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1주일에 한 번씩 엄마와 집 근처에 사시는 이모할머니를 찾아가곤 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어린 나만 혼자 두고 갈 수 없어 달고 가신 거였다. 집에서 5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지만, 할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은 늘 발걸음이 무거웠다. 대여섯 살 꼬마의 눈에 할머니는 좀 무섭고 어려웠다. 게다가 마당에 있는 덩치 큰 개는 몸짓이 작은 나를 사나운 눈빛으로 보며 큰 소리로 짖어댔다.
치즈를 한 입 베어 물자, 새로운 맛의 세계가 펼쳐졌다
어린 나는 늘 얼굴에 귀찮음을 가득 달고 할머니를 만나러 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할머니는 방 한편에 있는 냉장고를 열어 노란 간식을 꺼내셨다. 노랗고 흐물흐물한 그것은 바로 치즈였다. 쿰쿰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한 입 베어 물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솜사탕처럼 입속에서 사르르 녹아내린 것이다. 녹아내린 치즈를 따라 입안 가득 짭쪼롬하고 담백함이 퍼져나갔다. 우유를 1000배는 농축해놓은 것 같은 담백함이었다.
그 뒤로 나는 할머니 집에 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엄마 치마폭에 숨어서 덜덜 떨며 지나갔던 마당도 단숨에 뛰어갔다. 할머니는 내가 찾아갈 때마다 냉장고에서 치즈를 꺼내 주셨다. 할머니와 엄마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혼자만의 치즈 세계를 즐기고 있었다. 치즈를 조금씩 입에 넣고는 살살 녹이며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얘기가 길어져도 상관없었다. 치즈를 다 먹어 아쉬운 얼굴을 하고 있으면 할머니가 "또 주랴?"하고 다시 냉장고 문을 여셨다.
아쉽게도 몇 개월 뒤 이사를 가게 되며 할머니를 자주 찾아가지 못했다. 대신 엄마가 가끔 남대문 수입상가를 들려 치즈를 사다주시고 했다. 다행히 곧 S우유에서 낱개 포장 치즈가 출시됐다. 어렵지 않게 치즈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한 번의 인상 깊었던 기억은 스위스에서 먹은 치즈였다. 첫 번째 회사는 그야말로 열정 페이였다. 전국 출장을 몇 개월째 돌며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렸다. 사표를 내던 날, 퇴사 다음날 떠나는 유럽행 비행기표를 샀다. 그렇게 여행책 한 권을 들고 무작정 비행기에 올랐다. 런던, 파리를 지나서 마지막 목적지로 선택한 곳은 스위스였다. 광활하고 깨끗한 자연을 속에서 그동안 회사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스위스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숨을 쉴 때마다 청량한 공기가 코를 타고 들어와 몸속 구석구석을 깨끗했다. 공기가 깨끗하니 사물의 색도 선명했다.(그동안 나는 해상도가 낮은 자연의 색을 보고 있던 것이다!) 특히, 유럽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융프라우는 장엄하고 웅장했다. 거대한 눈의 세계에서 숙연함마저 느껴졌다.
그런데, 융프라우에서 희한한 모습을 만났다. 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산 정상에 가죽재킷만 입은 20대 남자가 사진을 찍고 있는 거였다. 딱 봐도 한국인이었던 그 친구는 얼. 죽. 패를 산 꼭대기에서 보여주고 있었다.
인상 깊은 그 친구는 산에서 내려오는 열차 안에서 다시 만나게 됐다. 딱 봐도 내가 한국인이었던지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는 한 달째 유럽 배낭 중이었고, 마지막 여정을 스위스에서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그의 얼죽패에는 사연이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넘어오다가 가방을 도난당한 것이다. 남은 것은 입고 있는 옷, 양말만 잔뜩 든 작은 배낭, 여권, 약간의 돈이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여행을 포기하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행객들에게 가방과 옷, 심지어 카메라도 얻어서 여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날 열차 안에서 만난 그 친구와 나, 그리고 두 명의 한국 친구들 넷은 다음 날 일정을 함께 하기로 했다. 스위스 마을을 둘러보던 우리는 점심 즈음 호숫가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어디선가 쿰쿰한 냄새가 풍겨왔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냄새. 치즈였다. 근처에 있는 치즈 퐁듀 식당에서 나는 냄새였다. 우리는 가진 돈을 탈탈 털어 치즈 퐁듀를 먹기로 했다. 녹아서 진득해진 치즈가 우리 앞에 놓였다. 우리는 딱딱한 빵과 과일을 치즈에 푹 담가 입에 넣었다. 지금까지 먹은 치즈와는 사뭇 다른 맛이었다. 진한 치즈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우리는 되도록 천천히 스위스의 맛을 음미했다. 이 점심을 마지막으로 각자의 여행길로 흩어져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으로 돌아온 몇 개월 뒤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인 대신 돈을 내준 내가 너무 고마웠다는 것이다. 그때 치즈 퐁듀가 너무 먹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 얘기하지 못했었노라며 가끔 그날 먹은 치즈가 생각났다고 했다. 할머니가 그랬듯 내가 그 친구에게 준 치즈는 그의 기억에 오랫도록 남아있었다.
<고소하고 담백한 리코타 치즈 만들기>
리코타 치즈는 포슬포슬한 식감과 담백한 맛이 매력적인 리코타 치즈는 집에서도 쉽게 만들 수 있어요. 리코타치즈는 다른 치즈에 비해 지방이 적고 여러모로 활용할 수 있어요.무심하게 툭 떠서 샐러드에 넣거나 잘 구운 토스트나 베이글, 비스킷에 얹어서 먹어도 좋어요.
* 재료: 우유, 생크림, 소금, 레몬(또는 레몬즙), 면포, 채반
1. 쫀득한 식감을 살리는 비법, 요거트
메인 재료는 우유와 생크림이에요. 이 두 가지를 2:1 분량으로 준비해주세요. 이때 요거트를 넣으면 쫀득한 식감이 더해진다는 사실! 우유 500ml라면 생크림 250ml와 요거트 1개(180ml) 정도를 준비하면 돼요.
2. 유청 분리에 있어 중요한 2가지, 불 조절과 젓지 말기.
우유, 생크림, 요거트에 소금 반 스푼을 넣고 중불에 올려주세요. 유청 분리를 위해 이제부터가 중요해요! 재료가 끓거나 많이 저으면 유청 분리가 되지 않거든요. 끝부분에 기포가 생기면 바로 약불로 줄이고 레몬즙을 3큰술 정도 넣어주세요. 약불로 10~15분 정도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면 몽글몽글한 덩어리가 생기며 유청이 분리된답니다.
3. 남은 유청도 다시 보자
몽글몽글한 덩어리가 많아지면 면포를 덮은 체반에 재료를 부어주세요. 면포 싼 뒤 무거운 것을 올리고 1~2시간 정도 물기를 빼주세요. 물기가 제거돼 꾸덕해진 리코타 치즈는 냉장고에 보관해 1주일 내에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