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를 삽니다 1/2

by 봄단풍

『당신의 포기를 삽니다.』


머리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문구가 2층 높이의 간판에 걸려있었다. 그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타협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은 인생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입니다.’ 라는 글이 적혀있었다. 포기를 산다. 그제서야 간판의 문구가 무슨 뜻인지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절대 많은 것을 내놓지 않으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하고 문을 두드렸다.


상담실 앞에는 두 남녀가 일자로 된 의자에 나란히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둘 다 서로 한마디도 안하는 것으로 보아 아는 사이는 아닌 듯 했다. 세 명이 앉기에는 좁은 감이 있어서 어떻게 할까 망설이는 사이 상담실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나왔다. 한숨을 푹 내쉬고 우리 셋을 잠깐 쳐다본 그는, 이내 발을 질질 끌며 내가 들어왔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음 분.”


기계처럼 흘러나온 목소리에, 의자 한 쪽에 앉아있던 여자가 재빨리 몸을 일으켜 상담실로 들어갔다. 딸깍 소리와 함께 조용히 닫힌 문을 잠시 쳐다보던 나는 비어있는 자리로 몸을 옮겼다.


잠시동안의 침묵은 너무나 무거웠다. 복도에는 작은 시계하나조차 없어서, 이따금씩 상담실 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가 아니었다면 우주 어딘가로 빠져버릴 것만 같았다. 주위 자극의 빈 공간은 늘 내면의 망상과 공상이 채우는 법이라, 나는 애써 머릿속에 자꾸만 떠오르는 걱정과 근심을 지워내려 노력하며 옆 사람을 흘끗 쳐다봤다. 여전히 허공을 가만히 노려보는 그 사람의 눈에는 어딘가 결연해보이기까지 하는 결심히 깃들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끄덕. 심심하게 건넨 인사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기……. 와보셨어요?”


그는 고개를 가만히 가로저었다.


“저도 처음이에요. 누가 가보라고 해서…….”

“혹시 신문 파는 사람이 알려줬어요?”


말이 없던 남자는 갑자기 몸을 홱 돌리며 날카롭게 물었다.


“아뇨, 저는 찹쌀떡 파는 친구가…….”


어쩐지 취조당하는 느낌에 말끝을 흐렸지만,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던 듯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잠시 후,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처럼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 사람한테 휘둘리면 안돼요. 여기 왔다가 나가서 행복해진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하니까.”

“아……. 그래요?”

“다녀간 사람 반 이상이 자살했대요.”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몰려왔다. 그제서야 그 남자가 왜 그리도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뭔가 더 물어보려고 하던 찰나, 상담실 문이 열리고 허탈한 표정의 여인이 문을 열고 나왔다. 피할 수 없는 절망을 맞닥뜨린 것처럼 얼굴에 그늘을 가득 드리웠던 그녀는 잠시 우리를 보더니, 이내 힘없는 미소를 보였다.


“잘 해봐요.”


그녀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는 사이 상담실 문은 다시 한 번 닫혔고, 나는 복도에 다시금 홀로 남았다.


포기를 산다. 내가 뭔가를 포기하는 대신 나에게 그 댓가를 확실하게 보장해준다는 의미인 듯 했다. 세상을 살아가며 선택할 일이 참 많지만,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고 해서 다른 한 쪽을 완벽하게 성취하는 편은 드물었다. 그럼 뭘 포기해야하지? 저들은 내가 포기한 걸 가지고 뭘 어쩌려는 거지?


그렇게 한참 혼자만의 생각에 빠질 무렵 상담실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아까의 결연한 표정의 남자는 온데간데없고, 처음 나왔던 여인과 똑같이 허탈한 표정의 남자가 서 있었다. 잠시 나를 슬픈 눈으로 쳐다보던 그는 한숨을 푹 쉬며 천천히 발을 옮겼다.


“저기요!”


남자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 걸음을 멈췄다.


“아저씨는 뭘 포기 했어요?”

“딱 하나요.”


그리고 그는 문 밖으로 사라졌다.


“다음 분.”


기계처럼 일정한 톤의 목소리가 상담실 안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남자가 마지막으로 닫고 간 문을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상담실의 문턱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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