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개월 17일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히는 ‘못한다’. 예전에 대학생 때 트위터 계정을 만드려고 했는데, 그 때 어쩌다 보니 꼬여서 계정만 파 놓고 패스워드를 영영 못 찾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 상태로 좀 지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인스타그램이 흥해서 바로 페이스북에서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갔다. 그러다 아기가 태어나고, 업로드할 사진이 애 사진밖에 없게 되고, 블로그로 되돌아왔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트위터, 그러니까 ‘X’에 업로드하는 것처럼 짧은 글을 많이 업로드하는 것 같다. 읽는 입장에서도 길이가 길지 않아서 편하고, 다양한 생각을 쓱쓱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기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적어두었던 메모들을, 트위터처럼 짧게 기록해본다.
1. 아이를 재울 때면 때때로 눈을 볼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품에 안고 재웠다면 품 안에서 아이가 눈을 지금 감고 있는지 아니면 아직도 뜨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거울로 슬쩍 가서 비춰보면 알 수 있지만, 궁금하다고 해서 가 봤는데 눈을 뜨고 있었다면 아이는 거울을 보고 잠이 확 깨버린다.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이런 걸까?
2. 아이를 재우려고 침대에 눕혔다. 아이를 보는 나를 보는 아이……. 그렇게 눈싸움을 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아이가 방긋 웃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니, 엄마는 널 재우러 왔다니까?
3. 범퍼침대를 안방에 두고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안방 문이 닫히지를 않았다. 아마 문틀 어딘가에 낑기는 것 같았다. 이대로는 소음 때문에 부엌일도 할 수가 없는데. 그러던 어느 날 친정 아버지께서 놀러 오셨다가 경첩 나사를 조정하고 바셀린도 발라주셨다. 완벽하게까지는 아니어도 이제 안방 문을 닫을 수 있게 되었다. 야호!
4. 아이가 낮잠 자기를 힘들어하면 수면 환경을 확인하라던데, 그 중 하나가 조도였다. 책을 읽기 어려울 정도로는 어둑어둑하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유튜브 영상을 봤다. 쿠팡으로 암막 커튼을 사다가 설치했더니 완전히 깜깜해져서 밤낮이 바뀔 것만 같았다. 암막 커튼을 걷어내고, 집에 있던 얇은 회색 이불을 천장에 달린 빨랫대에 집게로 매달았다. 이걸로 충분하고 완벽했다.
5. 아이가 2월에 태어났으니, 에어컨 청소를 하려면 여름이 되기 전에 서둘러 진행해야 했다. 청소 기사님을 불렀는데 안방과 거실과 서재의 에어컨들이 모두 청소 대상이 되어서, 산후도우미님과 나는 아이를 데리고 끝방에 잠시 머물렀다. 그 전까지는 산후도우미님께서 거실에서 아기를 안고 재워주시는 동안에 나는 안방에 들어가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했는데, 작은 방에 아기랑 옹기종기 모여서 두런주런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왠지 훨씬 포근하게 느껴졌다.
6. 5개월쯤이 되자, 새로운 사운드가 추가됐다. 아이는 이제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꺄아악! 이게 익룡 소리인가? 아기는 참으로 다양한 소리를 내는구나. 신생아 때는 일명 ‘이계인 소리’를 내더니, 이제는 익룡 소리까지. 네이버에 ‘이계인’을 치면 연관 검색으로 ‘이계인 소리’가 뜨는 걸 보고 신기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 분은 본인 목소리가 신생아의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표현하는 데에 쓰인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까?
7. 백일 무렵에, 아기 키우는 게임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게임 이름은 <베이비 서바이벌>. 유모차에 태워서 밖을 다닐 때는 흡연자와 자동차를 샥샥 피해야 한다. 그리고 모유수유를 하면 아기의 체력은 올라가지만, 양육자는 수면부족 탓에 엄마의 체력은 떨어져서 게임 컨트롤이 어려워지게 설계한다거나…….
8. 아기 손톱이 자꾸 눈에 들어온다. 거의 손톱 집착광공이다. 분유를 먹일 때마다 네일 트리머로 깎는데, 어찌된 일인지 매일 깎아도 매일 자라서 날카로워지는 것 같다. 분명 육아 유튜브에서는 2~3일에 한 번 깎아주고, 발톱은 한 달에 한두 번 깎아주면 된다고 했는데.
9. 아이가 지루해하면, 번쩍 안아서 집안구경을 살살 시켜줬다. 그러다 냉장고에 붙여둔 글쓰기 플랜이 눈에 들어왔다. 과연 육아를 하면서 이대로 글을 쓸 수 있을까?
10. 여유로운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여유롭고, 바쁘고 숨가쁜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바빠 보인다는 말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컨설팅 업계 사람 이야기였다. 프로젝트 A, B를 서로 바꿔서 했는데, 프로젝트와는 상관없이 바빠 보이는 정도는 담당자를 따라갔다고 했다.
아기 빨래를 갤 때 5분 타이머를 맞춰보곤 했다. 아무리 귀찮아도 5분이면 끝나는 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주지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타이머를 맞췄더니 오히려 마음만 급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아침에 젖병과 쪽쪽이를 닦거나 아기 빨래를 돌릴 때도 마찬가지로 숨도 불규칙적으로 쉬면서 일하고 있었다.
일부러라도 마음을 놓고 천천히 살아야겠다. (이 메모는 한두 달 전에 썼는데, 지금은 타이머는 라면 끓일 때만 쓰고 있다.)
10. 이따끔 육아 용어를 의사소통에 활용해버리고 만다. 저녁 많이 먹고 싶다는 이야기를 “나도 루나처럼 막수 많이 하고 잘래”라고 표현한다든지, 밥 먹고 바로 자기에는 부대낄 것 같다는 소리를 “먹잠 하면 소화 안 되니까 먹놀잠 해야겠다”라고 한다든지. 다른 집들도 이러나?
11. 주말에는 남편이 육아를 거의 전담한다. 체감상으로는 전체 육아 업무 기준으로 기여도가 80% 정도 되는 것 같다. 남편이 아이를 먹이고, 씻기고, 안아주고, 얼러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체험 삶의 현장이 따로 없다. 어쩐지 남편이 내 일터에 놀러 온 기분이 들었다.
12. 육퇴 후에 설거지를 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문득 “나는야 좋은 엄마라네~” 하고 중얼거렸다. 육아를 하다 보면 잘못만 엄청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힘들 때가 있는데, 무턱대로 ‘나는야 좋은 엄마라네’ 하고 흥얼거렸더니 우울한 마음이 신기하게도 싹 날아갔다.
13. 아이랑 같이 거실 알집매트에 누워서 창 밖을 봤다. 구름이 둥둥 떠다니는 모습이 마치 만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예전에 지브리에서 나온 <고양이의 보은>을 봤었는데, 공부하다가 문득 나는 그런 재미있는 세계 속으로 갈 수도 없고 하늘을 날 수조차 없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던 적이 있다. 아마 그 때 나는 어린이를 위한 만화영화 속 세상에서 나와서 어른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이 작고 귀여운 아기가 세상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아마 이 아이도 언젠가는 상상의 세계를 한껏 즐기다가 졸업하는 날이 오겠지? 나의 몫은, 더 이상 나 자신이 아니라 아이에게 그러한 흥미로운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었다. 어쩌면 유년시절은 유효기간이 짧으니 서둘러 즐겨야 하는 걸까?
14. 아이를 낳고 나니, 삶과 죽음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시간 속에 내던져지는 수동적인 탄생밖에 경험하지 못했으나, 자식의 출생으로 인해서 나는 의식적으로 의도되고 객관적으로 관찰되는 하나의 삶의 탄생을 목격했다.
아이에게 좋은 삶의 자양분을 제공해주고 싶다는 소망은, 어떤 것이 좋은 삶인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러한 고민은 다시 나로 향해서, ‘그렇다면 나의 삶은 지금 좋은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가? 죽음 이전까지의 삶을 어떻게 채우면 좋을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15. 육아휴직을 1년을 쓸지, 2년을 쓸지 고민이 된다. 2년을 쓰면서 2년차에는 어린이집을 병행하며 내 삶을 좀 즐기는 것도 좋으려나? 하지만 그 때 가면 또 ‘이 조그만 아이를 어떻게 보내나’ 하고 갈등하겠지.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타액으로 전염되는 온갖 병을 앓기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더 망설여졌다. 감기부터 시작해서 수족구, 장염, 기타 등등의 병으로 아프게 되면, 아이도 고생이지만 그런 아이를 간호해야 하는 나도 심신이 지칠 것 같았다.
16. 인형 모양의 딸랑이를 줬다. 인형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몸통을 쥐려고 해서, ‘인형 손을 펴야 잡을 수 있는데……’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냅둬봤더니 아이는 인형 손이 아니라 귀를 잡는 방식으로 딸랑이를 쥐었다. 아이는 알아서 자기만의 방법을 잘 찾는구나.
17. 둘째를 갖는 사람들이 대단하고 신기해 보였다. 아니 나는 지금 한 명도 힘든데, 어떻게 두 명을? 하지만 신생아부터 돌쟁이까지 케어할 일이 부담스러워서 둘째 생각을 접는다는 건, 출산이 무서워서 아이 안 낳는 것과 비슷할까? 돌이켜보면, 출산은 물론 여러모로 엄청난 과업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출산 때문에 아이를 안 낳는다는 것은 좀 지엽적인 문제 때문에 큰 것을 놓치는 결정처럼 느껴진다. 비유하자면, 수능 보기 싫어서 대학을 안 간다거나, 샤워하기가 귀찮아서 수영을 안 배운다거나, 그런 느낌이랄까……. 물론 엄청난 난산을 하는 경우는 예외!
18. 백일이 한참 지났을 때였던가? 아이를 데리고 노는데, 콧잔등에 신생아 미립종 흔적 같은 게 보였다. 그러자 신생아 때가 생각났고, 그 때의 그 귀엽고 조그맣던 아가가 이렇게 커서 내 앞에 있다니 하는 생각이 들어서 울컥했다. 물론 지금도 귀엽고 조그맣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말이다.
19. 지금은 스팀 소독기며 UV 소독기 같은 게 다 있지만, 옛날에는 다 냄비에 물 끓여서 열탕 소독했다고 한다. 그런 걸 생각하면 요즘은 얼마나 육아가 편해진 세상인가 싶기도 했다. 좋게 생각하면 좋을 일이 한도 끝도 없는 것이 인생이려나.
20. 임산부 친구들을 만나면, 나는 모유수유라든지 조리원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역시 예전의 내가 그랬듯이, 대부분 ‘출산하고 나면 슬슬 결정해야 할지도……’ 정도로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넘겨듣는 화제들이었다. 출산이 한참 남았는데도 내심 과거의 내가 떠올라서 벌써부터 안타까웠지만, 내가 뭐라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는 일이기에 대강 고지의무만 수행하자 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하곤 했다. 아니 그런데 얘들아, 혼합수유는 정말 별로라니까…….
21. 지인과 오랜만에 카톡을 했는데, “요즘 어때?”라는 말에 왠지 모르게 대답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육아하는 사람에게 이런 평범한 질문은 왜 이다지도 어렵게 느껴질까.
22. 지금껏 살면서는, 뭐든 ‘잘하고 싶다!’ 라는 생각으로 임해왔다. 하지만 육아는 그렇게 한다 해도 얻는 것이 확실치가 않았다. 아이의 건강? 애착형성? 정말 두리뭉실한데다, 양육자의 노력과는 별개로 아이의 기질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컸다. 그리고 그 ‘잘하고 싶다!’의 끝은 복직이려나? 그러다가 아이가 부모 손을 필요로 하는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를 거치고 나면, 그 후의 나는 어떤 형태로 남아 있을까? 그걸 생각하면 양육에 있어서도 ‘잘하고 싶다!’는 태도로 임하기가 조금 두려웠다.
24. 아이를 안방의 범퍼침대에 재우고, 나는 살금살금 침대 위에 누워서 낮잠을 청했다. 몸이 나른해지고, 문득 옛날에 파리에서 모르는 동네에 가서 빵을 사 먹었던 게 떠올랐다. 그 때 정말 한가로웠는데. 그러다 갑자기 내가 엄청 느슨한 모드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달았다. 아이가 언제 또 울 지도 모르고, 낮잠 자다가 잠꼬대라도 해서 아이가 깨면 어쩌지? 아니, 그런데 이렇게까지 24시간 경계 모드로 지낼 필요는 없지 않나……. ‘방심했군’이라고 생각했단 것 자체가 애초에 잘못되었어.
25.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가장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포유류로서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의 본능적인 경계심과 불안, 극도의 예민함, 거부할 수 없는 행복과 슬픔, 그런 내밀한 감정들이 이따금 내게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제인 구달도 자기 아들에게 누가 허튼짓을 하려고 들면 예민해졌다는데, 본인이 그런 경험을 겪고 나니까 새끼를 데리고 있는 침팬지 어미들이 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 있었다고 했다.
26. 아기를 키우다 보니, 책 읽는 것조차 연속적인 시간이 필요한 취미라 쉽지 않게 된다. 그래서 핸드폰만 자꾸 보게 되는데, 한동안 보고 나면 허송세월한 것 같아서 영 기분이 찝찝하다.
27. 육아를 하다 보면 몸이 지치게 되는데, 몸이 지치면 만사가 마음에 안 드는 모드로 전환되기가 쉬웠다. 그럴 때면 마법의 주문을 세 번 복창하기로 했다. “그럼 나는 얼마나 잘났는가”라고.
28. 친정어머니께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셨다. 그러면서 내게, 나 어렸을 때도 아기라서 못 알아들을 수도 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읽어주곤 하셨다고 얘기하셨다. 나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책을 좋아하는 타입이라 혼자서 독서 취미를 계발한 줄 알았는데, 어쩌면 유년시절의 영향이 있었지 않았을까? 책을 읽으면 괜히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라거나. 나는 혼자서 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29. 다른 집은 아기 전용 전자기기를 사기도 하는 것 같은데, 우리집은 그냥 있던 살림으로 살고 있다. 아기 빨래는 원래 쓰던 세탁기로, 이유식도 이유식 메이커 말고 그냥 밥솥으로. 심지어 만7개월인 요즘에는 아기 식기도 식기세척기로 돌리고 있다. 그마저도 처음에는 어른 식기랑 구분해서 돌리다가, 며칠만에 포기하고 구분 없이 한꺼번에 돌린다. 세제만 아기 것으로 쓰고. 그렇지 않으면 하루에 식기세척기를 여섯 번 돌릴 판이다.
30. 프리랜서가 되고 싶었다. 공간과 시간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라는 사실이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아이가 생겼으니, 그런 전격적인 변신은 어려우려나? 그렇지만 정말 냉정하게 보자면 핑계다, 핑계. 게다가 이 소중한 아이를 내 인생의 변명거리로 앞세우고 싶지도 않다.
31. ‘그렇게까지 해서라도’는 아이 가진 여성의 삶의 모토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에, ‘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이라는 말 한 마디가 그 어떤 도전을 향한 의욕도 꺾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었다.
32. 육아휴직 기간에 뭔가 삶의 새로운 전환점을 만들어야 하나 싶은, 일종의 압박을 셀프로 만들어서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걱정과 우울에 휩싸여서 하루하루를 보낼 필요까지는 없었다. 가장 최악이라고 해도 복직이니까. 대기업 다니면서 안정적으로 비교적 높은 월급을 받으며 워킹맘으로 일하며 사는 것. 그게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라니, 괜찮잖아? 내게는 더 좋아질 일만 남아 있었다.
33. 육아를 하다가 문득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하지만 그림 그리기는 보통 2~3시간은 소요되는 취미였다. 그리고 나는 전문 화가가 아니니까,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그저 그런 그림’이 나올 게 분명했다.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완전하게 비번이 되는 시간은 일주일을 통틀어도 그리 많지 않은데, 그 금쪽 같은 시간을 변변찮은 그림을 그리는 데에 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말라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지.
34. 이유식을 시작하면 분유를 안 먹는 애들이 있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우리집은 이유식을 만7개월인 지금도 긴장하면서 먹이고 있다. 물론 처음에는 네 숟가락을 한계선으로 펑펑 울음바다가 되었으니, 그에 비하면 어찌됐든 110~120g은 먹긴 먹으니까 완전 양반이 되었지만.
그러다 하루는 아이가 이유식을 품에 안겨서 먹다가도 너무 울길래, 우는 아이의 입에 한 숟갈씩 넣다가 결국 후회했다. 몇 입 먹나 싶더니 갑자기 아이가 울음을 뚝 그치고는 숨도 안 쉬고 구역질을 했기 때문이다. 순간 머릿속에는 ‘하임리히법을 하려면 아이를 허벅지에 뒤집어 엎어 놓고 등을 팍팍 쳐야……’라는 생각과 함께 그 모습을 노심초사하며 그렸다.
다행히 아이는 하임리히법 없이도 회복했지만, 그 날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면서도 그 때의 장면이 아른거리면서 너무도 미안해졌다. 사레 들리면 큰일이므로, 우는 아이한테 먹이지 말고, 뭘 먹는 아이를 웃기려 들지도 말아야 한다고 분명 들었는데.
알고 있는데도 외면한 채 그냥 먹이고 싶었던 마음은 대체 뭐였을까. 그 때는 이유식을 주다 말고서 우는 아이를 부여잡고 분유를 더 탈 생각만 해도 막막했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며 메모를 적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 표지사진 출처: Unsplash의 Anthony Tran