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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블 May 26. 2020

노래도 못하고 그림도 못 그리지만 07

읽고 싶은 이야기를 글로 써 드립니다.

"실연에 대한 이야기!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어떻게 결심하고 어떻게 맞게 되셨는지 혹은 맞고 싶은지, 극복기도 좋고 연애 다 소용읍따도 좋고! 서늘한마음썰에서 실연을 다룬 적이 있었나 에피소드 찾아본 적 있는데 못찾았거든요 블블님 글로도 읽고싶고 서늘썰에서도 다뤄주셨으면!!"



작업실에선 요새 쓰던 이야기의 판을 엎고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이래저래 드라마 제작사 기획팀과 보조작가인 내가 저마다 하고 싶은 얘기를 떠들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계시던 선생님은 무겁게 입을 열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제 삼십대 이야기에 흥미가 없어. 굳이 새로 쓸 거리를 찾아야 한다면 내 또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아, 인간인지라. 우리 모두 너무나도 인간인 것이다.      




실연 이야기를 하자면, 어쩐지 그런 마음이다. 이제 다 지나간, 나에게 새로이 생길 수 없는 사건. 어쩐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주말이면 집에 온 애인과 함께 이케아 천원짜리 파란 천막비닐 가방에 이불빨래를 싸들고 나선다. 골목을 나와 큰길 횡단보도를 건너 코인 세탁방에 간다. 세탁기를 돌려놓고 근처 카페에 가서 서로 할 일을 한다. 연인은 밀린 회사일을 하거나 사이버강의를 듣고, 나는 내일 있을 과외수업 준비나 밀린 콘텐츠소비를 한다. 시간 맞춰 알람이 울리면 카페에 잠시 우리짐을 그대로 놔둔 채 나와 세탁방으로 향한다. 세탁을 마치고 널부러져 있는 빨래들을 꺼내 건조기로 옮기고는 또 카페로 향한다. 40분간 다시 업무다. 가사노동과 근로를 매우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커플의 모습이랄까. 부부가 된다면 세탁기 건조기도 모두 집 안에 갖춰놓고, 이불도 널 수 있는 넓은 공간이 생기는 것일까? 이런 고민을 하는지라.           




안다. 그래도 또 쓰다보면 길어지겠지. 실연.       




공식적 실연은 한번이지만, 비공식적 실연은 셀 수 없이 많이 해온 인생이다. 기억에 남는 실연은 당연히 후자 쪽이다.     




공식적 실연은, 실연이라기보다 삭제였다.      



온 몸이 열을 내며 아파하는 절절한 슬픔보다는 복학한 전남친을 학교 강의실에서 마주치면 어떻게 하는가. 같은 과의 선후배들의 입에 뭐라고 오르내릴까. 뭐 그런 것을 더 신경 썼던 이별이었다. 내 감정이 어떤지 정확히 모른 채 ‘헤어진 연인’의 모습을 연기하기에 바빴던 이별. 슬픈 노래를 들어야 할 것 같았고, 헤어진 지 두 달 정도 후에는 후폭풍이 몰려온 척, 친구들을 불러 술주정을 늘어놓기도 했던 것 같다. 숱하게 보아왔던 영화와 드라마들이 어찌나 도움이 되었는지.      




통속적이고 진부한 장면들로 가득 채운 헤어진 연인으로서의 이별을 연기한다고, 상황이 수용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별은 매일 아침 이를 닦으며 거울을 보다가 ‘아. 나 이제 그 아이의 여친이 아니지’ 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일이었다.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어떤 연상의 고리들을 일일이 커팅해야 하는 일이었다. 어디까지 너로 향하는 연결을 남겨둘 것인지 하나하나 정하는 일이었다. 어지럽게 저장되어 있는 파일들을 하나씩 붙잡고 정해야했다. 이렇게 우리 관계의 용량이 컸었나. 대대적인 디스크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이런 이미지를 저장해놨었나. 아프거나 절절하다기보다 힘들었다. 불러와야 하는 파일을 찾기 위해 폴더창을 열면, 목록의 위 아래 옆에 저장되어있는 추억의 파일명들과 싸워야했다. 무심코 연 프로그램 속에서 추억폭격을 맞는다든가. 지운 줄 알았는데 버젓이 남아있는 이미지라든가. 아. 휴지통 비우기를 안 눌렀었던가.      




악성코드도 없고, 물에 빠뜨린 적도 없는데, 특정 사람과 관련된 모든 것을 삭제해야 한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난 여전히 이 하드를 안고 살아야하는데, 툭툭 튀어나오는 자동연결 프로그램과 폴더들을 붙잡고 씨름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리고 마침내 정말로 그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 끊임없는 삭제와 커팅을 통해 어느정도 ‘네가 없던 나’였던 상태로의 회귀가 가능하다는 것이.      




네가 없는 공간에서 너를 떠올리지 않고, 설사 네가 있던 시간을 떠올린다 할지라도, 그 시간 속의 네가 즐겨찾기가 아닌, 휴지통 폴더에 담겨 있을 때. 그렇게 첫 공식적 실연이 끝났다.            




삭제 버튼을 누른 것처럼 깔끔하게 지울 수 없는 이별은 비공식적 실연이었다. 원래 뭐든지 혼자 하다보면 찐득거리게 된다. 물파스나, 특수세정제나, 여하튼 좀 더 강력한 처방이 필요하다.      




비공식적 이별의 가장 힘든 점은 이별의 시작점을 잡는 것이다. 즉 ‘끝’ 역시 혼자 정해야 한다는 것. 시작부터 혼자인 사랑은 나만 변하지 않는다면 무한히 지속할 수 있으니까. 그런 짝사랑의 끝이라는 건 결국 내가 이 사랑에 졌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변한 게 있다면 그것은 ‘나’뿐이기에.    





추웠던 겨울날, 야간근무를 마치고 신도림역으로 들어오는 1호선을 기다리다가, 아이유의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다가 훌쩍훌쩍하다가 터진 울음이 그치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아 추위에 떨며 몇 번의 열차를 보냈었다. 맘에 들지 않는, 내 몸에 어설프게 큰 국방색 패딩 안으로 온몸을 최대한 구겨 넣고서는, 다음에 오는 차를 타야겠다고 반복해서 다짐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출입문 닫힙니다. 출입문 닫힙니다.” 이어폰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열차 출입 안내방송을 듣다가 움찔. 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열차 문이 닫히기 직전 움찔했던 내 다리를 내려다보면서, 지친 나를 인정했다. 늪에서 겨우 빠져나오던 순간이었다. 열차는 길게 멀어져가고 있었다. 더 이상 기차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대충 얼굴을 어루만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옮겨 돌아온 집은 따뜻했다. 환승역에서 그대로 아침을 맞이할 순 없는 노릇이라는 걸 사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당연한 사실을,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만큼의 시간동안 나는 신도림역에 앉아있었던 것 같다.       




몇 번이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던 마음, ‘혹시’의 가능성에 모든 것을 걸던 나 역시 사실은 내려놓고 싶었던 것이다. 미친 확률에 내 인생을 걸고 싶지 않아. 군밤을 마른 모래에 심어 싹이 나는 날. 그때서야 네가 돌아오겠지. 그날 나는 막차가 끊기기 전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제정신이 되어서. 내려놓기 어려운 것들이 생기면 그날 신도림역에서의 움찔하던 내 모습을 떠올리려 노력한다. 아마, 이 마음도 시간이 흐르면 버거워질거야.                




이 모든 날들을 거치고도 남은,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나의 옛 연인들에게로 가는 고리는, 그냥 놔두었다. 살다보니 더 중요한 일들이 생기고, 굳이 애써 치우지 않고 놔두어도 아무렇지 않아지는 날들이 오고, 그러다보니 남은 짐들은 그대로 내가 되어버렸다. 그런 내 모습이 싫지 않다. 지나간 연인과의 추억 한 두 개 정도야, 현재의 나를 더 귀엽고 생기있게 만들어주니까. 목련길을 걸으며 너를 떠올리고, 놀이공원에 가면 너를 만나고. 가끔 네가 해주던 이야기들, 나를 부르던 목소리, 반짝이던 눈빛. 그대로 떠올리며 나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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