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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Feb 11.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지만 06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따뜻한 겨울 극세사 이불 속에서 일어나는 법


      

받았던 멘션 중에 가장 어려운 요청이었는데요. 겨울이 지나가고 있어서, 내년까지 기다리게 하기에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어, 요량은 없지만 매도 먼저 맞자는 심정으로 이 글쓰기 요청을 받아들여봅니다.      



저란 사람은 지각왕입니다. 저와 1020 시절에 함께 어떤 일을 도모해보았던 사람이라면 ‘아, 블블.’하고 탄식을 내뱉을 정도입니다. 제게만 모임 시간을 다르게 알려주는 친구들도 있었구요. (한번만 써먹을 수 있는게 안타까움이었죠) 아무튼 전 정말 시간약속을 잘 못지키는 편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지각을 밥 먹듯이 해서 지각비를 모아 반 전체가 먹는 간식비용에는 지분이 항상 50%가 넘는 최대주주이었어요.



머리로는 지각할 거라는 걸 알지만, 따뜻한 물줄기를 맞고 있는 샤워시간이나, 양말 한짝만 신고 난 후 멍 때리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했기에. 서둘러 나갈 채비를 잘 마치지 못하는 편이었습니다. ‘이대로 더 있을 수 있다면 지각해도 좋아’ 라는 이기적인 마음때문이었는데요. 학교 지각이야 저만 손해 보면 그만이지만, 약속 모임에선 친구들이 속절없이 절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그날 밥이나 커피를 사 치르던 비용도 적지 않습니다.       



또 다른 이유로는 ‘tv유치원 하나!둘!셋!’ 같은 방송 프로그램들을 보다가 도저히 중간에 나가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vod를 보기 시작하면 끝날 때까지 시간이 확보되어야만 재생버튼을 누르는데요. 그만큼 중간에 끊는 것을 참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다시보기 서비스라든가, 티비로 시청하던 콘텐츠를 모바일이나 랩탑에서 연이어 재생하는 것이 가능한 시대지만, 제가 어릴 때만해도 그런 건 없었으니까요. 뭐랄까. 10분만 더 보면 되는데, 이런 마음 때문에 결국 정지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꼭 10분씩 늦곤 하죠.      



시간이 자산이라는 말을 체득하면서부터, ‘나의 지각이 다른 이에게 굉장한 민폐구나!’ 깨달은 순간부터 지각하지 않으려고 굉장히 노력을 합니다만 스무 해 넘게 몸에 배인 관성이 잘 고쳐지진 않아요. 가능하면 아침 약속을 잡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일정을 잡았다면 전 날부터 무리하게 몸을 쓰지 않고 일어날 시간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잠 들려고 노력합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지각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침잠이 많기 때문입니다. 느지막한 오후나 저녁약속은 잘 늦지 않는걸 보면, 더더욱 아침잠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일찍 일어나서 여유롭게 준비할 수 있다면, 허둥지둥 대거나, 이동하는 동안 내내 마음을 졸이며 움직이는 일은 없었겠죠. 타고난 올빼미 형이라 새벽이면 눈이 말똥말똥해져서, 아침 7시-8시까지 어딘가에 도착해야 하는 일은 정말이지 제 신체리듬과 맞지 않는 일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자본의 노예. 돈 준다는 사람들이 정해놓은 시간까지 어딘가에 가야하잖아요. 저는 프리랜서긴 하지만,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 못하면 하루를 버렸다는 생각에 밤에 잠 못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어떤 상황이든, 아침에 일어나야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동안 이불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게 노력해봤던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밤에 물을 조금 많이 먹고 잡니다. 잠이 깨고 나면 바로 화장실에 가고 싶어지기 때문에 일어날 수 밖에 없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날, 이불을 제치고 일어나게 만든 것은 요의였기 때문인데요. 한여름 솜이불을 껴안고 자는 저도 요의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어릴 때에는 아빠가 꼭 제 잠을 깨우기 위해서 ‘더 자도 되니까 화장실 다녀와서 더 자라’는 방식으로 저를 어르며 깨우셨는데요. 제가 다녀오는 동안 이불을 싹 다 치우고 창문을 열어놓는 비열한 방식을 즐겨 쓰셨습니다. 하지만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저는 눈을 감고 화장실까지 종종걸음으로 다녀왔다가 다시 아빠가 개어놓은 이불을 펼치고 창문을 닫고 잤던 날도 있습니다만, 대부분 그렇게 누우면 다시 잠이 잘 안오긴 합니다. 쉬는 날이면 모르겠지만, 이정도면 나갈 준비를 어쩔 수 없이 하게 되죠. 이제는 화장실 다녀와서 자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지만, 어쨌든 아침에 화장실에 가도록 몸을 만들어 놓는 건 굉장히 좋은 방법 같아요.  


 

두번째,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츠를 일단 재생 시키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핸드폰으로 팟캐스트를 틀거나, 아끼는 드라마&예능 콘텐츠를 일단 플레이합니다. 스토리나 캐릭터가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잠이 깹니다. 문제는, 뒷이야기가 궁금해져서 안 씻고 계속 콘텐츠만 소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한번 다 본 콘텐츠를 재생시켜요. 뒷이야기가 궁금하지 않은, 결말을 미리 알고 있는, 그러나 너무 좋아하고 아끼는 무언가를 틉니다. 보통 음악 들으시는 분들도 많죠. 노래라면 따라서 흥얼거리다, 팟캐스트라면 나름의 논리를 갖고 떠드는 패널의 목소리에, 예능이라면 웃음소리 효과음에, 드라마라면 다음대사를 읊다가 잠이 깹니다. 그러면 이제 마음이 불안해지면서 일어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 거에요. 이런 방만한 자세로 내가 아끼는 무언가를 접대하고 싶어지지 않아질 테니까요. 즉시 세수를 하고 정갈한 마음으로 콘텐츠를 제대로 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거에요. 그러면 이제 씻으러 가세요. 물론 가장 좋은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일이겠지만요. 잠보다 좋은 사람이란 건 일생에 한명 만날까 말까 한 일이니까요. (가능한가요?)           



아! 먹을 것도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만약 딸기를 좋아한다면, 아! 냉장고에 어제 밤에 씻어놓은 딸기가 있어! 출근하기 전에 먹어야지. 라는 마음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아침에 땡길만한 좋아하는 과일이나 초콜릿, 디저트류를 생각할 때에도 ‘~~(출근/운동/일)하기 전에 먹고 나가야한다!’는 의지로 조금 더 쉽게 몸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커피도 상당하죠. 일단 드립커피를 내립니다. 커피향을 맡으면 갑자기 기력이 도는 것 같아요. 드립 내리는 자기 모습에 심취하면 일어나는데 더 도움이 됩니다. (효리네민박에서 아침마다 꼭 모닝티를 마시던 효리상순 같잖아요) 한모금 마시고, 텀블러에 담아뒀다가 외출시 가지고 나가면, 플라스틱이나 종이컵을 안 쓸 수 있어서 참 좋아요.           



마지막으로 저는 일부러 ‘돈을 들여 뭔가 배울 시간’을 제가 일어나야할 마지노선 타임에 잡아놓았어요. 월요일에는 과외(방학중이라 가능),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에는 필라테스 수업, 금요일에는 상담 등을 잡아놓았습니다. 수-목은 늦잠을 잘 수도 있지만, 일주일에 네 번을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게 해놓으니 저절로 눈이 떠지더라구요. 또 뭐, 정 안된다면 이틀정도는 늦잠을 자도 괜찮지 않나 싶습니다.(직장러분들 죄송) 저에게 수목은 오후 일정이 확실히 있는 날들이니 하루종일 잘 걱정은 없구요. 결국, 돈을 들이는게 최고입니다. 자의로 조절되지 않을 때에는 아까울 정도의 돈을 투자해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중요해요. 운동 그거 집에서 홈트레이닝 하면 되는데- 라는 생각이 들면, 가슴에 손을 얹고 지난날을 돌이켜보세요. 생각만 가지고 실천하지 못했던 일이라면, 돈을 투자하세요. 투자한 만큼의 돈이 나의 의지를 관철시켜 줍니다. 이렇게 쓴 돈은 많이 아깝지 않더라구요.



저는 진짜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누워있다가 ‘이젠 진짜 안돼!’하는 시간이 오면, 툭 튀어올라 수면잠옷 벗어던진 후 레깅스 반팔티만 입은 후 패딩만 걸치고 뛰쳐나갑니다. 더 누워 있으려고 해도 돈이 아깝더라구요. 아! 그래서 빠지면 쉽게 보충해주지 않는 필라테스 수련원에 등록하는게 더 효과적이에요. 아무 시간대나 이용할 수 있는 운동보다, 정해진 시간에 꼭 들어야 하는 반 시스템이 오히려 저는 출석률이 높더라구요. 지금이 아니면 안되니까 이불을 박차고 몸을 일으키는데 도움이 됩니다. 집에서 가까워야 하는 건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국 쓰다보니 다 뻔한 말만 죽 늘여놓은 것 같은데요. 우울감이 심해지면서, 제가 가장 신경을 기울여 노력했던 일이 취침/기상시간을 일정하게 만들기였어요. 겨울 극세사 이불 아니더라도 제게는 아침마다 일어나는 일 자체가 굉장히 큰 에너지를 써야하는, 스트레스 받는 일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적당한 타이밍에 요의를 느끼게 물을 적당히 마시고 잔다거나,

-좋아하는 것(콘텐츠, 먹을 꺼리,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마음을 빨리 상기시키거나,

-돈을 투자해 강제력을 동원하는 법,     



이 세가지가 제가 효과를 본 방법들인데, 더 좋은 방법이 있으면 저도 알려주시구요.      



굉장히 애쓰고, 고생하면서 겨우 일어나지만, 계획했던 시간에 계획했던 일을 해내는 소소한 성취감이 다음날 아침에도 또 애쓰며 일어나게 해주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함께 지켜봐주고 응원해주는 주변사람들의 도움도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구요. 악순환에서 선순환의 궤를 그려나가실 수 있길 저 또한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너무 실질적(?)으로 접근해서 부끄러운 글은 그럼 이만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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