몸을 일으키고 코를 캐리지 창살에 갖다 붙이며 꼬리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그거지! 야물딱스럽게 단도리를 해놔야 저눔의 시키가 또 안 오지! 미주가 어째 다친 애들한테는 이렇게 한도 끝도 없이 맹탕으로 경계가 없는지 보고 있으면 내가 아주 속이 다 타들어 가겄어. 잘 헌다. 잘 헌다. 계속 혀!’
세희의 계속된 잔소리에 미주는 눈앞의 응급환자가 또 다른 생을 향한 침묵의 잠에 빠지는 순간에 사로잡히던 상실과 허무를 느낄 틈도 없이 의료일지를 기록했다. 미주가 빨리 병원을 벗어나야겠다는 다짐은 일을 하며 처음일지도 모를 일이다.
용운은 세희의 등장으로 자신이 처음 본 이래 가장 자연스러운 미주의 얼굴을 보며 흐뭇하게 웃는다. 빈틈없던 미주의 얼굴에 생긴 당혹감과 난처함이 얼마나 사람다운 온기를 느끼게 해 주는지 미주는 모를 것이다.
"원장님, 요즘 제가 <새들이 전하는 짧은 철학>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요. 그 책 모르죠? 여튼 되게 유명한 새 전문가가 여러 가지 새들을 놓고 인간세상의 일들이랑 비교해 가면서 에세이처럼 풀어쓴 책이거든요? 나중에 빌려드릴게요. 읽어보셔요."
"흥미롭네. 그런 책도 있고. 나는 조르주 부라상이 노래한 철새들이 궁금했는데. 어떻게 좌표도 없이 내장된 생체지도만 갖고 그 먼 길을 갈 수 있는지. 철새들도 나와요? 음, 북극제비갈매기들이요."
"나와요. 다. 별 별 새들이 다 나오는데 걔들 중에서 유독 저 민기 씨란 사람이랑 닮은 새가 있단 말이죠. 그게 언뜻 보면 우리나라 참새처럼 생긴 바위종다리 새거든요?"
키가 소나무처럼 커다란 민기를 조그만 참새에 비유하다니. 세희의 비유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 용운은 세희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져 귀를 쫑긋 세운다.
"그런데 말이죠. 전 그 새가 싫거든요. 그 조그맣고 평범하고 볼품없는 것이 얼마나 바람둥인 줄 아세요? 안 봤으면 말도 마셔요. 아주. 짝짓기에 목숨 건 녀석들인데. 특히 수놈. 짝짓기 하기 전에 암컷의 총배설강이란 곳을 쫀대요. 전희도 없고. 뭣도 없고. 밑도 끝도 없이 와서 다다다다 쪼는데..."
세희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은근하게 미주에게 다가선다.
"그게 혹시나 암컷이 다른 수컷의 정자를 품고 있을까 봐 그걸 배설해 내게 만들려고 하는 짓이란 말이죠. 아, 이 얼마나 집요해요? 알파 수컷의 씨를 이렇게 퍼트리려고 하는 집요한 부리짓이죠."
미주는 그 장면을 상상한 듯 이맛살을 찌푸리더니 세희를 바라본다.
"알겠어요. 바위종다리의 엄청난 번식욕구. 그런데 그 새가 왜 민기 씨랑 닮아서 싫다는 거예요. 세희 씨는?"
"사람이 살다 보면 말이죠. 촉이란 게 있어요. 원장님은 좀 이런 촉은 무디신 거 같아서 제가 항상 걱정이죠.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전! 사람들 눈빛 보면 반은 무당처럼 맞춘단 말이죠.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원장님 딱 보자마자 제 평생직장 외친 것도 다 이유가 있단 말이죠. 좀 슬퍼 보이는 모습은 이해 안 되지만요."
세희의 어깨 위에 마이산 닮은 허세의 뽕이 세워지는 게 보인다.
'반무당이라면서 개 탈을 뒤집어쓴 나는 어떻게 못 알아보는가. 민기만 알아봤으니 그려. 반은 무당. 인정혀. 인정혀!'
앞발로 바닥을 툭툭 치는 용운의 모습을 바라본 미주는 간식을 꺼내 용운 앞에 놓아주었다. 그리고 가만히 용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모습을 바라본 세희는 혀를 차며 다시 말을 이어간다.
"이봐요. 이렇게 아무 때나 무방비하게 뒷모습을 보이신다니까. 물기 있는 어깨는 누구든 다가와서 안아주고 싶게 만든다고요. 원장님이 그래요. 그러니 바위종다리 같은 민기 씨가 맨날 맴맴 돌죠. 틈만 나면 찾아오고. 원장님이 유부녀란 사실은 이미 민기 씨에게는 아웃 오브 안중이란 말이죠. 눈빛에서 보여요."
세희는 미주 앞에 다가서더니 손을 들어 오른쪽 검지와 중지로 자신의 눈을 찌를 듯 가리키다 공중으로 뻗어 올린다.
"아웃 오브 안중. 그저 나는 지금 당신만 보여요! 그 눈빛으로 원장님을 본다니까요? 그래서 싫어요. 죽은 동물 데리고 와서 쓱 내미는 것도 이해 안 되고요. 구해온 게 아니라 꼭. 아니에요. 그만할게요. 본 거 아니니 말을 말아야죠."
세희는 말을 말자며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계속 궁시렁거린다. 말 끝에서 들리는 바위종다리란 말을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민기에 대한 욕이 끝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때였다. 용운은 묘한 기척이 느껴져 진료실을 살피기 시작했다. 미주와 세희 말고도 또 다른 냄새가 공기 중에 희미하게 떠돈다. 훈연한 나무 향, 담배 향기와도 같은 냄새에 용운은 코를 들고 살피다 진료실 통창 너머 가장자리에 희미하게 자리한 인영을 발견했다.
민기였다. 세희가 내쫓듯 보내버린 민기가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진료실 안에서 오가는 대화들을 듣고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용운은 잽싸게 몸을 일으켜 요란스럽게 창문을 보고 짖기 시작했다.
‘언능 저기 좀 봐! 저눔 시키 안 가고 저기 서서 뭐 헌다냐. 음침허게! 빨리 봐봐. 빨리.’
용운의 난데없는 개소리에 놀란 미주와 세희가 용운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자, 순식간에 인영은 자취를 감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데 짖고 있는 용운을 바라보던 세희는 가만히 눈높이를 맞추며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그래, 친구 간다고 배웅해 주는 거야? 우리 눈에는 안 보이는 거 넌 보는 거지? 따라가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하지?”
용운은 미주의 휘파람만큼이나 위압적인 세희의 악력에 놀라 또 한 번 굴욕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눈길은 창 밖 너머 사라진 민기의 그림자에 둔 채.
* 같이 듣고 싶은 곡
친절한 금자 씨 o.s.t - 너나 잘하세요
https://youtu.be/fIyfB8b1RIM?si=I84ZVZHEb_2Wt3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