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삽니다 2/2

하루 한 편 단편소설

by 봄단풍

“욕심이 많은 친구네.”


이야기를 나눈지 10분이 채 되기도 전에 상담사는 그렇게 평가를 내렸다. 그럴만도 했다. 이 상담사라는 사람이 건넨 조건들을 내가 전부 거절했으니까.


“일단 생계는 유지해야겠는데 하고 싶은 걸 해야겠고.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는데 사람들 시선까지 만족시키고 싶고, 인간관계도 포기는 못하겠는데 그 와중에 가족들도 챙기고 싶고.”


사무실 탁자에 앉은 상담사는 안경을 내려놓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책상 여기저기 수북히 쌓인 서류철들, 그리고 그 빈 공간마다 아무렇게나 어질러진 필기구와 지우개가루 등은 이 사람이 평소에 얼마나 많은 업무를 처리하는지 여실히 보여줬다.


“근데 그럼 되게 힘들어져. 진짜 힘들어진다고.”


상담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상담사 입장에서는 포기가 많아지면 삶이 고달파지니 조금씩 협상하려던 것일 터. 만족하지 못했던 내게도 책임이 있는 셈이다.


“딱 한 가지 길이 더 있긴 하지.”

“어떤 길인데요?”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


꼴깍, 침이 넘어갔다.


“네 가족은 평생 끼니걱정 없이 살겠지. 네가 다니는 회사는 성장할테고, 네 주위사람들은 네 삶을 동경하며 자녀에게 가르치려 애쓸거야. 심지어 너로 인해 사회 경제적으로도 더 많은 가치들이 창출될테고. 정말 한 명도 빠짐없이 윈윈하는 길이지.”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지려고 할 때, 상담사는 급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딱 한가지만 포기하면 돼.”

“그게 뭔데요?”


이번에는 그가 침을 삼켰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잠시 책상을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던 그는, 먼지가 살포시 앉아있는 서류더미 밑에서 물이 담긴 컵을 꺼내 한 모금 들이켰다.


“너의 행복.”


잠시 숨이 멎었다. 놀라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제안임이 분명한데 마음의 절반 정도는 서명을 위해 오른 손을 치켜들고 있었다.


“생각해봐. 혼자 살아가면서 뭔가를 포기한다고 해서, 네가 원하고자 하는 가치를 무조건 지킬 수가 있었나? 포기한 건 다시 되찾을 수 없고, 그렇다고 지키려던 걸 죽을 때까지 지킬 수도 없는 노릇이지. 결국 삶이란 건 끝에 다다르기 전까지 당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씩 버리는 과정이야. 그리고 지금 나는, 당신이 가진 것 중에 딱 하나만 버리면 된다고 말하는 거라고. 딱 하나. 죽는 그 순간까지, 당신은 딱 하나만 버리면 돼. 그리 큰 게 아니야. 여태까지도 잘 참아왔잖아? 하던 대로 살라는 얘기야.”


말하는 그도 지쳐보였다. 지친 그 눈을 보고 있자니 문득 나보다 먼저 상담을 받은, 하나만 포기했다던 남자가 떠올랐다.


“딱 하나야. 이 기회를 놓치면, 내가 방금 말한 것들, 가족의 행복, 경제적인 안정,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당신 행복까지 통째로 다 놓칠 수도 있는 거야, 딱 하나만 포기하면 되는데. 살아가면서 당신 혼자 저 모든 걸 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다가 죽기 전엔 다 포기해야 할 거야. 당신이 아무리 애를 써도 말야.”


나는 눈을 돌려 나가는 문을 쳐다봤다. 마치 아까 그 남자가 금방이라도 들어와서, 하지 마요! 하고 소리를 지르기라도 할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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