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야의 카나페를 먹으며, 라떼 한 잔과 함께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엘레나.
마치 내가 실제로 어디 온천장에 가서 족욕을 즐기고 있는 듯, 돈 한 푼 안 들이고 바캉스 온 기분이다.
[멜리사]
호야 이 녀석은 정말 못 말리는 애처가라니까.
[호야]
당연하잖아? 이렇게 아름답고 현명하고 똑부러지는 부인을 두고 있다면 말이야.
[멜리사]
힐러님은 여행길이 고단했을 수도 있으니, 먼저 올라가서 쉬어도 돼. 우리는 한 번 모이면 보통 밤늦도록 끝나지가 않거든~
특실은 고양이 여관 4층에 있어. 1층 카운터에 가면 열쇠를 받을 수 있으니까, 참고해.
[엘레나]
알겠어요. 감사드려요.
엘레나의 말을 마지막으로 대화가 종료된다.
이제 1층으로 가서 키를 가져오면 되겠지? 보통 이런 게임은 그냥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침대에 드러누울 수 있던데, 하여간 쓸데없이 현실 고증을 해 놓았다.
1층으로 가니, 역시나 카운터의 직원 머리 위로 화살표가 반짝인다. 다가가니 직원 이름과 함께, 상호작용 가능한 버튼들이 뜬다.
> 에스더
방 열쇠에 대해서…
[ 확인 ]
처음 만나는 NPC는 왠지 한 번쯤 말을 걸어보고 싶어진다. 한가롭게 직원에게 말을 걸어본다.
[에스더]
안녕하세요, 고양이 여관입니다.
온천이 유명하니, 푹 쉬었다 가세요.
예상과는 다르게 그저 평범한 접객용 멘트 뿐이다. 개인적인 감상이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는데.
에스더
> 방 열쇠에 대해서…
[ 확인 ]
[에스더]
멜리사 님께서 말씀하신 분이시군요?
여기 특실 열쇠입니다. 계단을 따라 4층으로 가시면 됩니다.
~ 투숙객 열쇠 ~
고양이 여관 403호의 열쇠.
특실 열쇠임을 알 수 있도록 붉은 매듭으로 장식되어 있다.
[ > 확인 ]
에스더의 말대로, 계단을 올라 4층으로 향한다.
2층, 3층, 4층이 각각 다른 색의 양탄자나 장식용 깃발 등으로 꾸며져 있다. 2층은 파란색, 3층은 노란색, 4층은 붉은색이 테마인 것 같다.
여관 경영은 호야 부인이 한다고 했으니, 이 또한 그 미셸이라는 사람의 작품이겠지? 안목도 안목이지만, 실내 장식에 이 정도 공을 들인 것으로 봐서는……. 돈 진짜 많이 벌었나 보다.
403호에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침대에 화살표가 반짝이고 있다. 다가가서 ‘수면’을 눌러본다.
밤이 지나 아침으로 시점이 전환되고, 엘레나가 침대에 누워서 혼잣말을 한다.
[엘레나]
하암, 개운하다…….
확실히 여행자 숙소랑은 다르네. 햇살 비치는 쉬폰 커튼에, 사각거리는 새하얀 침구…….
참, 아침을 식당에서 준다고 했지? 어제 마셨던 고소한 라떼랑 시원한 샴페인, 둘 다 정말 맛있었는데. 조식은 어떠려나?
엘레나의 혼잣말이 끝나고, 다시 플레이어블 모드로 전환된다. 도로시만 미식가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면 엘레나도 여행을 꽤나 섬세하게 즐기는 편 같다.
계단을 내려가서 1층으로 향한다. 식당에 도착하니, 저 쪽 테이블에서 도로시가 엘레나를 부른다.
[도로시]
여기야, 엘레나!
[제이크]
천사님! 자리를 맡아두었어. 상단주님 바로 옆자리로 말이야.
게다가, 짠! 내가 천사님 몫으로 에그 베네딕트도 미리 받아왔지.
[멜리사]
오, 힐러님 피부에서 윤이 나는데~
역시 온천수의 효과가 있었나봐?
상단주 멜리사가 쿡쿡 웃으며 놀리듯이 말한다. 멜리사 옆에 화살표가 반짝이는 자리로 가 앉는다.
엘레나 몫의 접시에는 에그 베네딕트가 올라간 오픈 샌드위치가 먹음직스럽게 놓여 있다. 훈제 연어와 아보카도, 구운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아침 식사다. 그래픽이 꽤 섬세해서, 설명 없이 이미지로만 봐도 무슨 음식인지 알 수 있다.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돈다. 뭘 좀 먹으면서 플레이를 해야 하나……?
[멜리사]
뭐든 먹고 싶은 건 편하게 들어. 내가 사는 거니까.
[도로시]
와아, 정말요? 그럼 한 그릇 더 가지러 다녀올래요!
어디 보자, 크로아상이랑, 라즈베리 케이크랑, 또~
[제이크]
꼬마 마녀님은 벌써 한 접시를 다 먹었네?
드래곤보다 더 먹성이 좋은 것 같은데.
[멜리사]
쉿!
[제이크]
응?
[멜리사]
귀고리만 믿을 게 아니라, 이제부터라도 정체를 숨기는 습관을 들이는 게 좋겠어.
황성에 들어서면 벽에도 귀가 달려 있다는 걸 명심해. 드래곤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아주 번거로워질 테니까.
[제이크]
알았어, 알았어.
그나저나, 나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멜리사]
그래? 뭐든 물어봐.
[제이크]
상단주 님은 어떻게 그렇게 부자가 된 거야?
[멜리사]
하핫, 그게 궁금했어? 이 참에 한 번 보여줄까나. 어려울 것도 없지.
힐러님, 혹시 에그 베네딕트에 오일을 뿌려 먹는 건 어때? 그냥 먹는 것보다 훨씬 고급스러운 맛이 날 거야.
~ 당신의 선택은? ~
그러죠.
> 무슨 오일인데요……?
아무리 게임이라도 그렇지, 솔직히 무슨 오일인지도 모르는데 막 뿌려먹는 건 좀 그렇지 않나? 게다가 저 상단주, 상당히 미심쩍기도 하다. 괴짜같단 말이지…….
[멜리사]
글쎄, 향기에 취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는 오일이랄까?
자, 이거야.
[제이크]
작은 병에 담긴 오일?
밑바닥에는 뭔가가 가라앉아 있는 것 같은데.
[멜리사]
말린 버섯을 넣었지. 오일에 은은하게 향이 배거든.
이걸 이렇게 뿌리면, 윤기도 더해지고 훨씬 음식이 고급스러워져.
자, 한 입 먹어 봐.
멜리사의 권유에, 엘레나는 에그 베네딕트가 올라간 오픈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문다.
[멜리사]
어때, 무슨 향이 느껴져?
[엘레나]
음……. 재스민 향인가요? 뭔가 향수 냄새 같기도 하고.
[멜리사]
재스민 향이라, 정확하네.
[제이크]
나도 뿌려볼래.
[멜리사]
자, 여기.
무슨 맛이 느껴져?
[제이크]
으음, 글쎄. 꽃 향이 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나저나 향이 은은해서 확실히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져. 묘하게 더 우아한 식사를 하는 기분이랄까.
[멜리사]
바로 그거야.
재스민 향, 정확히는 ‘일랑일랑’이라는 풀의 향기가 나는 버섯이지. 사향 냄새도 풍기고. 흔히 ’일랑-머스크‘ 버섯이라고 하는데, 더 대중적인 이름은…….
[도로시]
앗! ‘부자버섯’ 오일이잖아요?!
[제이크]
너, 이런 것도 알고 있었어?
[도로시]
모를 수가 없지! 먹으면 부자가 되는 기분이 드는 버섯이라고 들었어.
다만 엄청 귀해서 원형 그대로는 잘 못 먹고, 이렇게 오일로 담아서 향만 즐긴다고 하던데.
[멜리사]
오호, 화염 마법사님은 미식가구나?
맞아. 부자가 되는 기분이 들게 하는 버섯이야. 내 장사 밑천이기도 하고.
원형은 이렇게 생겼지.
그렇게 말하더니, 품에서 또다른 작은 병 하나를 꺼내는 멜리사. 검은 색의 말린 버섯이 들어 있다.
[멜리사]
자, 각자 손을 내밀어 봐. 조금씩 나눠줄 테니까.
[엘레나]
(정말 조금이다. 부스러기…….)
~ 부자버섯(조각) ~
말린 버섯의 작은 조각.
생으로 먹어도 되는지는 다소 의심스럽다.
[ > 즉시사용 ]
멜리사의 말에 따라, 엘레나가 버섯 가루를 입 안에 털어 넣고 음미해 본다.
[엘레나]
좀 전의 오일에 비해 훨씬 강한 재스민 향이 나요. 사향도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고…….
[멜리사]
오호, 향에 민감한 편인데?
[엘레나]
그래도 의외로 ‘향수’라는 거부감보다는, 뭐랄까, 오히려 깊은 풍미가 느껴져요.
[멜리사]
그리고? 또 다른 감상은 없어?
[엘레나]
이유는 모르겠지만, 점차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그리고는 엘레나의 속마음이 괄호로 표시된다.
[엘레나]
(묘한 기분……. 이런 고급스러운 에그 베네딕트도, 언제든 원할 때면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누가 저 남은 한 조각을 빼앗아 간대도 아쉽지 않을 듯 하다. 어차피 또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세상이 긍정적이고 낙관적으로 느껴진다. 모든 일이 잘 풀릴 것만 같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 고양이 여관에서 온천에 몸을 담그며 지내도 좋을 것만 같다.
시간이 지나자 점차 버섯의 기운이 사그라든다.)
[멜리사]
흐음, 지금쯤이면 효력이 다했겠네.
어땠어?
[엘레나]
되게 좋은 기분, 가벼워진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는데……. 조금 위험한 기분 같기도 했어요.
[제이크]
으음, 나는 잘 모르겠네.
[도로시]
나는 엘레나랑 비슷했어! 게다가 엄청 향긋하구.
한 조각만 더 씹어봐도 될까요?
[멜리사]
아쉽지만, 이 이상은 안 돼.
[도로시]
그-렇겠죠? 역시 비싼 버섯이니까, 아무래도…….
[멜리사]
하핫, 그게 문제가 아니야, 마법사님.
이건 말야, 사실 독버섯이라구.
[도로시]
독버섯……?!
엘레나, 우리 방금 독버섯 먹은 거야?
[멜리사]
아주 가끔, 혹은 어쩌다 한 번씩 이렇게 씹는 정도로는 괜찮아. 장기가 녹아 내린다거나 하는 그런 독버섯은 아니니까.
다만 환각 작용이랑 중독성이 강해서 독버섯으로 분류되거든. 방금 느꼈던 것처럼 말이야.
[도로시]
흐응, 그치만 그냥 기분 좋은 정도던데요.
[멜리사]
다들 ‘부자가 되는 기분’을 느낀 거지. 모든 경제적인 제약을 다 잊게 되는 거야. 돈이 없어서 할 수 없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듯이.
나야 원래도 돈이 많으니까 딱히 이거 한 조각 먹는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지는 않는데, 보통 사람들은 너무 먹으면 완전히 맛이 가게 된다구.
음지에서는 가루로 빻아서 이것저것 섞어 넣은 마약으로 유통되기도 하는데, 오히려 상류층보다는 빈민가에서 많이 돌아다녀. 물론 비싸게 팔리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세상 시름을 아주 잊어버릴 수 있거든.
[제이크]
그것 참 무서운 버섯이네. 생긴 것도 새카만데.
[멜리사]
굉장히 희귀해서 구하기가 어렵단 점이 다행이랄까?
동쪽 스트레아 사막에서 모래의 마녀령이 지나간 자리에만 피어나거든. 그것도 딱 3일 동안만.
[도로시]
그럼 저희도 스트레아 사막에 가면 구할 수 있는 건가요……?
[멜리사]
글쎄~ 그건 영업기밀이라.
멜리사가 눈을 찡긋하며 답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엘레나의 속마음.
[엘레나]
(확실히 ‘부자버섯’ 조각을 씹을 때는 세상 모든 일로부터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황성에 가는 일도 딱히 당장 해야 하지 않아도 될 것처럼 느껴졌다. 굳이 황성까지 가서 여행자 패스를 신청하지 않아도, 앞으로 숙식이야 어떻게든 해결되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 잠시 들었기 때문이다. 가뿐하면서도, 아주 무대책이었던, 그런 기분…….)
[멜리사]
어쨌든, 남은 아침 식사를 마치자구.
다들 이제 여관을 떠날 채비를 해야 하잖아?
[도로시]
으앗, 도로시는 아직 국수 코너는 못 가봤는데!
한 그릇만 가져올게요!
멜리사의 말에, 엘레나도 남은 한 조각의 에그 베네딕트 샌드위치를 집어든다.
[엘레나]
(한 입 베어무니 입 안에 꽃 향이 퍼져간다.
향긋한 재스민 향기가 느껴지는 샌드위치. 충분히 우아하고 근사한 아침 식사다.
그래, 딱 이 정도가 좋겠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 정도가.)
Ch.06 부자가 되는 버섯
- 끝 -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Alice Pasqu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